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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는 큰 연극의 주인공

중국 대법제자 중생(重生)

【정견망】

오늘 《홍음 2》〈큰 무대〉와 〈연극 한 편〉을 외웠다.

“인간세상 오천 년
중원이 무대여라
마음이 연극 속에 매료되니
현란함 그 얼마나 다채롭던가
깨어나 서로 보니
무대는 법을 위해 설치했구나”

“하늘은 막(幕) 땅은 무대
건곤을 운행하니 천지가 열리누나
만고의 일은 법을 위해 왔나니
法輪(파룬)이 도니 새로운 삼재로다”

이 두 수를 읽을 때 머릿속에 “대법제자가 큰 연극을 한다”가 떠올랐다.

사부님 설법이 내 지혜를 열어주셨고, 나는 우리 중화민족 신전문화(神傳文化) 상하 5천 년 매 하나의 역사 시기는 모두 각기 다른 천인(天人)이 있었고 각기 다른 의상과 각기 다른 문화를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부동한 역사시기를 거치면서 아주 많은 다양한 역사 이야기들을 남겼고 또한 오늘날 세간에 널리 유전(流傳)되는 아주 많은 수련 방법을 남겨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데 한 갈래 길을 닦았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4》〈중생을 구도하다〉에서 말씀하셨다.

“인생은 연극처럼 무대 위에서 다니는 것
명리정구(名利情仇)는 구름과 연기 같다네
세세생생 윤회하며 배역을 바꾸었나니
군왕에서 서민까지 극 중에 빠져있네
생명의 근원은 본래 천당에 있거늘
대법을 찾기 위해 세간에 내려왔네
법을 얻으려면 반드시 창세주를 기다려야 하고
수련해 거듭나야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네”

또 《홍음 4》〈생명의 귀착점〉에서 말씀하셨다.

“인생은 그저 며칠 잠시 묵는 것이거늘
세상에 온 본래 목적을 잊어버렸구나
천국의 촉탁과 구도(求度)를 지니고서
창세주의 도움을 얻기 위해
층층 아래로 내려옴에 당신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네”

사부님의 설법에서 나는 오늘날 중토(中土)에서 중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오늘날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 이것은 천 년을 기다린 연분임을 깨달았다.

《서유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릇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에서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 어려우니 이 세 가지를 다 갖췄다면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없다.[夫人身難得,中土難生,正法難遇;全此三者,幸莫大焉]”

대법제자는 마땅히 자신이 중토의 일원이 된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이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기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또 법에서 우리 대법제자들은 모두 일찍이 천상의 신이었고 사부님을 따라 신의 몸[神體]을 새로 만들기 위해 주저 없이 사부님과 서약을 맺고 층층 아래로 내려오면서 윤회전생(輪迴轉生)했다. 윤회 중에서 아주 다양한 역할을 맡았는데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최후 세간에 와서 대법이 전해지면 창세주를 찾아 수련 원만해서 천국으로 돌아가길 기다려왔다.

나는 또한 법에서 깨달았다. 대법제자는 모두 한때 사부님의 친인(親人)이었고 우리는 모두 사부님과 여러 차례 인연을 맺었는바, 아마 가족의 인연도 많았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삼계(三界)를 만드신 2억 년 동안 우리는 부동한 층차, 부동한 역사 시기에, 반복적으로 사부님과 인연을 맺었다.

우리는 일찍이 사부님의 가족이거나 친인이었는데, 가령 당 태종 휘하의 장수나 궁궐의 궁녀였을 수 있고, 어쩌면 황후나 공주였을 수도 있다. 또는 양가장(楊家將)에서 육랑(六郞 양연소) 휘하의 병사였거나 양가장의 가족이나 자손 등등의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또는 창세주를 따라 구걸하며 행각 했을 수도 있고 또는 장삼풍(張三豐)의 문하생이었거나 석가모니의 제자였거나 예수의 신도였을 수 있다.

아마도 중원 상하 5천년 동안 일조일대(一朝一代)의 왕이나 주(主)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꿈이고 연극인데, 삼계는 연기하고 있고 배우는 우리 자신이다. 조대(朝代)마다 역할을 바꿔왔지만 미혹 속에서 자신은 모른다. 이 억만년의 배역, 그것은 우리가 진정 하고자 했던 역할이 아니며 우리의 진정한 역할은 바로 대법제자다.

