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계(雲溪)
【정견망】
많은 우화에는 인생의 교훈이 담겨 있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를 진정으로 꿰뚫어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종종 독자 자신의 마음가짐과 도덕적 기준에 달려 있다.
대명(大明)의 개국공신 유백온(劉伯溫)의 《욱리자(郁李子)》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제음(濟陰)에 한 상인이 있었는데, 강을 건너다 배가 가라 앉자 물 풀 뭉치 위에 올라가 구조를 요청했다. 한 어부가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배를 저어 구하러 갔다. 배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상인이 급히 큰소리로 약속했다.
“나는 제음의 큰 부자요! 나를 구해 주시면 백 금을 드리겠소!”
어부가 그를 구해 육지로 데려왔지만, 상인은 겨우 십 금을 주었다.
어부가 따졌다.
“방금 백 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겨우 십 금을 주시니, 이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닙니까?”
상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그저 고기잡이에 불과한데, 하루 종일 고생해서 몇 푼이나 번단 말이냐? 오늘 공짜로 십 금을 받고도 부족하단 말이냐?”
어부가 들은 후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며칠 후, 상인은 다시 배를 타고 여량산(呂梁山) 아래로 갔다가 배가 다시 바위에 부딪혀 전복되었다. 마침 그 어부가 이를 목격했다. 누군가 그를 재촉해 구하러 가라고 했지만, 어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사람은 신용이 없는데 내가 왜 또 구한단 말인가?”
이에 그는 강변에 서서 냉담하게 지켜보기만 했고, 결국 상인은 급류에 휩쓸려 사라졌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보고 ‘신용을 지키는[守信]’ 관점에서 접근하며, 이는 성실을 중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욱리자》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옳고 그름을 명시하지 않고, 판단 여부를 독자에게 맡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이야기에 담긴 의미는 ‘말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표면 층차를 훨씬 넘어, 사람 마음의 편협함과 사욕(私慾)을 드러낸다.
상인의 비극은 단지 자신이 한 약속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시기와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보면 그는 이미 구도 되었으니 보수를 적게 주려고 단지 계산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가 마음속으로 타인의 희생을 평가할 때 경멸과 불평이 섞여 있었다. 그는 어부의 “신분이 낮으니” 일반적인 이치를 넘어선 보상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결국 신뢰와 공평마저 사심(私心)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 순간, 그의 ‘신의 상실’은 사실 이미 ‘덕을 잃은’ 것이다.
사람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득실(得失)을 모든 것을 가늠하는 잣대로 삼는다. 이야기 속 상인이 자신이 준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현실에서 열쇠 수리공이 ‘너무 쉽게 번다’고 불평하는 친구들처럼—그들은 모두 한 가지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데, 남이 얻는 것이 ‘너무 쉬워 보여’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사실 이것이 바로 사심(私心)과 질투의 체현이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타인이 얼마나 얻었는지가 아니라, 자신이 진심을 다했는지, 신의를 지켰는지를 중시할 것이다. 일을 하든 장사를 하든 다 마찬가지다. 오직 희생과 얻음이 서로 부합하고 마음이 편하면 그만이다. 만약 늘 자신의 득실로 타인을 가늠한다면 끝없는 비교와 원망에 빠질 것이다.
유백온은 이 이야기를 통해 세인들에게 경고한다. 사람의 화복(禍福 재앙과 복)은 종종 일념(一念)에서 비롯되는데, 믿음과 불신, 공정과 불공정이 비록 말과 행동의 미세한 차이에 드러나지만, 오히려 사람 마음의 높이를 반영한다. 만약 질투와 사욕을 버리고 정직과 너그러움을 지킬 수 있다면,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