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源馨)
【정견망】
《서유기》에서 당승사도(唐僧師徒)가 81난(難)을 겪으며 서천(西天)에 가서 경을 얻는 이야기는 수행인들에게 “수련(修煉)”의 길을 보여주는데, 사람이 마난을 겪고 ‘정과(正果)’ 닦아 얻는 “수련” 이야기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수련”이란 이 단어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 두 글자를 듣고 진동할 수 있을까?
최근 명혜 문장 《전화위복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를 보니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적었다. 글은 길지 않지만 실화였고 읽고 나서 마음에 진동을 느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가 예상치 못한 범죄에 연루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갑작스럽고 큰 변화에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동시에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 환경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원래 기대했던 희망적인 생활이 단절되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다. 여기서 다시 물질적인 향수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회 환경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더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느꼈고, 더 이상 세파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이 단락이 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켰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한다. 좀 만족스러운 이들은 생활에 희망과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느끼는 반면, 만족스럽지 못한 이들은 낙담하며 하루하루를 살면서 삶의 희망을 찾으려 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명문대에 가거나,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데, 좋은 직장이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여긴다. 경쟁, 비교, 추구, 끝없는 일속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고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사람마다 모두 추구하는데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기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이 고요해질 때면 늘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과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때 《서유기》에 “당승이 탑을 청소”하는 단락이 떠올랐다. 그 편의 제목은 “때를 씻고 마음을 닦아 탑을 청소하니 마귀를 묶어 바로잡음이 곧 수신(修身)이로다”였다. 당승은 애초 장안을 떠날 때 일찍이 법문사(法門寺)에서 한 가지 서원을 세웠다. 즉 서쪽으로 가는 길에 사당을 만나며 향을 피우고, 절을 만나면 예불하며, 탑을 보면 청소하려 했다. 그들이 제새국(祭賽國)에 도착했을 때, 요괴에게 더럽혀진 보탑(寶塔)을 발견한다. 탑에 있던 귀중한 사리가 사라지면서, 원래 “상서로운 구름이 내려와 덮고, 길한 아지랑이가 높이 뻗쳐 올라, 밤에는 노을빛을 발산해 만 리 밖에서도 볼 수 있었던 보탑의 광채를 잃었다.
당승과 오공은 이 탑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보기 위해 함께 탑을 쓸었다.
층마다 문에는 유리등이 달려 있으나
먼지만 있을 뿐 불빛은 없고
걸음마다 처마 앞 백옥 난간 지나지만
때가 끼고 벌레들만 날고 있네.
탑 속 불상 앞엔 향불 끊어진 지 오래고
격자 창 너머 신상 앞엔 거미줄이 뿌옇게 얽혀 있네
향로 속엔 쥐똥 가득하고 등잔에는 기름이 말라 엉겼구나.
層層門上琉璃燈,有塵無火
步步簷前白玉欄,積垢飛蟲。
塔心裏,佛座上,香煙盡絕;
窗欞外,神面前,蛛網牽蒙。
爐中多鼠糞,盞內少油熔。
이를 본 당승은 탑을 청소해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탑은 모두 13층이었다. 하지만 7층을 청소할 때 당승은 “점차 졸음이 왔고”, 10층에서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 오공에게 마지막 세 층을 쓸어 달라고 부탁했다. 마음 원숭이가 “정신을 차리고” 12층까지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두 마리의 작은 요괴가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마지막 층으로 올라가서 그것들을 붙잡았다. 여기서 마침내 오염된 탑의 시작점을 찾았고 이 “오염원”을 제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가? 내 생각에 사람마다 마음속에 모두 금빛 찬란한 보탑이 하나씩 있지만 이미 요마(妖魔)에게 더럽게 오염되어 보탑이 보통 건물로 변해버렸다. 사람은 이때부터 자신을 잃어버렸다. 당승이 탑을 청소한 것은 그에게 이런 염두가 있고 이런 소원이 있기 때문이고, 그가 한 가닥 수련의 길을 걷기 때문인데, 보탑을 만날 수 있으면 보탑의 금빛이 있는지 보고 탑을 청소하려는 마음을 내어 결국에 보탑에 빛이 다시 돌아와 대지가 밝아지게 했다. 사실 사소한 일에 제때 반성하고 바로잡지 않고 먼지가 많이 쌓이면 ‘마음 속 보탑’이 오염되지만, 반대로 사소한 일에서 눈에 보이는 ‘미세한 먼지’들을 청소한다면 결국 ‘마음 속 보탑’이 다시 빛을 낼 것이다.
다시 처음 언급한 문장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감옥에 갔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수련”의 길을 시작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은 승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염두가 있으면 신불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배치해 주실 것이다. 그녀는 감옥에서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는 많은 파룬따파 제자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파룬궁은 수련”이라는 말을 들었고 “수련”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다음날 그녀는 한 파룬궁 수련생에게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청했다. 이에 수련생이 그녀에게 대법 사부님의 경문을 한 구절 외워주었다. 목마른 사람이 달콤한 샘물을 만난 것처럼 파룬궁에 대해 배울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 밝아지고 행복해졌다. 구치소 생활은 매우 괴로웠고 희망도 위로도 찾을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가장 큰 행복과 기쁨을 느꼈다.
이것은 누구나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진실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이 “수련”의 기연(機緣)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파룬따파는 불가의 상승대법(上乘大法)으로 대법제자들은 예전 절이나 깊은 산속에서 하는 수련과 달리, 세속에서 수련하고, 속세에서 자신을 수련하며, 아울러 대법을 세인들에게 널리 전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린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대법제자를 왜 “신(神)의 사자”라 부르는지 알게 되었고, 그들이 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이런 일을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이 대법을 만나면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과 가뿐함이다.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생명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6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