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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이야기 2: 초원에서 법을 얻다[草原尋法]

윤회 이야기 2 : 초원에서 법을 찾다[草原尋法]

글 :소련(小蓮)

【정견망 2005년 9월 5일】

* 머리말

논픽션 문장을 쓰는 것은 소설을 쓰는 것과는 달라서 꾸며낼 수 없다. 이런 종류의 문장은 반드시 진실해야하고 어떤 허구적인 요소도 뒤섞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이런 유의 문장을 한편씩 쓸 때마다 모두 자세히 살펴 허구적인 요소가 조금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며 더욱이 대법 사이트의 신용과 명예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자, 더 나아가 중생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또한 법(法)에 대해, 사회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 내가 이 방면의 문장을 쓰는 데 있어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이제 한담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명(明)나라 후기, 강남의 유명한 도시 소주(蘇州)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조정의 부패한 통치로 인해 백성들은 편안히 살 수 없었고 게다가 위충현(魏忠賢)을 우두머리로 하는 환관들의 전횡과 발호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은 아주 고달팠다. 여기에 동림당(東林黨 역주: 동림당은 원래 명대 말 관직에서 은퇴한 고헌성이 1604년에 중국 중남부의 무석에 세운 동림서원을 중심으로 모인 인사들의 모임이었다. 1624년 양련을 중심으로 한 동림당 인사들이 위충현 등 환관들의 전횡에 맞서다가 도리어 수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렀다.) 인사들이 위충현 및 비밀 감찰 기구인 동창(東廠)과 서창(西廠)을 반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정의 특무(特務)들이 소주(蘇州) 성내에서 동림당 참가자들을 체포하자 소주(蘇州) 성 전 백성들의 반대를 받았다. 이 한 세(世)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소주(蘇州)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상주부(常州府)가 있는데 그곳에 장(張)씨 성을 가진 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몇 년 동안 십여 세의 아들[이름이 낙천(樂天)]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남편이 임종할 때 남겨준 유산은 시동생에 의해 모두 탕진되었고 이 때에는 단칸 초가집과 한쪽 발을 저는 당나귀가 재산의 전부였다. 다행히 장씨 부인은 자수 솜씨가 아주 좋아서 상주 자수 작업장에서 일할 때에, 소주(蘇州) 성내의 아주 유명한 자수 작업장 주인의 마음에 들었다.

그 주인이 그녀를 동정하여 소주(蘇州) 성 안에 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어린 낙천(樂天)도 자연히 어머니를 따라 소주(蘇州)로 이사 와서 소주(蘇州) 성내의 한 사숙(私塾)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이 때 소주(蘇州)는 이미 천하에 유명한 자수의 산지이자 조정에 자수와 은량(銀兩)을 바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당시 중국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농업에 의지하여 국가의 지출을 유지했으며 소주(蘇州)와 같이 수공업을 위주로 하는 도시는 별로 많지 않았다.

당시 환관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고 동창과 서창의 특무들은 전국에 널려있었는데 특히 장강(長江) 양안에 더욱 많았다. 그들은 성내에 있는 조금 큰 규모의 작업장에 대해서는 한층 더 심하게 착취했으며 조금만 불만을 표출해도 다른 사람에 의해 밀고(密告) 당해 감금되거나 아니면 바로 살해되었다. 그 유명했던 주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무들이 그 집에 조상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보물인, 자주색 빛이 나는 주전자를 가져가려고 하자 주인이 특무와 몇 마디 말다툼을 했다는 이유로 결국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후 특무들이 한층 더 심하게 착취하자 소주(蘇州) 성내의 전 백성들이 동창과 서창의 특무들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특무들을 잡아다가 성 남쪽 기둥에 묶고는 심하게 매질을 했다. 나중에 조정에서는 관병을 파견하여 이를 진압했는데 그야말로 소주(蘇州) 성을 피로 물들였다.

