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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욕의 해악

풍청(風淸)

【정견망】

사악한 중국 공산당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모두 통제욕[控制慾]을 가지고 있다. 전통문화가 전복된 이러한 환경 속에서 보고 들은 것은 모두 중국 공산당이 주입한 왜곡되고 사악한 이론과 거짓, 폭력, 그리고 마피아식의 불량배 행동이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독소로 가득 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독해(毒害)되어 있다. 통제욕은 잘못된 사고방식의 지휘하에 장기적으로 욕망이 팽창해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일종 당 문화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련인으로 우리는 사악한 당 문화에서 걸어나나 전통으로 회귀하는데, 우리는 가정 환경과 사회 활동 속에서 이미 형성된 잘못된 관념과 행동을 찾아내고 발견해야 한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울러 욕망이 계속 강화되어, 이미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또한 이미 그것을 사용하는 데 너무 능숙해져서 생각할 필요조차 없기에 근본적으로 멈추어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개변(改變)하려 하지 않기에 잘 수련하기 어렵다. 아래에서 수련인의 관점에서 통제욕이 표현되는 형식과 그 속에 포함된 사람 마음의 집착 및 해악을 한번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통제욕의 표현 형식

1) 가족에 대한 통제

통제욕에도 크기가 있고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가정에서 어떤 사람은 가족 구성원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표준을 적용해 자녀를 개변시키고 교육하려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단속하는 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한데,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진정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좀 이지(理智)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잘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이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전법륜》)

감정에 대한 압력이 심해지면 부부 사이의 통제로 나타난다. 한쪽이 습관적으로 상대방에게 압력을 가하고, 만약 자신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스러워서 비난하거나 잔소리하고 화를 낸다. 또한 자식들이 노부모를 통제하는데, 더럽고 비위생적이며 생활 습관이 좋지 않다고 꺼리면서 그들을 개변하려 강요한다. 만약 친자식이라면 노인을 직접 비난하거나 야단칠 수도 있다. 며느리나 사위라면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싫어하면서 배우자를 압박해 모종의 불효한 일을 강요할 수도 있다.

2) 자기 구역에 대한 통제

대도시나 중간 정도 도시에는 모두 구역을 담당하는 협조인이 있다. 어떤 협조인은 자기 지역내 동수들을 통제한다. 예를 들어, 이 구역 동수가 다른 구역 동수의 단체 법 공부 및 교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구역 동수들이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그의 관점에서 이는 자기 구역 동수에 대한 책임이다.

사부님께서는 “법(法)을 배움은 자원(自願)해서다. 만약 배우는 자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으며 또한 모순이 나타날 수 있다.”(《정진요지》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을 모두 풀어놓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우리 협조인들은 왜 풀어놓지 못하는가?

3) 자기 주변에 대한 통제

어떤 수련인은 법(法)을 배우기 보다 사람 배우길 좋아하고, 골목소식을 좋아하며, 남의 강연을 듣기 좋아하고, 공능이 있는 사람을 숭배하길 좋아하며, 각종 단체에 가입하길 좋아한다. 이러한 행위는 어느 방면에서 통제욕이 있는 사람들에게 시장을 제공한다. 골목소식 퍼뜨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유사한 사람들을 찾아 집단을 이룬다. 유창한 언변을 가진 사람들은 강연으로 더 많은 추종자를 끌어들이는데 구실은 다른 사람의 인식을 돕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은 금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년간 지속되는가?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 추구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큰일을 해서 남들의 주목받기를 좋아하기에 온라인에 각종 단체를 만들어 지도자 능력을 과시한다.

최근 명혜 편집부에서 《누가 이런 사람에게 시장을 제공하는가》라는 글에서 “고급 통신원”과 “총협조인”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수련생이든 아니든, 핵심은 이런 마성(魔性) 에너지가 법 공부가 깊지 않은 한 무리 수련생들을 이끌거나, 심지어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반본귀진(反本歸真)하려는 큰 소원을 배반하게 만드는 것이다.

