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박해 초기의 일부 수련 실화
중국 대법제자 성연
【정견망】
6. 약속을 이행하여 반드시 “감옥중 감옥”을 없애다.
교도소에서의 날들은 하나하나가 가슴이 떨릴 생생한 장면들이며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도 한때 유위적인 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노교소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우리처럼 새로 온 사람들 중 몇 명이 부대장 사무실에서 당원 정보를 등록했다. 나는 1992년에 이미 스스로 그만뒀으니 기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대대장이 그녀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를 불러세우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작은 방(감금실)으로 간다고 말했다.
대대장이 평소에 나에게 매우 정중하게 대했기 때문에 나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고, 나는 그녀와 감금실로 갔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감금실에 갇혀 미친 동수가 몇 명이나 있다고 들었는데 좀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듣자마자 초조해했다. 너도 왔으니 며칠 있어라. 결국 그녀는 방에 들어와 미친 듯이 다른 여경과 함께 나를 감금실에 밀어넣고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수갑을 철문에 걸었다. 그녀는 말했다: 너를 화나게 하고, 감금실도 맛보게 해줄게. 나는 말했다: 당신 이건 너무해, 전혀 절차도 없는데? 그녀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동수들은 내가 새로 온 것을 보고 무슨 이유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왔다고 했고, 동수들은 모두 웃었다. 그녀들은 내가 스스로 들어왔다고 믿지 않았다. 내가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그녀들은 모두 이 사람이 너무 오만하다고 했다, 어찌 흉악한 귀신 같으냐. (나중에 그녀가 유방암에 걸렸다고 들었다.)
감금실 박해로 미쳐버린 동수가 세 명뿐이겠는가, 아마 더 많을 거다. 나는 매우 놀랐다. 나는 동수가 미칠 수 있는 방식과 수단에 대해 듣고 마음이 매우 놀랐다. 신앙 문제 하나로 약물을 사용하여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고? 사람을 죽여? 이 나라의 법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감금실을 해체해야 한다. 그때는 그냥 생각만 했을 뿐, 더 깊이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영창에 갇혔는데, 이는 완전히 사설 법정이어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다. 몇몇 대장이 검토해보더니 내가 너무 ‘선동’을 잘 한다며 거기 있으라고 했다. 결국 갇힌지 반년이 넘었다.
노교소의 영창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임시로 개조한 별도의 감실로서, 총 18개의 작은 망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잡동사니실이다. 이 작은 감실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복도 양쪽에 아홉 개의 감실이 있다. 감호실 안에는 침대가 없고 시멘트 바닥보다 한 치 높은 판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면적은 폭 1미터, 길이는 2미터이다. 이불은 바닥에 깔려 있다.
중점 감시 대상자의 방에는 모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감호실 위쪽 거의 처마 밑에는 약 50센티미터 너비와 30센티미터 높이의 작은 창문이 있다. 비록 감호실에는 긴 등불이 있지만, 매우 어둡고 햇빛이 닿지 않았다. 작은 창문을 보아야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있다. 경찰 당직실로 통하는 두 개의 문은 철 감옥문이며, 그 다음은 여경 당직실과 휴게실, 그리고 앞으로 화장실과 세면장, 그리고 외부로 통하는 문이 있다.
2001년, 6월 노교소는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단절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한다”는 테러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했다. 거의 400명의 대법 제자들에게 수련을 포기하고, 각서를 쓰게하는 등의 박해 행위를 저질렀다.
동수들이 번갈아 가며 감금실에 갇혀 매달려 잔혹하게 당했다. 손을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복도 철문 위에 매달아 발끝을 땅에 대고 매달아 올리면 허리가 90도로 크게 굽어진다. 결국 많은 동수가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각서를 쓰면 다바(감호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이틀 밤 하루 낮, 30시간 넘게 매달렸다. 나는 완전히 육신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수련에 큰 허점이 생긴 것은 내가 구한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사부님을 대할 면목이 없고, 사부님께 부탁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사실 이런 깨달음은 옳지 않다). 어느 동수가 갈 때 말해주었다: 언니, 우리 돌아가서 언니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볼께. 나는 그녀에게 절대 극단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감금실에는 세 명이 남아 있었는데, 우리 두 명은 매달려 있고, 한 명은 매달려 있지 않았다. 우리 둘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두 번이나 수갑과 끈을 들어 올렸고, 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결국 견딜 수 없어서 우리는 노교소에서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내려올 때 갑자기 시멘트 바닥에 심하게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두 팔이 없어진 것처럼 몸의 중심을 잃었다. 무척 애를 써서 움직여 땅바닥에서 잠이들었다. 어느새 그 동수는 우리를 크게 흔들며 소리쳤다: “빨리 일어나, 빨리 일어나, 노삼반(처음에 노교소로 납치된 동수)에게 일이 생겨 동수가 여러 명 죽고 차가 많이 왔어요.” 우리 둘은 그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라 서둘러 교관에게 “보증”을 되찾아 오라고 했고, 그 선언은 무효가 되었다.
그것은 6월 21일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 국내외를 충격에 빠뜨린 15 명의 동수가 집단 박해 반대 사건 중 세 명이 학살당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응급구조된 동수가 다시 작은 방에 갇혔고,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모두 매우 슬펐다. 그녀들은 일어나지 못하고, 말도 못하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을 마시면 내뿜었다. 어떤 사람은 팔을 들 수 없고, 어떤 사람은 몸이 계속 구부러져 있으며, 어떤 사람은 의식이 흐려져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눈앞에서 발생한 이 참사와 나 자신이 30시간 이상 매달린 심각한 불법 행위에 직면하여, 22일 나는 성 사법청과 시 사법국 지도자에게 ‘박해를 긴급히 저지하기 위한 십만 긴급 구조 서신’을 썼다. 부소장은 책임을 추궁당할까 봐 편지를 압수하여 올리지 않았다.
