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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병업” 중인 동수들과의 교류

산동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주변에서 병업관을 넘고 있는 동수들을 보고 “병업”에 대한 견해를 써서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법에서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막 대법 수련을 시작했을 때 사부님께서 우리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기에 우리는 이미 더이상 병이 없다. 하지만 우리 신체에는 여전히 일부 업력이 남아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 업력을 무수한 몫으로 나누어 우리의 각 수련 단계 부동한 층차에 배치해 우리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게 하셨다. 따라서 일정 기간 수련하고 나면 일부 병업가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소업으로 여기기만 하면 금방 사라질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업을 짓는 법리(法理)를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에게 업이 있으면 곧 일부 부정확한 가상(假象)이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은 모두 병이 아니라 업력이며, 모두 우리의 수련 제고를 위한 것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사실, 사람에게 병이 생기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오늘날 사람들이 모두 아주 많은 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업력은 음성(陰性)적인 것으로, 그런 작은 영체(靈體)나 좋지 못한 요소들 또한 음성적인 것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의 몸에 올라올 수 있다. 그럼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재앙을 당한다. 만약 사람이 수련하지 않으면 업력 때문에 사람의 일생은 많은 병에 걸리고, 결국 병으로 목숨을 잃어 삶의 여정을 끝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수련인은 ‘병’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박해 전 노수련생들은, 나중에 온 신수련생들을 포함하여 나는 당신들을 모두 제 위치에 밀어놓았다. 오로지 정념정행 하기만 하면 완전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단지 일부 수련생들은 바로 정념이 없기에 모든 것을 구비했으나 박해 중에서 또 사람의 사상으로 문제를 보며, 또 한 무더기 집착하는데, 사부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제 위치로 밀어주셨다. 이 “위치”는 우리 매 제자가 수련을 통해 마땅히 도달해야 할 과위(果位)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매우 높은 층차에서 수련하고 있고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업을 배치하지 않으셨다. 아울러 우리는 이미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

만약 수련의 길에서 “병업”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면, 그것은 병이 찾아온 게 아니라 사부님께서 우리 몸을 진일보로 청리(淸理)해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매 층차마다 늘 우리의 몸을 청리해 주시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연공인(煉功人)은 장래 수련에서 역시 편안하지 않으며, 신체에 많은 공이 나타나는데, 모두 아주 강렬한 것들이 당신의 신체 내에서 오가며 움직여서 당신을 이렇게 불편하게 하고 저렇게 불편하게 한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연공인은 장래 수련에서 몸이 편안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런가? 내가 이해하기에 신체 내에서 많은 공(功)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공이 몸속에서 움직일 때 당신 신체가 가렵고, 아프거나,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만약 그것을 병으로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병을 얻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당신이 병을 얻을까 두려워하면 당신이 병을 구(求)한 것이다. 병을 구했으니 그럼 병이 와서 당신 몸속에 들어가 정말로 병이 날 것이다.

만약 이런 병업 현상을 병이 온 것으로 여긴다면 당신은 이때 곧 속인이니, 속인은 당연히 병에 걸려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을 책임지시기에 한 속인의 신체를 청리해 죄업을 없애주시진 않을 것이다. 이 역시 우주의 이치로, 누구도 어길 수 없다. 만약 이때, 당신이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길 수 있고 즉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자신의 부족과 사람 마음을 찾는 동시에 발정념으로 이러한 사람 마음과 부족을 ‘멸(滅)’하고 심성을 제고해 올라온다면 ‘병업’ 가상은 즉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만약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을 때 효과가 명확하지 않을 때면 마땅히 자신이 정념정행(正念正行) 하지 못한 게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 마음을 지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거나, 의심이 생겼을 수도 있고 또는 사부님께서 당신을 책임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다른 좋지 않은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병업가상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것과 같다.

“예를 들어 표현상에서 단지 깨닫기만 해서는 안 되고 정념정행 해야만 비로소 된다. 수련 중에 정념이 강하지 못하면 고비를 잘 넘지 못하고 지속될 것이다.”(《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당신 몸에서 발생한 이 병업 반응은 고비를 넘는 것”(《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모든 병업관은 다 심성관(心性關)이다. 오직 심성이 제고되기만 하면 넘지 못할 관은 없다.

그렇다면 만약 이런 상황에 직면했다면 우리는 반드시 진정으로 정념정행(正念正行) 해야 한다.

개인적인 이해는 정념(正念)은 발정념이 가장 간단하고 가장 쉽지만, 단 반드시 장시간 견지(堅持)해야 한다. 단지 한두 시간만 해서는 안 되고, 또 며칠 하다 효과가 없다고 포기해도 안 된다. 병업가상이 사라질 때까지 아주 긴 시간 발정념을 해야만 한다.

정행(正行)에서는 연공이 가장 간단한 표현이다. 몸이 더 불편할수록 더 많이 연공해야 하는데, 하루에 여러 번 해야 한다. 한 교류 문장에 따르면, 반신이 마비된 한 동수가 제3장 공법을 81차례 연마하자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마난이 더욱 클수록 우리는 게을러져서는 안 되는데 이 역시 수련인의 의지를 단련하는 것이다.

만약 정념정행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사부님께 바치며,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생사를 내려놓는다면, 그럼 반드시 이 생사의 난관(難關)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전반 수련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잘해야 하고, 사부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병’이란 이 글자를 꺼내기만 해도 나는 듣고 싶지 않다.”(《전법륜》)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병’이란 이 글자를 자주 언급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연공인에게는 병이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련 과정에서 겪는 소위 병업관은 모두 심성관이고 모두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영원히 자신을 진정한 연공인으로 여기고 영원히 연공인에게는 병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하고, 오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길만을 따르며, 진정으로 정념정행하고 마난(魔難)이 나타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구세력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이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으며, 금강부동(金剛不動)한 마음으로 정말 해낼 수 있다면, 지나가지 못할 관난(關難)을 없을 것이다.

희망하거나 현재 ‘병’업 중에서 심성관을 넘고 있는 동수 여러분, 꼭 시간을 다그쳐 양질의 법 공부를 하고, 법에 공력을 들이며, 안으로 마음을 닦는데 공력을 들여, 무조건 안으로 찾음을 해낼 수 있다면 반드시 이 심성관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최근 수련 체험이니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