2. 통제욕이 생기는 근원

통제욕의 핵심은 ‘공(控)’이란 한 글자에서 비롯된다. ‘공(控)’이란 사람의 심리적 측면에서 통제와 지배를 의미하며, 이는 우주가 사람에게 부여한 자유의지와 저촉된다. 《9평(九平)》 저자가 결산한 중국 공산당의 아홉 가지 유전자 중에서 하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한 것으로, 真(쩐)ㆍ善(싼)ㆍ忍(런) 세 글자를 갈라놓아도 마찬가지로 真(쩐)ㆍ善(싼)ㆍ忍(런)의 특성을 완벽히 구비하고 있다. 왜냐하면, 물질은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되었으며 미시적 물질은 또 더욱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되어 줄곧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진(真) 역시 真(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되었고, 선(善) 역시 真(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되었으며, 인(忍)도 마찬가지로 真(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다. 도가에서 진(真)을 수련함이 어찌 真(쩐)ㆍ善(싼)ㆍ忍(런)을 수련함이 아니겠는가. 불가에서 선(善)을 수련함이 또 어찌 真(쩐)ㆍ善(싼)ㆍ忍(런)을 수련함이 아니겠는가. 사실 표면형식만 다를 뿐이다.”(《정진요지》 〈선을 알기 쉽게 해설〉)

사부님의 우주 특성에 대한 원융불파(圓融不破)한 가르침에 따라, 나는 “통제”는 사악, 기만, 선동, 투쟁, 강탈, 폭력, 이간, 파괴 등 다른 8가지 유전자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통제”에는 이러한 사악한 요소가 있으며, 통제는 진선인과 대립한다. 그렇다면 수련인으로서 어찌 이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 통제욕이 자신과 통제 받는 사람에게 미치는 해악

통제욕 자체는 사람 마음이 강해서 생겨나는데 그 속에는, 이기심, 자아, 쟁투심, 질투심, 과시심 등 많은 집착심들이 숨어 있다. 수련인에게 있어 이런 것들은 다 제거해야 할 사람 마음이자,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집착이다. 수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만약 이 문제를 깨닫지 못한다면 자신이 수련할 기연을 놓칠 수 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심마(心魔)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리하여 이 사람이 일단 이런 문제가 나타나면 그는 스스로 헤어나기가 무척 어려우며, 이런 마음이 곧바로 일어난다. 일어난 후에 그는 곧 무엇이든 다 감히 말한다. 내가 바로 부처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을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겠다. 그는 이런 짓을 한다.”(《전법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아주 깊은 내함이 있으니 우리가 자신을 한번 살펴보고 자신에게 혹여 이런 마음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

통제 받는 사람에게는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 우선, 이러한 통제는 통제받는 사람의 자아를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운 마음에 굴복하거나, 어떤 환희심에 이끌리거나, 혹은 피동적으로 자아를 상실하고 복종하게 만든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것 때문에 생긴 집착심이 아닌가? 이 욕망이 형성한 굴레 속에서 자신을 잃었다. 사부님의 설법은 우리 머릿속에 형성된 층층의 단단한 관념을 깨뜨리는 시도이건만,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뒤집어쓴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4. 사부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진선인 우주 특성에 따라 수련해 자신의 인생 경험 중에 형성한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버리고 결국에 “깨달은 사람”, “대각자”, “도를 얻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리(李) 스승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여러 사람이 에워싸고 듣는데, 그는 거기에서 말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보태어 주워들은 소식을 전한다. 무슨 목적인가? 여전히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 그가 그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녀에게 전하는데, 흥미진진하게 거기에서 말하는 것이 마치 그의 소식이 빠르다는 듯하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듯한데,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골목소식을 전하는 것은 일종 “비자각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가 이해하기에 골목소식을 퍼뜨리는 것은 애초에 나쁜 행동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면 더 이상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다른 사람이 공능이 나온 것을 보자 그는 더욱 조급해하며, 그는 줄곧 공능을 추구하고 천목을 추구하며 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추구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우리 우주 중의 특성, 真(쩐)ㆍ善(싼)ㆍ忍(런)과 차이가 얼마나 큰가! 전부 다 위배되었다. 좀 엄중하게 말하면, 그는 사법(邪法)을 연마(練)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각하지 못한다.”(《전법륜》)

우리는 자신의 모든 ‘비자각적인’ 것들을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각자(覺者)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비자각적인’ 욕망과 집착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 냉정하게 안으로 자신을 찾아봐야 하는데 오직 안으로 찾아야만 그것들을 발견해서 제거할 수 있다.

통제욕을 말하자니, 나는 우리는 마땅히 다른 사람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먹고 싶어 하고, 자고 싶어하는 욕망, 편안하고 안일하려는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자신의 질투심, 과시욕, 쟁투심을 통제해야 한다.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다투려는 마음을 통제해야 한다. 부모, 남편, 아내, 자녀, 손주에 대한 정을 통제하고, 보다 큰 정력을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 구도에 투입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자 또한 우리의 최종 목표다.

개인의 작은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