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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회 시리즈(7) – 부자, 서생과 손이랑

생명윤회 시리즈(7) – 부자, 서생과 손이랑
– 항밍의 친신경력(과거, 현재와 미래)

작가 : 항밍(杭明)

[정견망 2005년 5월 2일]

그날 저녁, 일본 막부시대의 일을 본 후 리사의 친구를 따라 청나라 시기의 장백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문약한 서생인데 집안이 어렵게 되어 나무를 팔고 산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을 도와주며 생활했다. 그의 집안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조의 유훈은 하루도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그의 가훈에는 집안에 남자가 있으면 반드시 과거를 보아 이름을 날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이미 1차 시험을 합격한 서생이었으므로 경성으로 돌어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지금 해온 나무는 마을의 어떤 여자 부자에게 팔아 약간의 여비라도 마련할 생각이었다.

최면 중에 그는 여자 부자에게 계속 한스럽게 말하기를, “정말 인색하군, 저렇게 나무를 많이 해왔는데 돈을 이것밖에 안주다니.” 하지만 그 부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나무를 사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비를 모으기 위해서는 돈을 적게 주어도 나무를 파는 수밖에 없었다. 1년 반 후 그는 마침내 장백산에서 내려와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갔다.

며칠 후 어느 저녁, 그가 장백산에서 내려와 산자락에 도착하니 작은 여관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매우 기뻐하여 그곳에 투숙하여 하루 쉬고 다음날에 먼 길을 떠나려고 하였다. 그가 머리를 낮추어 작고 형편없는 나무집으로 들어가 보니 컴컴한 등불아래 우람한 남자같은 부인이 마침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었다. 여관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부인은 일찍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 기뻐하며 빗자루를 던지고 급히 그를 불러 앉혔다. 그리고 차를 끓이고 모포를 서생에게 주었다. 서생은 며칠 노정의 피로와 기갈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잠시 후 여관 주인은 뜨끈뜨끈한 만두를 한 접시 가져와 마음 놓고 먹으라고 하였으며 서로 소개를 하였다. 이때 서생은 이 여관의 남자주인은 이미 죽은 지 여러 해가 되며 남은 며느리가 계속 이 여관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인은 서생에게 자신을 왕이랑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왕이랑은 서생이 장백산에서 내려온 서생으로 시험을 보러 북경에 간다는 것을 알고 서생에게 안심하고 며칠 푹 쉬고 경성으로 가라고 하였다. 이때 서생은 만두의 맛이 매우 이상했지만 감히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배가 부르다고 핑계를 대며 왕이랑에게 남은 만두를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일찍 왕이랑에게 작별하고 쉬러 들어갔다.

한밤중에 꿈을 꾸다가 놀라 깨어보니 문이 열려 있고 왕이랑이 한손에는 등불을 들고 한손에는 예리한 칼을 들고 그의 침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그런 왕이랑을 보고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여 그저 외칠 뿐이었다. “나는 가난한 선비이며 아무것도 없으니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그러자 왕이랑은 등불을 찬장에 내려놓고 서생에게 말했다. “무서워 마시오. 당신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작은 여관을 나날이 혼자 지키는 것이 외롭고 쓸쓸하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혹시 대형께서 남아 저와 함께 이 여관을 운영하지 않겠습니까?” 서생은 이 말을 듣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절대 안 됩니다. 저는 가난한 서생이며 뜻은 서울로 가서 과거를 보는 것이니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여 가훈을 위배할 수 없습니다.” 이랑은 서생이 거절하자 험악한 눈빛을 드러내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난한 서생, 오늘 저녁 만두는 잘 먹었지?” 서생은 문득 오늘 만두의 맛이 이상한 것을 상기하였고, 얼른 만두속의 맛이 이상하다고 답하였다. 이랑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오늘 저녁 이 집 사위로 들어오지 않으면 내일 저녁은 네가 만두 속이 될거다.” 서생은 이에 그저 용서를 빌며 왕이랑의 말을 고려해보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이 집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몰래 달아날 기회를 보고 있었으며 몇 번 노력했지만 번번이 칼을 들고 쫓아온 왕이랑에게 발견되어 돌아왔다. 그는 할 수 없이 여관에 머물었지만 시시각각 도망갈 궁리만 했다. 동시에 이랑에게 천리를 거역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권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랑은 서생이 지식이 많고 이치에 통달함을 좋아하였다. 또 서생이 과거보러 가는 시간을 끌어 전도를 막고 공명을 망치게 한 것에 약간의 가책이 되어 점점 서생의 권고를 들었으며 마침내 이 일에서 손을 씻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몇 년 후 그들은 이곳을 떠나 양주로 가서 새로운 장사를 하기로 하였다.

