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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후한서>에 기록된 신선의 이야기: 왕화평이 시해하여 신선이 되고 손옹은 몹시 후회하다

덕혜

【정견망】

《후한서(後漢書)》는 남북조 시대의 역사가 범엽(范曄)이 편찬한 사서로, 이십사사(二十四史)’ 중 하나이다. 본서는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와 더불어 ‘전사사(前四史)’로 일컬어지며, 그 안에는 간략하나 깊이 생각해볼 신선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 북해군(北海郡, 현 산둥성 웨이팡시 일대)에 왕화평(王和平)이라는 수도인이 있었다. 그는 본래부터 도를 좋아하고 도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스스로 필히 신선이 되리라 굳게 믿었다. 제남군 출신인 손옹(孫邕)은 젊은 시절 그를 섬겼다.

이후 손옹은 왕화평을 따라 동한의 수도로 갔으나, 왕화평은 병에 걸려 곧 세상을 떠났다. 손옹은 예법에 따라 그를 안장하였다. 왕화평이 동도현에 남겨둔 도가 서적 100여 권과 도가 단약이 담긴 수많은 자루는 손옹이 임의로 타인에게 주었다.

후에 왕화평의 제자인 하영(夏榮)이 손옹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왕화평 스승님은 사실 시해(尸解)하여 신선이 되신 것입니다. 즉, 가짜 죽음을 가장하고 육신을 떠나신 것이었지요.”

손옹은 그때서야 왕평화가 동도현에 남긴 서적과 단약이 진정한 수련의 보물과 선약(仙藥)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깨달음이 미천하여 천운의 인연을 이렇듯 놓쳤음을 한탄하였다.

​손옹은 당시 역사적으로도 비교적 중요한 인물이었다. 역사가 후한에서 삼국시대로 넘어갈 무렵, 그는 조위(曹魏)의 이부상서(吏部尚書)를 지냈고, 후에는 광록대부(光祿大夫), 관내후(關內侯)를 거쳐 ‘건덕정후’에 봉해졌다. 그는 하안(何晏), 정충(鄭沖), 조희(曹羲), 순철(荀辙) 등과 함께 《논어》의 여러 주석을 모아 정리하고 바로잡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편찬하여 조정에 올리기도 하였다.

​정사(正史)인 《후한서》가 사관의 엄격함과 손옹의 명망을 바탕으로 기록된 만큼, 이 신선 이야기는 그 신뢰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기록에서 손옹은 깨달음이 부족하여, 시해라는 육신 사망의 가짜 모습에 직면했을 때 믿음이 동요하여 더 이상 수련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경전과 단약을 모두 남에게 넘겨주어 선연(仙緣)을 놓쳤으니,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늘날 수련하는 사람들은 이 일화를 거울삼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법(大法)에 대한 공경과 믿음을 절대 흔들리지 않게해야 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