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부귀영화를 부러워하지 않는 소탈하고 고상한 품격: 도연명의 시 《음주》 감상

임우(林雨)

【정견망】

사람 많은 곳에 오두막을 지었건만
수레며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네
묻노니, 그대는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땅이 저절로 외지기 때문이네
동녘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노라니
유유히 남산이 보이네
산 기운은 저녁 어스름에 아름다운데
날던 새들이 서로 더불어 돌아가네
이 가운데 참된 뜻 있으니
무어라 말하려다 말을 이미 잊었다네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
采菊東籬下,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飛鳥相與還。
此中有真意,欲辨已忘言。

도연명(陶淵明)의 시 《음주(飲酒)·5》는 그야말로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이다. 읽어보면 마치 시원한 바람처럼 속세를 초월하고, 마치 표연(飄然)하게 티끌 세상을 벗어난 듯한 선기(仙氣)가 있다. 우리는 흔히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르는데, 그 역시 도연명처럼 술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백의 호방함 속에는 약간의 방탕함이 담겨 있지만, 도연명은 소탈함 속에 고요함과 깊이를 더욱 드러낸다. 만약 이백을 술 마신 후 바람 타고 떠난 선인(仙人)이라 한다면, 도연명은 세상의 분란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산림에 돌아가 은둔한 진정한 은사(隱士)다.

​“사람 많은 곳에 오두막을 지었건만
수레며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네”

시인은 자신이 “사람 많은 곳[人境]”에 살고 있지만 오히려 세속의 소음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인경(人境)”은 “선경(仙境)”과 대응한다. 마치 속세로 쫓겨난 신선처럼, 속세에 있으면서도 청정한 심령(心靈)을 유지한다. 그는 부귀영화, 화려한 옷과 저택을 버리고, 또한 아첨하는 사교와 헛된 명예를 버렸다.

“묻노니, 그대는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땅이 저절로 외지기 때문이네”

시인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인의 마음이 깨끗하고 먼(淸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세속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가 머무는 곳도 자연히 평화롭고 초연해지게 마련이다. “마음이 멀어지면(心遠)”이란 단순히 경지의 고원(高遠)함을 말할 뿐만 아니라 사람 마음과 욕망을 초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녘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노라니
유유히 남산이 보이네”

그가 사는 방식도 극히 질박(質樸)하다. 자급자족하고 형편에 따라 편안히 산다. “국화를 따는” 것은 단순한 농사일이 아니라, 스스로 청렴한 절조를 지키는 상징이고 “남산이 보이는” 장면은 세속의 번잡함을 넘어선 심령의 귀숙처이다.

“산 기운은 저녁 어스름에 아름다운데
날던 새들이 서로 더불어 돌아가네”

황혼 무렵, 산은 고요하고 새들은 둥지로 돌아가니 천지가 다 고요하다. 이런 풍경은 오직 심경(心境)이 고요한 사람만이 그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다. 아마 새들의 귀소(歸巢)는 시인에게 티끌 세상은 사람이 단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 귀진(歸真)만이 영혼의 귀숙처임을 일깨워주는 것인지 모른다. 앞 부분 ‘인경(人境)’과 이곳 “귀환(歸還)”은 한편의 시에서 인간 세상과 선경(仙境) 사이의 대화를 엮어낸다.

“이 가운데 참된 뜻 있으니
무어라 말하려다 말을 이미 잊었다네”

시인이 자연에 완전히 녹아들어 언어를 초월한 상태에 들어가면, 모든 아름다움은 소리 없는 감오(感悟 느껴 깨달음)로 변한다. 진정한 고요와 행복은 흔히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오직 마음으로만 이해할 뿐이다.

도연명은 표면적으로는 인간 세상의 부귀를 버리고 청빈(淸貧)한 삶을 살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오히려 세인이 얻기 힘든 자유와 기쁨이었다. 이런 ‘반인반선(半人半仙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신선)’의 생활은 바로 정신적인 원만이다. 마음에 세속에 대한 염두가 남아 있는 한, 속세를 벗어나는 그 참된 의미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초연하게 외물(外物)을 벗어날 때면 오히려 가장 순수한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을까? 시인 역시 일종의 그리움에 불과할 뿐이다. 더 아름답게 사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법이 널리 전해진 지금이야말로 창세주(創世主)께서 우리를 고향으로 이끄실 때인데 왜 아직 주저하고 있는가?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바로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