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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의 《답인문도》: 고인의 수도의 길을 말하다

청신(清晨)

【정견망】

고대의 많은 수행인들은 선종(禪宗)의 영향을 깊이 받아, 수도(修道)를 이야기할 때면 흔히 모호하고 신비롭게 표현해서 그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왕수인의 《답인문도(答人問道)-도를 묻기에 답하다》는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니
이것만으로도 수행은 오묘하고 오묘하구나
세상 사람들 말해도 아예 믿지 않으며
오히려 몸 밖에서 신선을 찾누나

饑來吃飯倦來眠
只此修行玄更玄
說與世人渾不信
卻從身外覓神仙

시인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단편을 이용해 수행의 도를 지적한다. 즉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라는 것이다. 밖으로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수인(王守仁 양명)은 과연 어떤 이치를 말하고자 했을까? 사실 그가 강조한 것은 바로 ‘구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수행이란 억지로 추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에 순응하고 일상을 편안히 처하는 데 있다. 밥 먹고 잠자는 이런 평범해 보이는 행동들이야말로 수행의 자연스러움과 진실함을 잘 보여준다. 삶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추구하는 가운데 일생을 보낸다. 상인은 이윤을 추구하고, 관리는 권력을 추구하며, 학생은 성적을 바라고, 아이는 장난감을 원한다.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보면, 우리 역시 끊임없는 추구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속 집념(執念)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흔히 일이 자연스레 결실이 있을 것이다. 상인이 본분에 충실하게 경영하면 이익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며, 관리가 국법을 준수하고 백성을 위하면 민심을 얻고 상관의 존중을 받을 것이며, 학생이 성실하게 공부하면 좋은 성적이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이들이 교묘한 수단을 쓰는데, 상인은 불의한 재물을 모으려 하고, 관리는 상관의 뜻에 아부하며, 학생은 시험 출제 경향 분석에 매달리는 등등…. 이 모든 것이 바로 ‘구하는 마음’이 장난친 것이다.

만약 태연하고 평온하게 살면서 본분에 충실하며, 마땅히 얻지 말 것은 억지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도(道)’ 속에 있는 것이다. 이른바 ‘도(道)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 속에 있다[不修道已在道中]’는 말이 아마도 왕양명이 밝히고자 했던 수행의 진리일 것이다.

물론 시대가 다르면 이해도 달라진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집념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외에도, 대법을 수련할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고, 더 고층차의 법리를 체득해야만 진정으로 원만할 수 있다.

불교에서 왜 선종이 생겨나 수행의 길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이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의 역할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불교에 빠져들지 않도록 막고, 끊임없이 도를 찾는 중에서 더 높은 법리가 나타나길 기다리게 한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역사의 모든 배치는 오늘날 대법이 전해지기 위해 바탕을 깐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이 이미 나왔음에도 많은 이들이 오히려 수행하려는 마음이 냉담해졌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