형세가 돌변하고 가정환경이 갑자기 바뀌자 어린 낙천은 어머니와 함께 또 다시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정처 없이 도처로 떠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회북(淮北), 서주(徐州)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린 낙천은 우연히 학식이 아주 풍부한 노인인 이(李)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지도 하에 글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다. 나중에 과거에 참가하여 수재(秀才)가 되었으나 조정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이후 다시 시험을 쳤으나 여러 차례 합격하지 못했다. 이때 낙천의 나이 20세 무렵이었는데 결국 최후에 과거에 응시했을 때 같이 응시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듣자하니 산서(山西)와 섬서(陝西) 바깥[지금의 장가구(张家口) 북쪽인 내몽고(内蒙古)에 해당]에 부처수련에 정통한 고인(高人)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 세상은 무상(無常)하고 늘 생로병사를 동반하는데, 요즘은 세도(世道)가 날로 쇠퇴하여 살기도 확실히 고생스럽습니다. 차라리 이런 고인을 찾아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법(法)을 얻는 것만 못합니다. 하필 공명을 얻기 위해 시험으로 고생스럽게 노심초사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귀가한 후, 낙천은 자신이 마치 당나라 때 현장법사가 천신만고 끝에 불경을 얻은 것처럼, 몽고 초원에서 초탈(超脫)하는 법을 찾다가 끝내 생명의 초탈을 얻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후에 그가 이 꿈을 어머니와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두 분 모두 말씀하셨다.

“이 꿈은 매우 좋은 계시이다. 만약 득도(得道)한 그런 대덕고사(大德高士)와 인연이 있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몽고까지는 만리(萬里)도 더 넘고 게다가 그곳 사람들은 듣건대 아주 야만적이며, 그곳은 도처에 모두 망망한 초원으로 포악한 범과 표범이 늘 출몰한다고 하는데, 네 혼자 갈 수 있겠느냐?”

“복(福)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신(神)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게다가 저는 법(法)을 구하려고 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현장 법사가 홀로 서역에 가서 불경을 구해올 때 아주 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끝내 진경(眞經)을 얻어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고생과 신체고통을 겪게 하여……”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그렇게 큰 도리를 말해도 나는 이해하지 못하니, 빨리 떠나거라!”
어머니는 낙천의 말을 자르고 길을 재촉하셨다.

“어머님께서도 법을 구하러 저와 함께 가시면 늘 염려하시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다!” 이렇게 모자는 이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장강(長江)을 건너고 안양(安陽), 형대(邢台)를 지나 최후에 장가구(張家口)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 그들이 풍찬노숙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수한 고생을 겪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낙천의 모친이 장가구에 도착하자마자, 풍한(風寒)을 앓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모친은 낙천에게 꼭 불법(佛法)을 찾아야하며 아울러 법에 따라 나태하지 말고 수행해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낙천은 통곡으로 목이 메여왔다. 그는 더더욱 인간 세상은 무상하며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음을 느꼈다. 존경하는 은인은 악인에 의해 감금되었고 학문을 가르쳐주신 이 선생님과는 이별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어머니마저 그야말로 생이별을 하였다. 오로지 불법(佛法)을 찾아야만 비로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이때에 그는 만약 불법을 찾는다면 반드시 법에 따라 수행하려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모친의 장례를 치른 후 간단한 행낭을 짊어진 채 낙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가구를 벗어나 망망한 초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약(文弱)한 낙천은 본래 길눈이 어두워서 길을 잘 몰랐고, 단지 만나는 사람마다 법을 얻은 고인(高人)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참으로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떤 때에 아주 큰 초원을 만나면 몇 십 일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때로는 이리와 같은 야수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그를 해치지 않았다. 그가 아주 배가 고플 때면 길가에서 찐빵과 같은 음식을 주웠고 목이 마를 때면 샘물이 나타났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항상 한 칸의 초가집이나 혹은 몇 가구가 사는 곳이 나타났다. 게다가 현지인들은 아주 열정적으로 손님을 맞아주었고 듣던 것처럼 그렇게 야만적이지도 않았다. 그가 배불리 먹고 마신 다음 신체적인 고통을 피할 수 있게 되면 이런 것들이 또 모두 사라졌다. 처음에 한두 번은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나중에 낙천은 이것은 부처님께서 그를 격려하여 그의 결심을 더욱 견정하게 하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때 낙천은 이미 해 26~7세가 되었고 초원에서의 경험도 이미 풍부해졌다. 신체도 매우 건장해졌으며 옛날처럼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처럼 문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시를 짓기 좋아하는 버릇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몇 년을 지나면서 경험이 아주 풍부해져서 그의 시는 더욱 운치 있고 내포도 더욱 깊어졌다. 원래 이런 시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늘 웅장한 고산(高山)이나 망망한 초원(草原)을 향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어 기분 전환을 하곤했다.

