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源馨)
【정견망】
고개를 내려가면 어려움 없단 말 하지 마시게,
행인을 속여 헛되이 기쁘게 만드는 것이라오.
바야흐로 만 개 산이 둘러싼 속에 들어가 보니,
산 하나가 내보내자 또 다른 산이 가로막는구려.
莫言下嶺便無難
賺得行人空喜歡
正入萬山圍子裡
一山放出一山攔
이 시는 송대 양만리(楊萬里)의 시 《송원을 지나며 칠공점에서 아침밥을 먹다(過松源晨炊漆公店)》에 수록된 여섯 편의 시 중 다섯 번째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아마도 인생의 긴 여정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개를 내려가면 어려움이 없단 말 하지 마시게,
행인을 속여 헛되이 기쁘게 만드는 것이라오.”
산을 오르긴 어려워도 내려가긴 쉽다고 말해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기쁘게 만들지 말라. 우리가 한 가지 목표나 희망을 향해 나아갈 때는 심정이 절박하고 수확을 갈망하는 심정이라 정상에 오르면 편히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정상에 오르지만 막상 가보면 예상했던 아름다움은 나타나지 않는다.
“행인을 속여 헛되이 기쁘게 만드는 것이라오.”에서 “잠(賺 속이다)”이란 글자는 마치 우리가 구하는 것이 다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설정하는 목표와 희망은, 아마도 명예나 이익 또는 정(情)일 것이다. 그런 후 그것을 추구하며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헛된 기쁨에 불과할 뿐이다. 왜 헛되다고 말하는 걸까? 왜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 이익, 정 자체가 환상이기 때문이다. 나면서 가져올 수 없고 죽으면서 가져갈 수 없다. 백 년 후 세상을 떠날 때면, 우리는 이 환상 속에 갇혀 대부분의 삶을 보낸 것을 후회할 것이다.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러한 몸 밖의 물건들은 생명 자체에 대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야흐로 만 개 산이 둘러싼 속에 들어가 보니,
산 하나가 내보내자 또 다른 산이 가로막는구려.”
진정으로 걷고 나서야 우리는 여전히 만 개의 산이 둘러싸인 가운데 산 하나를 지나가도 또 다른 산을 지나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구하는 것을 얻으면 만족하고 진보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또는 한번 고생해서 영원히 편해지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곤경에 처해 늘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벗어날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만 만산진(萬山陣)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실 이 자체가 이미 마음을 닦고 미혹을 타파하는 과정이다.
“속여서 얻음[賺得]”은 “내려놓음[放下]”만 못하다. 무언가 추구하는 것이 있으면 동시에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이 틀속에서 맴돈다면, 산속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지 않은가? 사람들이 “내려놓음”이 아주 어렵다고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내려놓음”은 잃는 것이나 소극적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오히려 정반대다. 자신의 마음이 집착하는 생각[執念] 속에 파고 들어가 가라앉지 않게 하고, 오히려 심경(心境)을 제고하고, 위로 승화해, 자연스러운 득실에 순응하게 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 없이 자연스러움에 융합해야만 비로소 “태산에 올라 뭇 산이 작음을 내려다보는” 큰 시야와 넓은 흉금이 있을 수 있고, 마음이 진정으로 평온해지고 편안할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화(和)’‘합(合)’의 두 신선으로 존경받는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에게 한 가지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세간에서 저를 비방하고, 속이고, 모욕하고, 비웃고, 멸시하고, 천시하고, 미워하며, 속이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습득이 말했다.
“그저 그를 참고, 양보하고, 맘대로 하게 하고, 인내하고, 존중하고, 따지지 말고, 다시 몇 년 후 어떤지 보세요.”
처음 이 이야기를 볼 때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이치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수행하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왈가왈부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마음에 담아둔 모든 걸 다 내려놓은 후 되돌아 다시 그를 보면 더 이상 원래의 것에 얽매이거나 매몰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생명의 진정한 승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선(善)과 악(惡) 사이에서 선택할 때, 이런 외부적인 물건을 내려놓고 마음속의 선량한 본성을 지키는 것은 바로 자신을 위하여 좋은 기초를 다지고, 반본귀진(反本歸真)의 길을 걷는 것으로, 진정한 자신과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big5.zhengjian.org/node/299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