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여자 대법제자로, 올해 75세다. 거의 30년간의 수련 동안,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늘 내 곁에 계셨고, 나를 보호하고 자비롭게 인도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고 “인생은 다망하게 분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네”(《홍음 4》〈당신에게 불러주는 노래〉). 점차 나는 사람에서 벗어나 신(神)을 향해 나아갔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 아래 나는 수많은 위험한 관(關)들, 특히 생사이별의 정관(情關)을 극복했다. 먼저 45세였던 큰딸이 세상을 떠났고, 이어서 52세의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이 잇따라 돌아가셨고, 나중에는 44세 셋째 딸, 49세의 둘째 사위, 43세의 막내 아들까지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내가 만약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벌써 죽었을 것이다.
파룬따파는 나로 하여금 고통 속에서 육친 정을 내려놓게 했고 생생세세 은혜와 원한을 해결해 주었다. 대법의 인도와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사부님의 크신 자비와 자비에 감사드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사부님께서 다시 만들어주신 성은(聖恩)에 감사드립니다!
1. 성연(聖緣)을 맺고 자신을 수련
나는 특히 어린 시절부터 불교를 믿어 왔다. 신선, 부처, 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듣고 싶어 했다. 열두 살이나 열세 살 무렵에는 신과 부처님이 진실로 존재함을 믿었다. 일상생활에서 나는 겉보기에 좋은 일만 했을 뿐, 그 이상은 거의 알지 못했다. 부처님을 믿는 것이 좋다는 것만 알았을 뿐, 내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번은 여동생 집에 갔는데 동생이 《전법륜》을 한권 주면서 “한 번 봐. 이 책이 정말 좋아요. 읽어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에요.”라고 했다. 내가 한번 읽자마자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서 수련의 이치를 모두 명확하게 설명해 주셔서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기준점이 생겼고, 삶에 대한 모든 의문이 여기서 풀렸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수련하는 법을 몰랐다. 법리로 남을 가늠하고 남을 수련시키면서 자신이 괜찮을 줄 알았다. 나중에야 점차 수련이란 바로 자신을 닦는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 〈착실한 수련〉)라고 말씀하셨다. 동수는 거울과 같다. 마땅히 이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닦아야 한다.
2. 큰사위와 은원을 풀다
1998년, 아이들이 해고되어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아이들은 하이라얼(海拉尔)에서 문구점을 열었고, 세 명이 동업했다. 나는 그들에게 24만 위안을 주었다. 그런데 큰사위는 매일 술을 마셨고, 술만 마시면 주사(酒肆)를 부렸다. 결국 둘째 사위는 그곳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둘째 사위는 실업 상태라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막 법을 얻었기에 이익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고 둘째 딸 집에 매년 1만 위안씩 생활비를 주었다.
큰사위는 내가 둘째 사위에게 매년 1만 위안씩 준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달라고 했다. 하지만 큰사위는 가게를 운영했기에 나는 그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터무니없는 요구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전에 선물을 준 적이 없어서 승진이 늦어졌다고 했다. 우리 집에 찾아와 문을 쾅쾅 두드리고 종이를 태우며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지전을 태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는 늘 이렇게 했다.
처음에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속으로 내려놓지 못했으면서도, 그저 겉으로만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내가 이미 너희에겐 24만 위안을 빌려줬다고 하자, 그는 “돈을 빌려주셨다고요? 누가 빌려줬어요? 차용증이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심지어 우리 집에 전화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한번은 손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받은 줄 알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중에 손자가 내게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한신이 남의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가는 굴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고, 내 처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인(修煉人)이니 참음을 닦고 선을 닦으며 이익심을 닦아버려야 한다. 내가 그에게 빚진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 질투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되며 선하게 대해야 한다. 나는 그가 올 때마다 대접해 주었지만, 그는 술을 마시고 나면 늘 심한 주사를 부렸다.
나중에 법 공부를 통해 그의 주의식(主意識)이 약해서 늘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것을 알고 불쌍하게 여겼다. 이런 시달림을 6, 7년 동안 겪다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그에 대한 나의 은원(恩怨)은 끝났다.
