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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를 경외하는 생명의 감격 조조의 시 《관창해》 해석

청풍(清風)

【정견망】

《관창해(觀滄海)》

동쪽 갈석산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물결이 어찌나 잠잠한지
산과 섬 우뚝 마주섰네
수목이 빽빽이 자라
온갖 풀은 무성한데
쓸쓸한 가을바람에
큰 파도 용솟음치네
해와 달의 운행
그곳에서 나오는 듯
빛나는 은하수도
그곳에서 솟는 듯
아 지극한 행복이여
마음껏 뜻한 바를 노래해보세

東臨碣石,以觀滄海。
水何澹澹,山島竦峙。
樹木叢生,百草豐茂。
秋風蕭瑟,洪波湧起。
日月之行,若出其中;
星漢燦爛,若出其裏。
幸甚至哉,歌以詠志。

이 시는 조조가 오환(烏桓) 북벌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갈석산(碣石山)에 올라 지은 것이다. 일반적인 해석은 시인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큰 바다의 장관을 빌려 큰 공업(功業)을 이루고 중원을 통일하려는 자신의 웅지와 넓은 흉금을 표현했다고 본다. 이 해석도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서, 당시 시인이 처한 환경과 심태를 진정으로 체험하고, 그 당시 신(神)을 믿고 하늘을 공경하며 신선의 도(道)를 추구하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시인이 천도(天道)의 순환을 목격한 후 표현한 생명의 감격임을 알 수 있다.

“동쪽 갈석산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이 구절은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를 분명히 보여준다. 시인은 갈석산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시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광활한 바다의 장관을 감상한다. 흔히 높은 곳에 서면 멀리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시인이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이 속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머지 구절의 묘사는 이것을 확장한 것이다. “바라본다[觀]”는 단어는 시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하며, 이 시의 의경(意境)이 광활하고 기세가 웅혼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물결이 어찌나 잠잠한지 산과 섬 우뚝 마주섰네
수목이 빽빽이 자라 온갖 풀은 무성한데
쓸쓸한 가을바람에 큰 파도 용솟음치네”

이 구절은 눈앞에 나타난 신기한 장관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여기서 언어가 아주 쉽고 직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氣勢)가 대단히 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대로 수많은 해석이 있었기에 여기서 더 반복하진 않겠다.

“해와 달의 운행 그곳에서 나오는 듯
빛나는 은하수도 그곳에서 솟는 듯”

이 대목이 전체 시의 정화(精華)에 해당한다. 속인들은 이 표현을 시인의 상상이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조조는 분명 낮에 산에 올랐을 것이고, 낮에 해가 뜨는 모습이나 별이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바다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 즉 다른 공간에서는 갈석산에서 일월성신이 교체하고 순환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마치 큰 바다에서 나오는 듯하다. 속인은 볼 수 없지만, 조조는 바로 그 특별한 순간을 보았다. 이는 사실 조조의 근기가 상당히 좋음을 설명하는데 이 장면이 극히 광활하고 감동적이라 일반인이 갈석산에 올라가 육안으로 본 장면을 훨씬 뛰어넘는다.

조조는 비록 한 시대를 풍미한 효웅(梟雄)이었지만, 그 역시 천도(天道)가 순환하고 윤회하는 장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당시 장면을 우리 한번 상상해 보자, 조조가 산 정상에 서 있고 뒤로는 그를 공경하는 문무백관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는 마치 뭇별에 둘러싸인 달과 같아서 사람으로서 최고 정점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웅대하고 고원(高遠)한 장면 앞에서 그는 내심으로 큰 감동을 느낀다. 자신이 비록 북방을 통일해 패업(霸業)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생생불식(生生不息)하며 영원한 해와 달의 교체, 천도(天道)의 윤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찰나의 한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과 자신의 소위 패업조차 실로 지극히 사소한 것이다. 그는 큰 감동을 받은 동시에 깊은 경외감과 생명의 영원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아 지극한 행복이여 마음껏 뜻한 바를 노래해보세”

이런 마무리는 당시 음악을 연주할 때 쓰던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일종 사실적인 묘사다. 시인은 그토록 웅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고 감격한 나머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노래했다.

약 900년 후인 1082년, 소동파가 장강 여행을 마친 후 《전적벽부》를 썼다. 그중에는 “천지에 하루살이처럼 붙어 사니 망망한 푸른 바다에 뜬 한 알의 좁쌀이로다. 우리의 삶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장강의 물이 무궁함을 부러워하노라.(寄蜉蝣於天地,渺滄海之一粟。哀吾生之須臾,羨長江之無窮)”라고 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 사람은 비록 연대도 다르고 신분이나 처지는 크게 달랐고, 둘 다 풍경을 묘사했지만,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모두 천도에 대한 경외와 생명의 영원에 대한 추구이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는 느낌이었다.

반본귀진(反本歸真)해서 생명의 영원에 도달함은 인류 생명 깊은 곳의 갈망이다. 조조라도 좋고, 소동파라도 좋고, 다른 유명 인사라도 좋은데 그들은 모두 아주 좋은 근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 한점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