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석(他山石)
【정견망】
천지는 화로요 조화가 화부(火夫)이니
인생이란 돌아가는 여정, 전진과 후퇴 모두 험준한 봉우리로다.
예전에 굴원은 냇가에서 읊조리며 《이소》를 써서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지만 나는 위아래를 찾아보려 하네”라는 뜻을 밝혔으니
이것이 바로 어려움을 알고도 전진한 전범이 아니겠는가?
天地為爐,造化為工。
人生若逆旅,進退皆險峰。
昔者屈子行吟澤畔,作《離騷》以明志:
「路漫漫其修遠兮,吾將上下而求索」。
此非知難而進之典範乎?
대우(大禹)가 아홉 하천을 소통시키고, 탕왕(湯王)이 상림에서 기도한 것은
모두 정진으로 천곤(天困 큰 어려움)을 깬 것이오,
공자가 곤경에 처해 《춘추》를 짓고, 좌구명이 눈이 멀어 《국어》를 쓴 것은
모두 고심(苦心)으로 대도를 증명한 것이라.
《상서》에 이르길 “공(功)을 높임은 뜻에 달려 있고, 일을 넓히는 것은 부지런함에 달려 있다”하셨으니, 진실로 정진(精進)의 금과옥조로다.
觀夫禹疏九河,湯禱桑林,皆以精進破天困;
仲尼厄而作春秋,左丘盲而著國語,咸以苦心證大道。
《尚書》有云:「功崇惟志,業廣惟勤」,
誠精進之金科也。
어떤 이가 “정진과 안일을 어찌 구별할 수 있는가?” 물으니
대답하여 가로되 “정진이란 포정(庖丁)이 소를 해체하는 것처럼, 눈으로 소를 보지 않아야 기술이 도에 가깝고; 안일이란 문관은 안일하고 무관은 희롱하니, 오래되면 훈련을 잊고 전투를 망각하는 것과 같다.”
或問:「何以辨精進與安逸?」
答曰:精進者如庖丁解牛,目無全牛而技近乎道;
安逸者似文恬武嬉,久疏戰陣而忘兵革。
옛날 도주공(陶朱公)이 재물을 세 번 모으고 세 번 흩은 것은 이익을 탐함이 아니라,
“군자는 기회를 보고, 달인은 명(命)을 안다”는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오;
범중엄이 가난해 죽을 나누고 고기를 자른 것은 고행이 아니라,
“일이란 근면으로 정교해지고, 유희로 황폐해진다”는 교훈을 따랐기 때문이라.
고로 정진이란 옥을 갈고 닦는 것이오, 안일이란 썩은 나무와 같으니, 그 차이가 분명하다.
昔陶朱公三聚三散,非貪利也,
乃知「君子見機,達人知命」之理;
范文正公劃粥斷齏(jī),非苦行也,
實循「業精於勤荒於嬉」之訓。
故精進如磨玉,安逸似朽木,其別皎然。
옛 성현(聖賢)들을 돌아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도를 얻은 경우가 많았으니
현장(玄奘)은 서역을 가다 유사(流沙)를 넘어서야 진경(真經)을 얻었고;
장건(張騫)은 옥문(玉門)을 지나 만국(萬國)과 소통했으니
이는 모두 “북해(北海)가 비록 멀어도, 한번 바람을 타면 갈 있다”는 뜻이오
稽古聖賢,多履險而得道。
玄奘西行,越流沙而取真經;
張騫鑿空,出玉門以通萬國。
此皆「北海雖賒,扶搖可接」之志也。
왕희지가 연못 옆에서 글씨를 연습해 연못 물이 검게 변하고;
사마천이 치욕을 참으며 사기를 저술하니 글자마다 피눈물을 흘린 것은
모두 “소년 시기는 이미 지났지만, 만년이라도 아직 늦지 않다”는 정신으로,
불멸의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至若王右軍臨池學書,池水盡黑;
司馬遷忍辱著史,字字泣血,
皆以「東隅已逝,桑榆非晚」之精神,
鑄就不朽豐碑。
오호라! 인생은 천지 사이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구나.
어떤 이는 “고깃배에서 늦도록 노래하니, 팽려의 물가까지 울려 퍼짐”을 보고 여유를 부러워하며,
어떤 이는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 울음소리 형양 물가에 끊어지고”을 보고 떠돌이의 삶을 탄식한다.
그러나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자강불식(自强不息)”해야 하니
어찌 완적의 절망적인 울음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맹상처럼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치는” 의지를 배우고,
굴원처럼 “세상에 홀로 깨어 우뚝 서는” 지조를 지녀,
“지세가 다한 곳에 있는 남해는 깊어도”
“홀로 서서 정신을 지키고 근육과 피부가 하나가 되어”야 하네.
嗟乎!人生天地間,忽如遠行客。
或見「漁舟唱晚,響窮彭蠡之濱」而羨閒適,
或睹「雁陣驚寒,聲斷衡陽之浦」而嘆飄零。
然則「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
豈可效阮籍窮途之哭?
當學孟嘗「乘風破浪」之志,
秉屈子「蘇世獨立」之操,
縱「地勢極而南溟深」,
猶可「獨立守神,肌肉若一」。
지금 이 부를 지음은 배움을 권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길 잃은 자들을 깨우치기 위함이니,
“젊어서 학문을 게을리하고, 늙어 책을 늦게 본 것을 후회”하지 말아야 하고,
모름지기 “정위가 작은 가지를 물어다 바다를 메우려 함”을 알아야 한다.
부디 여러분들이 “천지를 이끌고 음양을 파악하는” 박력으로,
“백 살이 넘어도 동작이 쇠하지 않는” 전설을 써내기를 바라노라!
今作斯賦,非為勸學,實欲喚醒迷途:
莫待「黑髮不知勤學早,白首方悔讀書遲」,
須知「精衛銜微木,將以填滄海」。
願諸君以「提挈天地,把握陰陽」之魄力,
書就「度百歲而動作不衰」之傳奇!
[역주: 부(賦)란 한위육조(漢魏六朝)시대에 성행한 고문 문체의 하나다. 운문과 산문이 혼합된 흔히 4자 또는 6자의 댓구로 이어져 사륙병려체라고도 한다. 주로 경물이나 서사를 묘사하거나 비교적 짧은 글로 서정이나 이치를 밝힌 작품도 있다. 비교적 전아(典雅)하고 운(韻)이나 전고(典故)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7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