20여 일 후, 계속 누워 있던 한 동수와 교류가 시작되었다. 몸은 반드시 법학습과 연공으로 조정해야 한다. 우리는 동수를 부축하여 한 동작 한 동작의 연공을 했고,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동수의 몸이 점차 회복되었다. 노교 기간이 만료되고 기한을 초과하여 수감된 동수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고, 결국 나 혼자만 남았다.
동수들이 있을 때, 우리는 긴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소통했다. 왜냐하면 환경은 이미 우리가 개척해냈기 때문이었다. 동수가 떠나고 나니, 나 혼자 매일 계획하는 것도 매우 빠듯했다.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위생을 정리하고, 경찰에게 진상을 말하고 법을 외우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여전히 충실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개의 문이 밤에 모두 잠겼고, 불법으로 나를 가둔 감호실도 잠겨 실내에 화장실을 들이라고 했다. 이런 행동들이 이상했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경찰관이 한 명도 없어 밤에 바닥에 누워 진지하게 자신을 찾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찾지 못했다. 내 생각에 사부님이 저를 시험하시는 것인가? 나 혼자 폐쇄된 감실에서 감당할 수 있는지 보자는 건지? 수련 후 나는 두려움이 거의 없었다. 이곳은 힘들었지만, 내 마음속에로 “대법은 끝없으니 고생을 배로 삼으세”(《홍음》)가 기억났다. 사부님, 제가 뭐가 부족하죠? 생각하다가 잠들었어.
이튿날에도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밤에 당직을 서던 여경이 바뀌었는데, 그녀는 복도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걸으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생명을 낭비하네 생명을 낭비 해 …
나는 깜짝 놀랐다, 사부님께서 날 점화해주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이치대로라면 나 혼자인데, 노교도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가둘 이유가 없다. 한 사람 때문에 24명의 여경이 여기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시 감금실에 왔을 때의 장면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감금실을 해체해야 한다”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세상에나, 나는 찾았다. 이것이 내가 그때 말한 하나의 생각이다, 그것이 바로 약속 아닌가? 수련하는 사람이 무엇을 마음대로 승낙하고 실천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정법이 급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도 급한 일인데, 내가 다시 안일한 마음이 생겼는가? 잠시나마 청정함을 누렸다. 이것은 분명 구세력의 배치일 것이다, 사부님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제자도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 이런 박해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이 감금실은 나로부터 끝나야 한다!
셋째 날, 그 부소장이 왔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다시 큰 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나를 집에 보내줘야 합니다.”
그는 연구를 좀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가 떠나자 나는 준비를 시작했다. 이전에, 나는 뜻밖에 몇 가지 정법 비결 스티커를 얻은 적이 있었다. 나는 먼저 발정념을 했다: 사부님 가지를 부탁합니다: 작은 방을 해체하고 박해 중지한다! 나는 열여덟 개의 감실과 당직실, 휴게실 모두에 사악을 억제하는 정법 구결인 “법정건곤, 사악전멸”이라는 스티커를 붙였다.
나는 붙이면서 ‘법정건곤, 사악전멸’을 외웠다. 이틀 동안 CCTV를 피하고 여경을 피한 끝에 드디어 모두 붙였다. 감시실과 당직실 모두 함께 해체하라. 경찰은 박해에 참여하지 말고, 당신들은 구도 대상이어야 한다.
사부님의 가지로 나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큰 방으로 돌아가 많은 동수들과 만났다.
이 노교소가 해체되기까지 10년간 사악의 세뇌기지인 ‘입소교육반’과 대법 제자들을 극도로 박해하여 불법으로 가둔 옥중 감옥(감금실)에 단 한 명의 동수도 가둬놓지 않음으로써 사악에 의한 대법 제자들의 박해와 여러 방면의 피해를 줄였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박해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 부정한 것들을 해체하고 바로잡았다. 나의 가장 큰 깨달음은 대법 제자는 사부님이 주신 대법을 잘 배우고,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가 오직 법에서 깨달아야만 사부님의 힘을 보태어 주시고 회천의 위력이 있다. 사악을 해체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밤의 꿈에서든, 낮에 깨어났을 때이든 마음속으로 수백 번이나 외쳤다: “나는 집에 돌아갈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갈 것이다. 나는 영원히 스승의 진정한 제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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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대궁이 성, 주, 괴, 멸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늘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잊을 수 없다: “누가 나와 함께 세상에 내려가서 중생을 구원하겠는가!”
우리는 각계 천국의 주와 왕으로서 분분히 창세주와 이런 서약을 맺었다: 나는 신의 후광을 내려놓고 주를 따라 세상에 내려와 조사정법 하며 중생을 구원하겠다!
26년의 단련 동안 대법 제자들은 끊임없이 고난을 겪으며 앞다투어 조사정법을 하며 생명을 불러 일으켰다.
사악의 안팎에서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모두 그 추악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죄를 입증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늘에서 정한 것이다. 하늘과 인간이 모두 각성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점차 “선악은 같은 길이 아니고, 얼음과 연탄은 같은 화로에 있지 않다”라는 우주 법칙을 깨닫고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의 위치를 놓고 있다. 정사대전의 최후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결코 “적을 쳐부수지 않으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인내와 강인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진선인真善忍의 대법이 세상에 전해진 지 33주년, 수련을 지도하는 보물 《전법륜》 출판 30주년의 경사스러운 날에, 대법 제자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사람 마음을 내려놓으며 안개를 헤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 우리의 가까운 사람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