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혜청(慧青)
【정견망】
나는 대법을 수련한 지 12년이 된 청년 대법제자다. 남편과 결혼한 지 9년이 되었고, 올해 일곱 살이 된 두 명의 소제자가 있다. 우리는 4대가 한 지붕 아래 같은 마당에서 살고 있다. 우리 가족과 자신의 수련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 하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늘 다투곤 하셨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좋아하셨는데, 술에 취하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늘 남동생을 안고 함께 울곤 했는데 감히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이런 모습이 내 마음속에 그림자를 남겼다. 나중에 내가 성인이 된 후 배우자를 선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늘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좋은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 싶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그는 매우 단아하고 목소리도 상냥했다. 나는 그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가졌다. 몇 번 만난 후, 그는 내게 파룬따파가 박해받은 진상을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남편은 아직 학생이었을 때 파룬따파를 굳건히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 공산당의 불법적인 박해를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견지할 수 있다면 이 대법은 분명 바른 것이고, 이 사람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전법륜》을 읽고 나서 나는 파룬따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로 나는 다행히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남편이 외지에서 집을 빌려서 일했고 시댁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들렀다. 남편의 조부모님이 함께 사셨는데 남편은 그분들께 아주 효도했다. 남편은 시댁에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서 갔다. 당시 시부모님도 외지에서 일하셔서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할머니도 동수인데 건강이 아주 좋으시다. 매번 우리가 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께서 직접 요리를 해 주신다. 나는 설거지만 도와드리고 직접 요리할 필요가 없다.
처음 결혼했을 때, 시어머니와 나는 마치 모녀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은 “따님이세요?”라고 묻곤 했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이렇게 잘하겠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자신이 수련인이니 대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부모님(혹은 어른들)께 말씀드릴 때는 늘 “아빠”, “엄마”라고 먼저 부르고 나서 말씀드린다.
그러자 이웃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집 며느리는 말하기 전에 늘 “아빠”, “엄마”를 부르는데 우리 며느리는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어요.“
나는 시부모님께 일 년에 몇 번씩 옷과 신발을 사드리고, 명절에는 용돈을 드린다.
그러다 아이(쌍둥이)가 태어난 후, 우리는 셋집에서 시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시댁으로 들어갔다. 나는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느라 법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 시어머니와 가끔 모순을 겪었다. 시어머니 몸에 배인 담배 냄새가 싫었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시어머니는 가끔 포커를 치러 나가면 나는 마음이 불안정했다.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너무 지쳐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포커를 치러 나가자 나는 더 화가 나서 온갖 트집을 잡았다. 나도 자신의 문제이니 집착심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지만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게다가 법 공부도 충분히 하지 않았고, 발정념도 부족해서, 이런 나쁜 사상을 버리지 못했다. 점차 내가 옳고 시어머니가 잘못이란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남편도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고 여러 번 일깨워 주었지만, 나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과 말다툼까지 하며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피곤한지, 온갖 불평을 털어놓았다. 나중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을 모두 분담했다. 당시 나는 아이 외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법 공부를 마치고 나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끄러워서 시어머니께 사과한 적도 없었다.
이런 상태는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많이 컸고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돌볼 필요 없으니 당신도 법 공부를 잘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2년 넘게 법 공부를 제대로 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깨닫고 “좋아요.”라고 말했다.
법 공부를 시작할 때는 내가 너무 못해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법 공부를 할 때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시어머니가 계실 때는 더욱 부끄러웠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 끝에 법 속에서 사상이 제고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며, 수많은 집착심을 발견했다. 심성(心性)이 좋아진 후, 시어머니에 대한 예전 나의 태도는 사부님의 구도에 면목이 없고, 대법(大法)에 먹칠을 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우면 내심에서부터 자신을 개변시켜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나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억지로라도 불렀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내가 아님을 알았다. 처음에는 부르는 목소리가 작았지만 점점 커졌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시어머니도 나의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누구에게도 예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처음 결혼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어머니께서 직장에 나가시면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점심과 저녁에 시어머니를 위해 밥을 차려드렸다.
시어머님이 젊을 때는 사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시아버지께서 위장병으로 입원하셨을 때는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중년이 되었을 때, 아들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다 중공의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이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더 컸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지금, 시어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서 건강하신 93세 할머니가 계시고,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분별력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있고, 손주들도 건강하다. 시아버지도 마을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계신다.
이 모든 좋은 것들은 다 대법이 주신 것이다. 남편은 박해 때문에 좋은 직장을 잃었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고, 직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하는 일도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4대가 함께 살고 있다. 시어머니도 좋고, 시아버지도 좋고, 시할머니는 오랫동안 파룬따파를 수련해 단 한 번도 아프신 적이 없다. 더 좋은 것은 두 꼬마 제자가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건강하며,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 가족을 부러워하며 왜 우리 가족이 이렇게 좋고 모든 것이 다 좋은지 묻는다. 남편은 그들에게 “이는 대법이 좋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제자는 구도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