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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史官)을 두려워한 송 태조

묵옥(墨玉)

【정견망】

고서 《속수기문(涑水紀聞)》에 이런 기록이 있다.

송 태조(宋太祖)가 일찍이 후원에서 참새를 잡고 있었는데, 어떤 신하가 “급한 일”이 있다며 뵙기를 청했다. 태조는 급히 그를 불렀으나, 그가 아뢰는 것은 평범한 일에 불과했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어찌하여 “급한 일”이라고 하였느냐고 꾸짖자, 신하가 답했다. “신은 이 일이 새를 잡는 일보다는 더 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제는 더욱 노하여 도끼 자루를 들어 그의 입을 쳤고, 이 두 개가 떨어졌다. 그 신하는 천천히 몸을 숙여 이빨을 주워 품속에 넣었다. 황제가 소리쳤다. “네가 이빨을 품에 품은 것은 나를 고소하려는 것이냐?” 신하가 침착하게 답했다. “신은 감히 폐하를 고소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관이 반드시 사실대로 기록할 것입니다.” 태조는 이 말을 듣고 놀라기도 하고 탄복하기도 하여, 결국 금은과 비단[綿帛]을 상으로 주고 위로했다.

옛말에 “문관은 간언하다 죽고(文死諫), 무관은 싸우다 죽는다(武死戰)”고 했다. 무장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국토를 지키기 어렵고, 문관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군주를 깨우칠 사람이 없다. 저 대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황제에게 맞선 것은, 태조의 행위가 경중(輕重)을 잃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며, 극히 위험한 방식으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소위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를 곁에 두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조금만 부주의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본 송 태조는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고 시비를 분별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주왕(紂王)과 같은 군주였다면, 이 대신은 아마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욕망이 있기에 부적절한 일을 저지르기 쉽고 심지어 통제력을 잃기도 한다. 송 태조가 새를 잡은 것은 평범한 사람의 한순간 방종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를 구속해야 하며, 법률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지위는 존엄하여 법률이 그들을 제어하기 어렵다. 제왕에게 진정으로 꺼림칙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종종 사관이 붓을 잡고 곧게 기록하는 것이다. 결국, 누구도 역사서에 욕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속에 대해 말하면 신불(神佛)의 “대자재(大自在)”가 떠오른다. 신불이 자재(自在)로운 것은 마음대로 망령되게 행동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욕망이 없기 때문이며, 그 행동이 우주의 법리(法理)에 부합하고 우주의 법리를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성이 순수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대자재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이 만약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줄여[淸心寡欲], 거친 음식과 담백한 차에도 만족할 수 있다면, 그러한 생명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울 것이다. 사람이 욕망이 너무 많으면 쉽게 곁길로 새거나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다시 황제를 생각해 보자. 새 한 마리를 잡는 것에도 대신의 간언을 받을 수 있으니, 그들의 삶은 사실 자유롭지 못하며 보통 사람보다도 더 구속된다. 이것이 아마도 진정한 현명한 군주의 삶의 실제 모습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