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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우주 대법을 받쳐 주셨으니, 어떻게 법에서 증오(證悟)할 것이지, 어떻게 사부님을 도와 대법을 실증(證實)할 것인지는 전부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A 동숙가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는데, 무 두 개가 함께 포장되어 있었다. 그녀가 무 상태를 확인하려고 집어 들었지만 팔에 힘이 없어서 무를 들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예전에 법을 얻기 전의 상태가 생각났다. 당시 그녀는 팔에 힘이 없어서 한 번에 겨우 한 장의 빨래만 할 수 있었고, 두꺼운 솜저고리는 팔 힘이 없어서 제대로 짤 수 없어 며칠 동안 햇볕에 말려야 했다. 그녀는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생각했다. 자신의 수련이 오늘에 이르러 확실히 이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수련했으니 그녀는 지금 자신이 이미 매우 높은 경지에 있다고 확신했다. 이때 그녀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단지 이 하나의 수련 문제만 하더라도 우주의 낮은 층에서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고층차에 이르면 간단한 것으로 수련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오로지 업력을 없애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더욱 높은 층에서 말한다면 모든 번거로움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 높은 층에서는 무슨 소업이요, 무슨 고생이요, 무슨 수련이요 하는 이러한 개념이 없으며 바로 선택이다! 우주의 고층차는 바로 이런 하나의 이치이며, 보아서 누가 되면 바로 그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이치이다. 수련이라고? 우리들은 수련을 배치하지 않았다. 무엇이 수련인가? 우리들은 그를 깨끗이 씻어버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올라가면서 깨끗이 씻는데 바로 깨끗이 씻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층차 중에서는 길을 닦고, 번거로워하고, 고생하고, 소업하고, 수련을 하는 등 이렇게 닦고 저렇게 연마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그녀는 수련이란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상태가 있으며, 이번에 나타난 상태는 사부님께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것이지 병업(病業)을 없애는 것이 아님을 똑똑히 이해했다. 그녀는 법에서 이것을 깨달은 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수건을 빨고 손으로 수건을 짜는데 갑자기 팔힘이 더 강해졌으며 아주 빨리 회복된 것을 느꼈다! 그녀는 법에서 “깨끗이 씻음”을 선택했고 사부님께서는 즉시 그녀를 위해 깨끗이 씻어 주셨으니 아주 신기했다!

A 동수가 법에서 인식한 사례는 병업을 없내는 것[消病業]은 낮은 층차의 수련 상태이고, 깨끗이 씻음[洗淨]은 더 높은 층차의 상태를 나타낸 것임을 실증했는데, 사부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부동한 층차의 수련 상태의 변화를 실증했다. 우리는 늘 한 층차에 머물 수 없고, 늘 한 층차의 이치로 자신을 지도할 수 없으며, 대법 속에서 끊임없이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증오해야 하며, 과감하게 더 높은 층차에서 문제을 보아야 하고, 늘 낮은 층차의 이치로 자신을 가늠해선 안 된다.

반면에 일부 노동수들은 신체에 일단 부정확(不正確)한 상태가 나타나기만 하면 여전히 병업이라고 여기거나, 심지어 어떤 노동수는 신체에 심각한 “병업”이 나타났음에도 법에서 인식하지 못해 유감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런 동수들은 진정으로 고층차에서 문제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고층차의 법리에 대한 증오와 실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늘 낮은 층차에서 배회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가장 높은 우주 대법의 수련자이지만 우주의 가장 낮은 층차인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기에, 속인의 관념이 우리가 대법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고, 무형 중에 늘 일종의 관념(觀念)이 있어서 감히 높은 경지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감히 자신을 신(神)이라 생각하지 못하며, 감히 대각자(大覺者)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낮은 층차의 이치로 자신을 가늠한다.

동수 A가 대법을 실증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낮은 층차의 이치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며 이는 자신이 더 고층차로 돌파하는 것을 심각하게 교란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우리는 과감하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더 높은 층차의 이치에 따라 자신을 가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더 높은 층차의 법리를 어떻게 실증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고층차의 법리를 다 말씀해 주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증오하고 실증해야 하며, 이는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이다! 이는 또한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수요이다!

이상은 우리 법공부 소조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에 관한 교류로 이를 써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