양주는 당시 청나라 남북 수로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상업경제문화의 중요한 지점이었다. 게다가 강희, 건륭황제가 여러 차례 남쪽으로 순행하여 양주는 전에 없이 번화하였다. 각지의 상인들이 더욱 많아져 분분히 양주에 회관을 세웠는데 각자의 영업범위와 지방 특색이 있었다. 서생과 왕이랑은 양주로 내려간 후, 회하 강변에 북방의 특색 있는 음식점을 차렸다. 두 사람이 열심히 경영한 끝에 장사가 매우 흥하여 북방에서 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랑이 비록 천리를 거역하는 일을 끊은지는 이미 몇 년이 되었지만, 서생은 여전히 그녀에 대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왕이랑은 때때로 서생이 기회를 보아 그녀를 떠나가려고 하는 것을 느꼈고, 게다가 과거에 살생한 죄과 때문에 걱정과 공포감이 늘 끊이지 않았다.

인생의 인연은 정말 기묘하였다. 몇 년 후 장백산의 냉혹한 여자 부자가 역시 양주로 내려왔고 왕이랑의 음식점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서생은 그 여자 부자를 만나자 깜짝 놀랐고, 여자 부자는 서생에게 과거를 보러 가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양주로 내려와 식당을 차렸느냐 하고 추궁하였다. 서생은 고향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몇 년 동안 두려움과 속박 속에 살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러자 여자 부자는 서생이 이 무서운 여자를 떠나 다시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번의 계획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서생은 도망가는 것에 대해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이랑이 자기를 붙잡던 붙잡지 않던 어찌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절망에 빠졌다. 여자 부자는 여러 차례 서생이 도망가도록 힘껏 도왔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그만 두는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과정에 세 사람은 오히려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악연이 선연으로 되었고, 여자 부자는 거의 매일 밤 음식점에 나타나 오랫동안 이야기하곤 했다. 자신은 재산이 있기는 하지만 늘 인생에 무슨 재미가 없다고 하였고, 이랑은 이생에 지은 죄가 많아 단지 지옥에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인생에 대해 절망하였으며, 서생은 공명에 대해 추구하는 마음이 이미 자취도 없어졌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은 자세히 저울질 해본 끝에 오대산에 들어가 수행하여 여생을 이생의 죄악을 씻는데 보내고 내세의 평안을 얻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오대산으로 들어갔으며 여재주는 목탁을 두드리고, 왕이랑은 기름병을 들고 불상 앞에 나아가 매일 등불을 켰으며, 서생은 가사를 걸치고 삭발하고 수계하여 스님이 되었다. 이후 세사람은 정심으로 수행하여 오대산에서 유명한 스님이 되었으니, 정말로 “칼을 내려놓으면 부처가 된다”는 말과 같았다. 어쩌면 오대산에서 수행한 이 연고로 하여 그들 여자 부자, 왕이랑은 나중에 각각 청나라의 황후, 공주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생이 그녀들과 함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세에 그들은 나뉘어 대만, 대륙으로부터 미국에 도착하였고, 같은 주, 같은 도시에서 서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1998년 그들 세사람은 법륜공을 만났는데, 그 중 여자 부자, 왕이랑은 법륜공 수련을 통해 건강과 마음에 큰 이익을 보았다. 그 왕이랑이 바로 이번 생의 리사이며 서생은 바로 리사의 친구이며 그 여자 부자는 바로 나다.

발표시간 : 2005년 5월 2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5/5/2/32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