어느 하루 그가 평소처럼 초원에서 홀로 가다가 지평선 저 끝에 걸린 꽃구름과 근처의 산봉우리가 한데 어우러진 것을 보고는 무의식중에 시를 읊었다.

“산악은 꽃구름을 동반해 나는데, 망망한 고해 속의 나는 누구인가? 신선을 찾고 도를 물어 귀진하려니 불법을 만나지 못한 마음 가장 슬프구나! (山岳伴着彩雲飛,苦海茫茫我是誰?尋仙訪道想歸眞,不遇佛法心最悲!)

이런 시를 읊조리다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니 붉은 옷을 입는 여자 아이가 의도적으로 그를 슬슬 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아주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낭자는 무엇 때문에 내 뒤를 쫓습니까?”

여자 아이가 대답했다.
“사실 제가 당신을 뒤쫓은 것은 이미 며칠이 되었습니다. 저는 몽고의 어느 부락 수령의 딸이며 오빠는 다른 부락의 수령입니다. 며칠 전 산보를 하다가 당신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따라왔습니다. 당신은 한족(漢族) 같은데 왜 이런 황량한 초원으로 왔습니까?!”

“어린 낭자는 모를 테지만……” 낙천은 자신의 처지를 아가씨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특히 자신이 왜 여기에 와서 불법을 찾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나이를 따지자면 마땅히 당신을 오빠로 불러야겠지만 사실 저도 어리지 않아요. 올해 벌써 스무 살이니 앞으로 다시는 어린 낭자라고 부르지 마세요!” 여자 아이는 약간 기분이 언짢은 듯이 말했다.

낙천은 “오늘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만난 것 같은데 나는 마땅히 그녀를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어린 낭자라고 부르는 것이 듣기 싫다면 누이라고 부를 테니 빨리 집으로 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아버님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아버님께 곧 돌아가겠지만 그러나 저 역시 법을 얻은 고인(高人)을 찾아 법에 따라 수련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몽고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부처를 믿으며 우리도 이런 일을 믿습니다. 당신만 생사의 무상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두렵고 저 역시 생사를 초탈하는 불법을 찾아 수련하고자 합니다. 아니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가 먼저 아버님께 알리고 다시 돌아와서 우리 함께 대덕고사(大德高士)를 찾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우리는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빠르게 말했다.

낙천도 자기 혼자서 찾는 것이 아주 고통스럽고 매우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다녀와야 합니다. 내가 이 곳에서 기다릴 테니 10일 내로 반드시 돌아와야 해요.”

“꼭 돌아올께요!” 붉은 옷을 입은 여자 아이는 몸을 돌려 떠났다.

대략 7~8일이 지나서, 붉은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울면서 돌아왔다. 낙천이 까닭을 묻자 그녀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원래, 그녀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아버지가 우시면서 그녀에게 비통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녀 오빠의 부락이 다른 부락과 전쟁을 하다 다른 부락에 의해 멸망당했으며 오빠의 몸은 산산조각 났고 게다가 유골마저 태우려고 했는데 다행히 어떤 선량한 분이 오빠의 정강이뼈를 숨겼고, 나중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의 부친에게 보내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은 다른 부락 사람들이 즉각 쳐들어 올수 있으므로 빨리 피하라고 부친에게 알려주었다. 그녀가 낙천을 만난 일을 부친에게 알려주자 부친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얘야! 이 역시 우리 집의 복이다. 능히 불법을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지금 집안이 재난을 당했으니 인간 세상은 정말로 예측하기 어렵단다. 너는 이후에 반드시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잘 배워야한다. 밖에서는 집에서처럼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아버진 저를 너무 얕보고 있어요. 제가 떠나면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또 그 나쁜 사람들이 아직도 아버지를 쫓아와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정말로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얘야, 너는 애비가 늘 “덕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부처님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지 않았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소중히 하렴!” 부친은 눈물을 닦으면서 위로해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낙천에게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후 낙천은 길게 탄식하며 시를 읊었다. “칼빛 피그림자 언제나 지나려나, 인간 세상 은혜와 원한 누구의 잘못인가? 무상함을 내던지고 명리를 버리나니, 정법을 얻지 못한다면 영원이 나태하지 않으리!(刀光血影何时過,人世恩仇誰之錯,抛去無常舍名利,不得正法永不懈!)” …….