우리는 생생세세 윤회전생하면서, 수많은 역할을 바꿔왔는데 무수하고 무수해서 얼마나 되는지 그 수를 똑똑히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생생세세 전생해야 했는가? 사실은 바로 연기다.

내 기억에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서 모범극[역주: 문화혁명 시기 중공을 선전하기 위해 널리 보급한 8가지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 전체 줄거리에 8개 장면이 있었다. 나도 일찍이 두 차례 단역을 맡았는데, 두 장면에서 각기 다른 역할로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매 장면마다 주인공이 꼭 등장했다. 오늘날 대법제자야말로 연극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하 5천년 윤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맡았겠는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역할을 맡았다. 중국 역사를 돌아보면, 일조일대(一朝一代)라, 삼황오제부터 원, 명, 청, 민국(民國)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대법제자들은 사람마다 무수하고 무수한 역할을 연기해왔다.

미혹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대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가? 또한 자신이 필경 이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가? 더욱이 자신이 사전(史前)의 서약을 지니고 왔음을 알기란 더 불가능하단 말인가? 또한 역사 속에서 자신이 신(神)의 광환을 내려놓고 사부님과 서약을 맺고, 사부님을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는 사실도 나는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법(法)을 얻었고 정법시기의 대법도(大法徒)가 되었는데, 우리가 세상에 온 목적을 알았고 이 역사란 큰 연극에서 맡을 역할이 중생 구도임을 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세인(世人)들 심지어 집에 있는 친인(親人)까지도 여전히 자비로 대할 수 없다면, 한번 생각해 보라. 아마 당신이 경멸하는 그 세인, 그 친척, 그 쓰레기 줍는 사람, 어느 동수, 그는 아마 일찍이 당신의 친인이었을 수 있고, 또한 같은 조정에 있었던 군신(君臣)이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전쟁터에서 당신의 생명을 구한 그 사람일 수도 있고, 또한 당신의 부모나 형제였을 수도 있으며, 또는 당신이 살해한 생명일 수도 있고, 또는 당신이 빚진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생명들은 모두 한때 사부님의 친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또 그들을 업신여길 이유가 있단 말인가? 그 어떤 생명에게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할 이유는 더욱 없다.

역사상 일찍이 존재했던 인연 관계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친연(親緣)이 있든, 악연(惡緣)이 있든 모두 마땅히 갚아야 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신체(神體 신의 몸)를 다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대법제자란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다행 중의 다행인데, 만약 우리가 이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부님께 부끄럽고 우리 천국 세계 중생들의 우리에 대한 기대에 부끄러울 것이다.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우리는 한때 천국세계의 왕이었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면 천국세계의 중생을 훼멸할 것이고, 곧 사부님과 맺은 사전의 서약을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법도로서 우리가 이 역할을 잘 연기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니 우리는 이번 연기를 잘해서 마무리지어야 한다. 아무리 큰 연극이라도 언젠가는 막이 내릴 날이 있고, 대법제자들이 사부님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는 그 순간 우리가 중생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주인공 역할을 잘하려면 가장 먼저 법 공부를 잘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정법 마지막 순간에 조금도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 구세력은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고, 최후로 갈수록 사악은 비록 점차 줄어들지만, 그러나 최후로 갈수록, 더욱 표면으로 갈수록, 사악의 표현 역시 더욱 발광할 것이다. 우리는 사악의 표면 가상에 놀라지 말아야 하며, 마땅히 더욱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며 시시각각 대법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는데, 진정으로 정념정행할 수 있다면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그것들은 오직 깨끗이 제거될 역할만 있을 뿐이다. 오직 자아를 내려놓고 인간 세상의 가상을 간파하며 역사적인 각종 역할 속에서 걸어나와 인간 세상의 각종 가아(假我), 각기 다른 역할 속에서 걸어나와 대법제자란 이 진정한 역할을 잘 맡아서 이번 큰 연극의 최후 순간을 잘 연기해야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자비하신 사부님과 함께 무대에 올라갈 것이다! 아름다운 신세기(新世紀)로 걸어갈 것이다.

현단계에서 개인의 얕은 인식이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