중생(重生)
【정견망】
최근 법을 외우면서 일부 법리를 깨달았다. 체득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수련에는 절대 두 법문은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전일(專一)해야 한다는 설법에서 “당신이 두 척의 배에 발을 딛고 있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이는 헛되이 수련한 것이다. 그러나 일상 수련 중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두 법문[二法門]의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날이면 조상에게 공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지전을 태우는 등의 일을 한다. 나는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매년 오직 사부님께만 공물을 바치고 향을 올렸으며, 더는 조상을 공양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점을 보거나, 명승지에 가서 사찰의 불상에 향을 올리거나, 뜬소문을 듣거나, 다른 법문의 경전을 읽는 등의 일은 모두 불이법문과 관련된 문제다.
2. 대법 수련은 주의식(主意識)이 강해야 한다
20여 년의 수련을 돌이켜보면, 때로는 사상업(思想業)이 반영됐는데 처음에는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나중에 법을 외우고 나서야 확실히 분별할 수 있게 됐다. 나쁜 생각이 나타나면 그때는 사실 주의식이 강하지 않은 것이니 주의식을 강화해야 하며 절대로 사상업을 따라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되고 강대한 정념으로 배척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전법륜》) 우리가 정념을 유지할 수 있다면 모든 바르지 않은 것을 타파할 수 있다.
3. 연공은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틀지만 아픈 것이 두려워서 내려놓으며 견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튼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견뎌내지 못한다. 일단 다리를 내려놓으면 연마(煉)는 헛된다.”(《전법륜》)
“화를 참지 못하고 그와 맞서는 바람에 오늘 연마(煉)는 또 헛되고 말았다.”(《전법륜》)
20년 수련 중에서 나는 처음 가부좌할 때 이를 악물고 30분을 버텼는데, 2009년에는 1시간을 쉽게 할 수 있었고 지금은 90분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으나 2시간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항상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최대한 끈기 있게 견뎠다. 업력이 전화(轉化)되는 관계를 알기에 연공 중에 심성관에 부딪혔을 때 가족과 다툰 적이 없다. 연공 방면에서 헛되이 하지 않았다.
4. 절대 가짜 부처에 미혹되지 말자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이 안배해 수련한 것은 위의 어느 법문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안배한 것이므로 당신은 장래에 그것의 관할에 속하게 된다. 당신 이것은 헛된 수련이 아닌가?”(《전법륜》)
“당신이 마음대로 그를 사부로 삼아 따라간다면 그가 당신을 어디까지 이끌고 가겠는가? 그조차도 정과를 얻지 못했는데, 당신은 헛되게 수련한 것이 아닌가?”(《전법륜》)
“고층 공간의 사람은 모두 신(神)으로서 아주 크게 변하며 신통(神通)이 크게 나타나는데, 마음이 바르지 않기만 하면 당신은 그를 따라갈 것이 아닌가? 당신이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단번에 수련이 헛되고 만다. 그가 설령 진불(真佛)ㆍ진도(真道)라 해도 당신은 역시 처음부터 다시 수련해야 한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수련에서 파악하지 못할까 봐 법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점에서 일부 수련생, 특히 천목(天目)이 열린 수련생은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해 자신의 소능소술(小能小術)에 좌우되어 병업이 있는 수련생이 어떤 이유로 업을 지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병업이 있는 수련생은 두려움이 생겨 육신을 잃었다. 또한 공능을 숭배하는 수련생도 있다.
5. 언제든 늘 대법을 제1위에 놓아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대법(大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정말로 번거로워지고 수련이 헛되는데, 잘못하면 떨어져 내려가서 수련이 헛되고 만다.”(《전법륜》)
이 문제를 우리 많은 수련자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법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은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 종종 자신이 대법에서 깨달음이 남들보다 높다고 여기며, 자신이 정말 대단하여 아무도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동안 이런 표현이 있었다. 동수들과 함께 많은 법공부 팀에 가서 대법에 대한 내 인식을 거창하게 말했는데, 정말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악에 납치돼 곤두박질친 후 법을 외우면서 이것이 내가 자신을 중요한 위치에 놓아 하마터면 자신을 망칠 뻔하고 헛되이 수련할 뻔한 것임을 깨달았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셔서 못난 제자를 빠뜨리지 않아 나는 제때 바로잡았다. 이제 나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정법 수련의 길을 안정적으로 걷고 있다.
