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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에 담긴 의미는 깊고 넓어

【정견망】

중국어는 아주 특별하다. 생생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전달뿐 아니라 생생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는 표현들, ‘화가 치밀어 오르고[氣不打一處來]’,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火冒三丈]’, ‘마음이 들뜨고 조급해지며[心浮氣燥]’, ‘육신이 주인이 없고[六神無主]’, ‘평정심을 유지하며[氣定神閑]’ 등이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며, 듣는 이 역시 더욱 생생한 장면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단어[詞] 자체가 이토록 생동감 있고 형상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상상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고인(古人)이 실제로 목격한 다른 공간의 진실한 현상을 말했기 때문이다. 중의학에서 중시하는 심(心), 기(氣), 신(神)과 같은 것들은 모두 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체에 매우 중요하며 사람의 상태와 심념(心念)에 따라 다른 공간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내게 깊은 인상을 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마음이 흩어짐(分心)’이나 ‘정신 산만(走神)’에 대해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를 경험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거나 모를 때가 있다. 분명히 보긴 했지만 실제로는 보지 못한 것이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듣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의력을 집중해야만 일이나 공부가 수월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한 층면(層面)에 머물러 있을 뿐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사실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물질 층면을 벗어난다면, 사람이 정신이 팔렸을 때 진정한 자신은 확실히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눈과 귀는 단지 표면 정보를 받아들이는 도구일 뿐, 당신 자신이 그곳에 없다면 도구는 당연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소위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만 ‘진실’하다’는 것은 국한성이 크다. 실제로 존재하는 스펙트럼이나 음파를 사람의 눈과 귀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진정한 자신이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다양한 경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런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일종의 비유가 아니라 가장 직접적이고 진실한 표현이다.

근심[焦慮]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예로 들어보자. 일상생활에서 종종 어떤 일들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마감일 전에 완료해야 할 과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거나,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나 사물이 있거나, 어떤 일의 진행이 예상만큼 순조롭지 않을 때 등이다. 이로 인해 불안한 상태가 발생하는데, 구체적인 표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육신에 주인이 없고[六神無主], 마음이 번거롭고 정신이 산란하며[心煩意亂], 심신이 안정되지 않고[心神不定], 마음이 들뜨고 조급해지는[心浮氣燥] 등등이다.

결국 사람의 심(心), 신(神), 기(氣), 의(意) 등이 모두 비정상이고 안정되지 못한다. 육신(六神)이란 주로 사람의 심(心), 폐(肺), 간(肝), 신(腎), 비(脾), 담(膽)을 주재하는 신을 가리킨다. ‘육신에 주인이 없다’는 말은 바로 이때, 이 신들이 모두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해서 주인이 없는 것처럼 혼란스러워졌다는 뜻이다. 자신이 상황과 환경에 끌려다니며 단지 일의 중요성과 어려움만 생각할 뿐, 주관이 없고 시야가 좁다. 사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자신을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시켜야 한다. 주인이 돌아오면 지혜와 이지(理智)가 따라온다. 이 말 속에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으니 깊이 생각하고 반성할 가치가 있다.

[역주: 육신(六神)을 부연하자면 원래 도가에서 기원한 중의학에서는 오장육부에 다 주재하는 신(神)이 있다고 보는데 간(肝)은 혼(魂), 심(心)은 신(神), 비(脾)는 의(意), 폐(肺)는 백(魄), 신(腎)은 지(志)를 주관한다. 오장을 주관하는 다섯 신에 육부(六腑) 중에서 결단을 주관하는 담(膽)의 신(神)을 더해 육신이라 한다.]

사실 현묘함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단지 현대인이 무신론과 진화론의 독소에 물들어 아주 경직된 사유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신성(神性)의 일면을 매몰시켜 신(神)과의 연결과 소통이 차단되어, 생명이 향상하고 진상(真相)을 요해(了解)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칠 뿐이다. 신전문화(神傳文化)가 어찌 표면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표현들에 그치겠는가. 그 진정으로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함은 자연과 생명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서 더욱 체현되며, 이는 사람에게 회귀로 인도하는 길을 깔아주는 신(神)의 자비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