3. 남편이 뇌출혈로 사망
2002년 음력 5월,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성(省) 의과대학에서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병은 내게 큰 타격이었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나중에 남편은 식물인간이 되어 매일 분쇄기로 유동식을 만들어야 했다. 먹고 마시는 것부터 화장실 가는 것까지 모든 것을 돌봐야 했다. 2년 넘게 나는 침대에서 자지 못했고, 이는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대법제자로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외손자에게 도움을 청해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을 얻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수련인의 기준에 따라 진심으로 남편을 돌봤고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비록 남편이 과거에 내게 상처를 주고 바람을 피웠지만, 나는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수련하고 싶었고 다그쳐 수련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 고향은 천국에 있고, 이곳은 단지 잠시 머물 뿐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전법륜》)
무슨 아내와 자식, 부모, 형제들은 모두 나의 수련을 돕기 위해 온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서 했고 자신을 닦았으며, 해내는 것이 수련이다. 2년 반 후, 남편은 쉰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스스로 생활의 무게를 책임지고 계속해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을 수련했다.
4. 부모님 노후를 돌보다
6개월 후, 나는 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왔다. 당시 아무도 부모님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과 땅, 그리고 모든 것은 아들과 손자에게 주었지만 아들과 손자 모두 더 이상 노부모를 돌보지 않았다. 어머니가 손자에게 돈을 달라고 했지만, 손자는 주지 않았다. 나는 “그냥 딸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도 굶지는 않으셨으니 그들에게 화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그들을 고소하려 했지만, 나는 “고소하시면 안 돼요, 걱정 마세요. 제게도 두 분이 먹고 살 만큼은 있어요. 두 분 노후를 책임질 테니 걱정마세요.”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일단 부모님을 위해 집을 빌렸다가 남편이 사망한 후 부모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는 아들과 손자가 돈을 주지 않아 병이 나셨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내 돈 2,000위안을 주면서 아들과 손자에게서 받았으니 일단 쓰시면 나중에 더 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파룬궁 진상을 전했다는 이유로 사악에 의해 불법 납치되어 감금되자 아버지는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그리움 속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일단 요양원에 가셨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까지 나와 함께 사셨다.
5. 내 생명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2017년에 나는 혈뇨 증상이 나타났고 혈전이 많이 나왔다. 처음에는 소업(消業)으로 여겼다. 하지만 두 번이나 아주 심각했다. 그 후 지방 암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의사는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 벌써 자궁경부암 말기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 한 관(關)을 넘지 못하고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았다. 독실에 있어서 비록 법 공부와 연공을 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불편해서 집중할 수 없었고 몸이 몹시 야위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웠고, 누워서만 법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는데 수련에 작은 일이란 없음을 깨달았다. 반드시 자신의 心性(씬씽)에 문제가 있고 누락이 있다. 나는 자신에게 과시심, 숭배심, 두려움, 또 환희심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타게 했음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집에 가야 합니다. 여기서 속인처럼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건 병이 아닙니다.“
집에 돌아온 후 의사는 10상자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세 상자를 먹었지만, 먹을수록 더 괴로웠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무슨 연공인(煉功人)인가? 나는 더 이상 약을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남은 약을 침대 밑에 두었다. 처음 약을 끊었을 때는 숨쉬기도 힘들었고 죽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며 자신을 바로잡았다. 동수들도 와서 나를 도와 법 공부와 발정념하며 법리에서 교류했다. 나는 ‘나는 대법제자이니 내 명(命)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중생을 구도해야 합니다.“
시누이가 병문안을 왔다가 내 상태를 보고 약을 끊은 것을 보고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어쩜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하세요? 이렇게 심각한데 왜 치료를 받지 않으세요?“
나는 “아가씨 괜찮아요. 나는 연공인이고, 사부님께서 관할하세요.”라고 말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 아래 나는 약과 주사를 끊고 매일 법 공부와 연공만 했다.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 덕분에 두 달 남짓만에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나중에 다시 진찰을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올해 설 연휴 전에 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으러 오라고 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아들은 “어머니는 완치되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당신 어머님이 목숨을 건지셨군요!”라고 말했다. 지금 이미 9년이 지났고 나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다. 친구와 가족 모두 대법의 신기(神奇)와 초상(超常)성을 목격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대법은 사람을 구하러 왔음을 명심하라고 말했고, 그들은 모두 동의했다.
