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창밖은 티끌과 같은 일이요,
창안은 꿈속과 같은 몸이라네.
이미 이 몸이 꿈임을 알았으니,
모든 일 티끌처럼 내버려두리라.
窗外塵塵事
窗中夢夢身
既知身是夢
一任事如塵
남송(南宋)은 시인들에게 있어 비애의 시대였다. 마음 호방함은 나라의 패망과 함께 이미 사라졌고 가슴 속에는 그저 격분만이 남았다. 남송 시인 범성대(範成大)의 《십월이십육일삼게(十月二十六日三偈)》는 제목도 따로 없고 그저 날짜만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모든 일 티끌처럼 내버려두리라”는 구절에 참으로 부합하는 것일지 모른다.
“창밖은 티끌과 같은 일이요,
창안은 꿈속과 같은 몸이라네.”
“창밖”이란 외부 세계를 가리키는데 자기 이외의 일이자 또는 조정(朝廷)의 정사로도 이해할 수 있다. “티끌과 같은 일”이란 수련하는 사람은 인간 세상의 일을 티끌 세상(塵世)이라 부르고 또한 세속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을 두고 “티끌 인연(塵緣)이 다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다. 수련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세상의 일은 모두 작은 일이며 마치 바람에 날리는 티끌 먼지처럼 뿌리도 근거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마치 비몽사몽간에 느낀 감회를 서술하는 것 같다.
“이미 이 몸이 꿈임을 알았으니,
모든 일 티끌처럼 내버려두리라.”
기왕지사 한바탕 꿈임을 알았다면 그럼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든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시인의 마음속에 약간의 아쉬움 속에서 마음의 여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남송에는 악비(岳飛), 육유(陸遊), 신기질(辛棄疾) 등 중원 회복을 꿈꾸던 의사(義士)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아무런 공(功)도 세우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곳에 온 목적 자체가 이곳에 와서 인생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법(法)을 얻기 위한 토대를 닦는 데 있기 때문이다.
남송의 등장은 겉으로는 비극처럼 보이지만 사실 역사의 안배였다. 즉 인간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으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천상에 있다는 사실을 세인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취지다. 그러니 인간 세상의 소위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하루빨리 사람 마음(人心)을 내려놓고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소원이다.
사람은 마난(魔難)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사고하는 법을 배우며 자신의 미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시인의 처지가 비극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또한 좋은 일이다. 시인으로 하여금 인생의 진실한 목적을 깨달아 더는 인간 세상 티끌 같은 일에 집착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티끌(塵)”이란 글자를 세 번이나 사용했다는 점이다. 천상에서 볼 때 인간 세상의 만물은 그야말로 티끌과 같다. 티끌에는 미미하여 보잘것없다는 뜻, 뿌리가 없어서 바람에 떠돈다는 뜻, 그리고 아름답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인의 표현 방식이 좀 소극적이긴 하지만 그때는 문화를 다지는 과정이었고 오늘날 사람들이 법(法)을 얻기 위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