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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체 내 ‘구세력’을 제거하자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엇이 부처인가? 여래(如來)란 진리를 딛고서 여의롭게 왔다는 이런 하나의 세상 사람의 호칭이지만, 진정한 부처인 그는 우주의 보위자(保衛者)이다. 그는 우주 중의 일체 바른 요소를 책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서 그것들도 그것들이 법에서 벗어난 후 心性(씬씽)이 있는 위치를 충분히 표현했으며, 그것들이 순결하지 못한 일면을 충분히 폭로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일에서 마땅히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각종 교란이 아주 많이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 오늘날 개인수련을 하는 수련생의 心性(씬씽) 표현과 지극히 비슷하다.”(《미국서부법회설법》)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구세력의 출현은 사부님 정법에 대한 교란이고 구세력의 극단적인 사(私)의 체현을 폭로한 것으로, 모든 것은 다 사리(私利)를 위하고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교활하게도 자신이 빠져나가기 위한 한 세트 변명까지 늘어놓는다. 대법제자는 일찍이 구우주의 생명이라 자신의 신체 내에도 사(私)라는 변이된 물질이 있다. 정념(正念)이 강하지 않고 사심(私心)이 너무 강하고, 욕망이 아주 클 때, 이 사(私)라는 변이 물질이 틈을 타는데, 대법제자가 법에 없는 빈틈을 파고든다. 이는 모순에 부딪혔을 때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고, 법으로 가늠하지 않으며, 자신을 견지하고, 관념을 고수하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하는 행동이 구세력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는 조사정법해야 하는데 자신의 수련이 오히려 저애 작용을 일으키고 세인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오직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사람만 보게 한다. 이렇게 하면 구세력이 사람을 훼멸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각지 설법 9》 〈2009년 워싱턴 DC 국제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오직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만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볼 수 있고, 법(法)으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법(法)에 의해 깨끗이 씻겨진 생명만이 신우주의 표준에 부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구우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사악을 해체할 수 있고 자신의 사(私)가 제거되어, 우주 체계의 생명이 구도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킴”(《정진요지》) 내지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전법륜》)의 표현이다.

모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찾는 이것은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오히려 잘하지 못하는가? 우리에게 사람 마음과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정사(正邪)의 대결은 자신의 공간장(空間場)에서 드러나는데, 사부님께서 주신 신통을 운용하고 사부님께서 주신 법보(法寶)인 ‘안으로 찾기’를 통해 우리는 구우주의 변이 물질을 해체하고, 사악을 해체해, 법에 동화할 수 있다.

대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다. 구우주의 변이는 사람 마음이 변이된 것이다. 우주는 위아래가 관통된 것으로 과거 구우주 체계의 지혜는 한계가 있고, 흠이 있어, 원용(圓容)하지 못했다. 구우주의 특성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이고, 신우주의 특성은 무사무아(無私無我)다. 사념(私念)이 나오는 것은 바로 구우주의 변이 물질이 폭로되는 것이다. 이때 만약 안으로 찾지 않고, 법(法)으로 자신의 변이 물질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곧 구세력에 이용당해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할 것이다.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 문제가 아니다. 대법을 대표하는데 대법제자는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에 일언일행(一言一行)이 모두 아주 중요하다. 대법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제때 자신 공간장 안에 있는 구우주의 변이 물질을 제거하는 것 역시 중생을 구도하는 한 가지 체현이다.

현 단계에서 느낀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