6. 5~6년 사이에 세 자녀가 사망
2019년, 막내딸이 갑자기 병에 걸려 44세의 젊은 나이에 외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아서 울었다. 장례를 치른 후 몸이 다시 불편해졌다. 인간 세상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이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려면 다그쳐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직 수련만이 나를 고통의 바다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었지만, 법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전법륜》)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전법륜》)
나중에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니 정(情)에 얽매일 수 없다. 나는 떨쳐 일어나야 한다.’ 3개월에 걸쳐 법 공부를 하고 나서야 겨우 완화되었다. 가끔 생각이 나면 여전히 마음이 괴로웠지만, 지금은 완전히 좋아졌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정(情)도 닦아버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든 일어나는 법이다. 큰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마흔아홉이던 둘째 사위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쓰러져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나는 둘째 딸이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이 되었다. 또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그들 걱정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둘째 딸은 줄곧 10년 넘게 우리와 함께 살았다. 때로 내가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최선을 다해 딸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려 했다. 나는 내가 수련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고 원망을 닦아버리며 자비심을 닦아내야 한다. 사람은 모두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수련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사부님이 계시니, 이 기연을 잘 잡아 잘 수련해야 하고 그들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둘째 사위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2022년, 막내아들이 마흔세 살의 나이에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별과 죽음의 고통이 잇따라 찾아왔다. 발병한 지 30분 만에 병원에 갔고 병원에서 한 시간 넘게 응급 치료를 받았지만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죽음은 마치 마른 하늘의 날 벼락과 같았다. 내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슬하에 1남 3녀로 아들이라곤 이 아이 하나뿐이었다. 예전에 가족계획을 할 때는 아이를 함부로 가질 수 없었고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말하자면 내겐 아주 “비싼” 아이였다. 1981년 대규모 낙태 운동이 벌어졌을 때, 병원에 정전이 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살릴 수 있었다. 나중에 임신 6, 7개월이 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낙태를 강요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그래서 남편이 억지로 며칠 동안 “학습반”에 참석해야 했고, 승진도 못하고,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이제 마흔이 넘은 한창때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인생이란 이렇게 고생스럽고 부질없다. 인생이란 나그네일 뿐이다. 나는 법을 얻고 수련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사람은 수련하러 온 것으로, 나는 다행히 헛되이 오지 않았다.
7. 생사를 간파하고 고생스러울수록 더욱 수련
인간 세상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살아서 이별하고 죽어 갈라서며, 노인이 젊은이를 떠나보내는데, 이런 매 한 장면이 내 생명 속에서 상연되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생명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사부님의 대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내가 대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다! 내 생각에 매 차례 생사이별(生死離別)이 내게 고험이었는데,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는 모두 명이 있으니, 나는 이때문에 소침해질 수 없다. 생생세세에 진 업의 빚이 있고, 구세력은 정(情)으로 나를 파괴하려 하는데 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하고 이런 것들을 승인하지 않겠다!
나는 실망하지 않고 굳건히 대법을 수련했다. 대법은 내게 인생을 깨닫고, 생사를 꿰뚫어 보게 했으며,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수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며 또 제가 구해주길 기다리는 중생이 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굴하지 않으며 정관(情關)을 하나하나 극복했다. 이를 통해 수련에 대한 신심이 더욱 강해졌고 대법에 대한 정념이 더욱 굳건해졌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 이루어 창궁에 오르네
慈悲(츠뻬이)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
(《홍음》 〈원만공성〉)
생사의 대관(大關)에서 내가 관을 넘도록 도와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주 대법을 전해 사람이 된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真)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법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해, 사람의 관념을 닦아버리고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8. 사부님께서 “수련을 잘하라”고 격려하시다
2018년 가을, 병업가상(病業假象)이 나타났다. 숨을 쉴 수는 있어도 들이쉬기가 힘들었는데 마치 심장병 상태처럼 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눈치챌까 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자료점에도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꿈에 사부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내가 너를 구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가슴 부위를 만지시더니 병을 떼어가셨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을 잘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사부님의 손을 잡았고 크게 감동했다. 사부님은 위풍당당하셨으며, 손이 너무 크고 또 따뜻했다. 나는 울었다. 내게 무슨 덕과 재주가 있기에 사부님께 이렇게 심려를 끼치고 또 직접 우리 집에 오셔서 나를 구하게 하셨을까? 나는 즉시 사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저는 수련을 잘하겠습니다, 수련을 잘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이렇게 울다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자신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꿈만 같은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그 광경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밥을 먹은 후 다시 자료점에 다시 가서 진상자료를 만들었다. 그 이후 더는 재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시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인생은 짧은 것
잠시 여관에 든 것 같다네
올 때 발한 서원 잊지 말거라
명리정구(名利情仇)로 머뭇거리다
언제 깨달아 집으로 돌아가리”
(《홍음 3》 〈어리석음〉).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반드시 잘 수련하겠습니다!
반드시 잘 수련하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가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대법을 얻기란 쉽지 않고, 사람 몸을 얻는 것도 쉽지 않으니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3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