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羽化)
【정견망】
안[內]과 밖[外]을 구별하는 게 뭐가 어려운가? 누구든 이는 아주 간단한 개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방을 생각하면 방 바깥은 ‘밖’이고 방 안은 ‘안’이다. 지구를 예로 들면, 지각(地殼)은 밖이 되고 지구핵이 안이 된다. 사람의 경우 피부가 밖이고, 내장은 안이 되는 등등이다. 이런 식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방법이 오래되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치기 힘든 일종의 관념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각도를 바꿔 보자. 만약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모든 물질이 다 밖에 있다고 한다면, 즉 방 바깥도 밖이지만 방 안도 밖이 되고, 지각이 밖이면 지구 핵도 밖이 되며, 인체에서 피부, 오장육부, 혈관, 신경 및 대뇌 등이 모두 밖이 된다. 그럼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분명히 안에 속하는 물건이 왜 다 밖이 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물리학에 적용해 물질의 미시적 구조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물질 구성의 층차를 분석해 보면 분자 층차, 원자 층차, 기본 입자 층차 등등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각종 물질은 모두 표면 층차의 것에 불과하며, 확실하고 확실하게 모두 밖에 있다. 진정한 ‘안’은 눈에 보이는 이런 물질을 구성하는 미시적인 공간이다. 우리가 이런 각도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사물을 바라본다면 사람의 관념에 아주 큰 전변(轉變)이 발생할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 공간 속의 각종 물질은 모두 일종 외재적이고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재적인 표현 형식일 뿐이다.
안과 밖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관찰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인체는 거시적으로 보면, 피부가 밖이고 다른 내부 조직은 안이다. 하지만 세포라는 한 층차에서 보면 인체에는 각종 세포들이 있는데 간세포, 폐세포, 혈액세포, 뇌세포 등등, 이러한 세포들 사이에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 예를 들어, 간세포와 위장 세포, 혈액세포와 뇌세포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고, 단지 인체 내에서 위치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세포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안과 밖은 구분이 명확한데, 세포막이 밖이 되고 세포핵과 세포질은 안이 된다.
한층 더 깊이 들어가면 바로 분자 공간인데 분자가 세포를 구성한다. 인체의 가장 표면은 세포의 가장 바깥층이지만, 그 안에도 분자가 존재한다. 신체는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종 다양한 분자로 가득 차 있다. 밀도가 낮은 분자는 혈액을 구성하고, 밀도가 높은 분자는 근육이나 뼈 등을 구성한다. 이들 분자들 상호 간에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부 분자는 인체의 외층(外層)에 있고, 일부 분자는 인체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체를 겨냥해서 한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분자 자체를 말하자면, “밖”은 분자의 바깥층을 의미하고, “안”은 분자의 내부 공간을 의미한다.
한 층 더 깊이 들어가면 바로 원자 공간이다. 원자는 분자를 구성하고, 분자는 또 세포를 구성하니, 그렇다면 인체 표면에도 원자가 존재한다. 인체는 안에서부터 밖까지 모두 각종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자 상호 간에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 원자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밖’은 최외각전자가 되고, ‘안’은 바로 원자핵이다. 더욱 미시적인 영역으로 가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안에도 밖이 있고, 밖에도 안이 있으며 모두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분자를 원자 또는 더욱 미시적인 입자와 비교해서 말하면, 밖이 되고 외층에 속하지만, 세포에 대해 말하자면 분자는 또 안에 속한다. 거시 세계에서 지구를 말하자면 사람은 지구 위에서 공간이 무한하다고 느끼겠지만, 지구 밖에서 보면 지구는 여전히 태양계 안에 있다. 전반 태양계는 또 은하계 안에 있다.
상대성 이론은 3차원 공간에서는 영원불변한 진리처럼 여겨졌던 많은 상식들이, 4차원 공간에서는 상대적이고 조건부이며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했다. 예를 들어, 고전 물리학의 많은 정리와 법칙은 사유의 시공간이나 미시적 물리학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 미시적 입자의 파동-입자 이중성은 고전 물리학의 한계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3차원 공간에서 시간의 길고 짧음, 빠르고 느림, 공간의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 위와 아래, 넓고 좁은 것, 일상생활 속에서의 동서남북, 가볍고 무거운 것 등을 언제나 마주친다. 이러한 현상은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 고유한 관념을 형성했다. 사람들이 자연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이런 현상들이 다른 공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
예를 들어, 다른 공간의 모습은 크고 작은 차이가 없다고 하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주파수 공간에서는 실제로 이렇다. 다양한 전파를 통해 전달되는 모습에 크기 차이란 없으며, 신호의 강도만 다르다.
예를 들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수많은 다른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기장 공간, 자기장 공간, 에너지장 공간 등 수많은 공간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믿지 않으려고 해도 믿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의 시각 범위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에서 0.77μm~0.39μm로 매우 좁다. 이는 물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왜 사람들의 시야가 좁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과 물질이 많은지 이해하지 못한다. 습관적인 사고와 관념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
아주 얇은 종이 한 장도 ‘안’을 보면 무한한 깊이가 있고, 한 떨기 꽃 속에는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가 있으며, 모래알 하나 속에 광활한 우주가 담겨 있는 등등. 하지만 이런 것을 사람의 눈으로는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러한 이치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명확히 설명될 수 있으며, 이를 미시적인 공간 속에서 분석해 보면 확실히 무한히 광활한 ‘안[內]’의 공간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려면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형성된 습관적인 사유와 관념을 깨뜨려야만 한다. 관념은 우리가 사물의 진상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극히 커다란 장벽이다.
리훙쯔 대사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어 주겠다. 불교 중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현상이 모두 환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찌하여 환상인가? 이 확실하고 확실하게 거기에 놓여 있는 물체, 그것을 누가 가짜라고 할 수 있는가?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은 이런 것이지만, 그것의 표현 형식은 도리어 이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오히려 일종의 공능이 있어 우리 물질공간의 물체를 우리가 지금 본 이런 상태로 고정시킬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이런 상태가 아니며 우리 이 공간 중에서도 그것은 이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현미경으로 사람을 본다면 어떤 모양이겠는가? 온 신체는 성글고, 소분자(小分子)로 구성된 것인데, 마치 모래와 같은 과립(顆粒) 모양이고, 운동하는 것으로서, 전자(電子)는 원자핵을 둘러싸고 운동하고 있고, 온 신체는 모두 꿈틀거리며(蠕動) 운동하고 있다. 신체 표면은 매끄럽지 않으며 불규칙하다. 우주 중의 어떤 물체, 강(鋼)ㆍ철(鐵)ㆍ돌 모두 마찬가지로서, 그것 속의 분자성분은 모두 운동하지만, 당신은 전반 형식을 다 보지 못하는데, 사실 그것은 모두 안정된 것이 아니다. 이 책상 역시 꿈틀거리고 있지만 눈은 오히려 진상을 보지 못하는데, 이 한 쌍의 눈은 사람에게 일종의 착각을 조성해 줄 수 있다.”(《전법륜》)
불법(佛法) 《전법륜》이 바로 여러분 눈앞에 있고 이는 속인의 관념을 깨뜨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이 오직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당신은 전통 관념을 바꿀 수 있고, 당신이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당신은 구도 받을 수 있으며, 당신이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당신은 반본귀진(反本歸真)할 수 있고, 당신이 《전법륜》을 읽기만 하면 당신은 속인과 같지 않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37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