6. 열려서 수련하는 동수들은 과시심이 있어선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점오, 이런 수련방법 역시 쉬운 것이 아니며, 공능이 나오면 어떤 사람들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쉽사리 과시하며 좋지 않은 일을 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당신의 공은 떨어져야 하고, 당신의 수련은 헛되어 최후에는 망치고 만다.”(《전법륜》)
최근 몇 년 점오(漸悟) 상태에 있는 많은 동수들이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능소술에 좌우되어, 병업을 동수에게 결론을 내리고 병업 동수에게 어떤 이유로 업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병업 동수에게 두려움이 생기게 했고 결국 육신을 잃었다. 또한 어떤 동수는 공능을 숭배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당신의 마음이 변하기만 하면 곧바로 끝장이며 당신은 떨어지게 된다. 어쩌면 당신은 그보다 더 높을 수도 있는데 단지 신통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전법륜》)
최근 몇 년, 일부 동수들은 공능이 있는 동수에게 집착해, 공능이 있는 동수를 따라다니며 무슨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가 봐달라고 했다. 그 결과 공능이 있는 수련생은 지금 병업 가상에 처해 있고 그가 보아준 동수 역시 세상을 떠났다. 수련은 아주 엄숙한 것이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자신의 수련을 망칠 수 있다.
7. 수련인은 환희심을 내지 말아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삼계(三界)를 벗어났다! 이 기뻐함이 바로 집착심이고 환희심이다. 나한은 마땅히 무위(無爲)이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는 떨어졌으며 수련이 헛되었다.”(《전법륜》)
하지만 우리는 수련 중에 때때로 환희심이 나온다. 나는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환희심이 나와 구세력이 빈틈을 탄 적이 여러 번 있다.
한번은 진상을 밝히는 일을 잘하고 집에 가는 길에 마음이 흐뭇했고 환희심이 나왔다. 결과 길을 건널 때 삼륜 전동차에 치여 몇 미터나 날아갔다. 자전거는 망가졌고 나는 넘어지면서 뒷머리가 먼저 땅에 닿았다. 자비로운 사부님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뻔했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고 땅에서 일어나 망가진 자전거를 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온 후 즉시 결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했더니 머리에 난 큰 혹이 빨리 사라졌다. 수련자가 사부님의 보호가 없으면 언제든지 생명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가서 잘 붙였을 때 환희심이 나와 명승지 경비원들에게 잡힌 적이 여러 번 있는데 모두 사부님의 보호로 놀랐지만 위험한 일은 없이 걸어왔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든 교란이 있을 수 있고 수련이 헛되게 될 것이며 층차를 제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교란이 나타나고 자칫 잘못하면 떨어질 수 있다.
아무튼,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수련 성취할 수 있도록 설법에서 다양한 방면을 모두 말씀하셨다. 연공, 법공부, 일하는 중에서, 심성을 닦는 중에서, 가짜 부처를 대하는 것, 불이법문, 다른 공간의 교란 등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두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는 대법에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을 수십 년 배우고 《전법륜》을 천백 번 읽고 《전법륜》을 셀 수 없이 외우고 베꼈으며 노수련생은 30년 넘게 수련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각종 방면의 교란을 받을까? 사실은 우리가 법을 공부하면서 법을 얻지 못하고 대법에 따라 자신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대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정말로 대법의 요구를 따라 할 수 있고 세 가지 일에서 엄격하게 대법에 따라 할 수 있다면 우리 수련의 길은 구세력의 반복적인 교란을 받지 않을 것이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렇게 많은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다. 특히 올해 사부님께서 새로 말씀하신 《법난(法難)》, 《각성하라(驚醒)》, 《인류사회는 왜 미혹(迷)의 사회인가》를 읽고 나서 자비로운 사부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부님께 너무 많은 걱정을 끼쳐서 나는 내심으로부터 사부님께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만 있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이번에 안으로 깊이 찾으면서 나는 더는 과거처럼 그렇게 법을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해선 안 되며 스스로 헛되게 수련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대법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서 사람 생각, 사람 마음, 사람의 성격을 닦아버리고 자신의 주원신(主元神)이 일체를 주관하게 해서 수련이 헛되지 않게 하고 아울러 수련 원만해서 마지막에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다.
개인의 작은 체회이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