이후 망망한 초원 깊은 곳에는 법을 구하는 두 사람의 자취가 남겨졌다. 그들은 함께 고난을 만났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우면서 무수한 고난을 겪어냈다. 그들이 큰 부락을 지날 때 붉은 옷을 입은 여자의 부친 근황을 알아보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녀 부친의 부락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멸망했다고 말하면서 부친의 종적을 모르겠다고 했다. 이렇게 일년이 지나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어느 날 마침 큰 부락을 지나게 되어 다시 한 번 부친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부친이 잘 있다고 알려주었다. 원래 그녀 오빠의 부락과 부친의 부락을 소멸시킨 나쁜 사람들이 서로 알력이 생겨 서로 죽이다가 다른 부락에 의해 소멸 당했다고 했다. 그녀의 부친은 덕이 높고 성망이 있어서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되었다. 그러면서 지금 그녀의 부친이 마침 그녀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는 그녀의 부친에게 급히 알려 노인의 걱정을 덜고자 했다. 며칠 후 그녀의 부친이 직접 수레를 몰고 그들을 마중하러 왔다. 부친은 오랜만에 만난 귀한 딸과 전에 보지 못했던 사위를 보자 기쁨과 슬픔이 한데 엉겨 눈물을 쏟았다.

“얘들아 지금은 좋아졌단다. 재난은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는 좋아질 거다.”

이때는 정말이지 하늘은 높고 땅이 넓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대로 달리고 싶었다. 마침 말을 하는 사이에 지상에 백색의 큰 글자가 몇개 보였다.

“留得中中存(이후에 중국에서 정법을 얻는다는 의미)”

* 후기

나는 2002년 12월에 이 글을 완성했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작년 《제1회 대륙 대법제자 서면심득교류회 》에 투고할 때, 간단하게 몇 글자를 쓴 적이 있으며 지금 이 기회를 빌려 전문을 발표하여, 동수들과 선근[善根]이 있는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드리고자 한다.

이 글을 쓴 목적은 바로 우리가 이전의 생생세세(生生世世) 찾는 과정에 법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는지, 또 그 생(生)과 그 세(世)에 반드시 정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아를 내려놓고 명리정을 버리는 고생스런 찾음 속에서 최종적으로 금생(今生)․금세(今世)에 우리가 위대하고 자비로운 주불(主佛)께서 설법하심을 친히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수승(殊勝)한 연분임을 설명하려는데 있다.

우리가 정진하지 못하고 게으를 때면, 우리는 종전의 우리들이 오늘날 정법을 얻기 위하여 자신을 잊은 고생스런 찾음과, 죽음을 무릅쓴 고난의 여행을 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진(精進)하여, 중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들의 가장 큰 홍원(洪愿)이다!!

주변의 동수들에게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글 중의 인물을 동수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 문장을 쓰는 목적은 우리가 오늘 이곳에 와서 어렵게 법을 얻은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종전 우리 동수들 간의 어떠한 연분도 사실 더 이상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오늘날의 역사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의 명실상부한 “대법도(大法徒)”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은 바로 우리가 마땅히 시시각각 마음속에 기억해야 한 일이다.

이 외에, 나는 《대 사막의 충혼(忠魂)》이라는 글을 썼는데 청나라 때 내가 10만 관병을 거느리고 서북의 대 사막에서 러시아 군대와 피흘려 싸운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시간이 있으면 다시 쓰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쓴다.

문장발표 : 2005년 9월 05일
문장분류 : 【원신불멸】
원문위치: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5/9/5/337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