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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을 돌려준 사람은 과거에 급제하고, 돌려주지 않은 사람은 낙방하고 목숨까지 잃다

안단

【정견망】

만약 땅에 떨어진 타인의 재물을 줍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할 것인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도덕을 향한 영혼의 질문과 같다. 오늘날 우리가 이기심과 이타심을 마음속 어디에 두어야 할지 주저하고, 심지어 주운 재물을 돌려주는 것(拾金不昧)이 구시대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라고 여긴다면, 옛사람들의 인과(因果)를 거울삼아 보는 것도 괜찮다.

​명(明)나라 때, 호광(湖廣) 덕안부 안륙현(德安府 安陸縣, 현 호북성 지역)에 고충(高翀, 자는 윤승(允升), 호는 옥화(玉華))라는 선비가 있었다. 가정(嘉靖) 을유년(1525년) 겨울, 그는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회시(會試, 중앙 과거)를 치르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는 도성 근처의 한 객점에서 묵고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가 그는 땅에서 보따리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의 시종이 보따리를 주워보니 꽤 무거웠다. 고충은 즉시 말에서 내려 큰 나무 아래에 앉아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북방의 겨울 추위는 뼛속까지 시렸고, 시종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충에게 간언하였다.

“도련님, 날씨가 이토록 추운데 잃어버린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여기서 고생하십니까? 게다가 저희 노잣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고충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걸치고 맨발에 머리가 헝클어진 남자가 다가왔는데, 입으로는 끊임없이 “아이고, 내 은자를 잃어버렸네……”라고 중얼거렸다. 고충은 즉시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혹시 당신께서 은자를 잃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여기 제게 있습니다.”

그 남자는 혼이 나간 듯이 답하였다:

​”제가 관아에 토지 세금을 바쳐야 하는데, 지금 가뭄이 들어서 곡식 한 톨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도리가 없어 제 아들과 딸 쌍둥이를 팔아서 겨우 은자 55냥을 마련하여 날이 밝자마자 세금을 내러 가려 했습니다. 밤길이라 어두웠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은자를 어디에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고충은 그에게 서둘러 보따리를 열어보게 하였고, 그가 확인한 결과 은자는 한 푼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 남자는 감격하여 목 놓아 울며 은자 절반을 고충에게 사례하려 하였으나, 고충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남자는 고충의 말을 끌고 수십 리를 따라가며 떠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다른 곳을 통해 고충의 성명을 알아내고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를 위해 축복을 빌었다.

이듬해, 고충은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이후 여러 곳에서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는데,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청렴함으로 명성이 높았다. 한번은 큰 가뭄이 들자, 그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우제(祈雨祭)를 지내 신명(神明)을 감동시켰고,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렸다. 그는 벼슬길에서 승승장구하여 봉강대리(封疆大吏, 지방의 최고 장관)까지 올랐다. 조정에서는 그를 포상하기 위해 그의 아들 중 한 명을 국자감(國子監)에 입학시켰다. 그의 네 아들은 모두 장수하였는데, 그중 세 명은 낭관(郎官)이 되었고, 나머지 한 명도 군수(郡守) 급의 고위 관리가 되었다. 손자 대에 이르러서도 조정에 여러 명이 벼슬을 하였다.

​또 다른 습득물에 관한 이야기는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동시에 보여준다. 청나라 가경(嘉慶) 연간, 절강(浙江) 평호현(平湖縣)에 서사분(徐士芬, 자는 송청(誦清), 호는 신암(辛庵))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서사방(徐士芳)이라는 친척형(族兄)이 있었다.

그들의 습득물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 판본이 있다.

첫째 설: 두 사람이 향시(鄉試)에 응시하던 중 여관에서 한 여인의 보따리를 주웠는데, 그 안에는 금은 장식품이 들어 있었다. 서사분은 급히 길을 떠나야 했으므로 서사방에게 부정한 재물을 탐하지 말고 잘 보관했다가 주인이 오면 돌려주라고 당부하였다. 서사방은 겉으로는 승낙하였으나, 서사분이 떠난 후 그 보물을 몰래 사취(私吞)하였고, 나중에는 거짓말로 서사분을 속였다.

다른 설: 두 사람이 절에서 막 돈을 빌려 남편에게 줄 인삼을 사려던 부인을 만났다. 부인이 급히 떠나면서 은자 20여 냥이 든 보따리를 떨어뜨렸다. 서사방은 기어이 그 은자를 가져갔다. 서사분은 설득해도 소용이 없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마련하여 그 부인에게 전액을 배상해 주었다.

이 두 형제는 같은 고시장에 들어갔다. 서사분은 시험을 마친 후 자신의 글이 불만족스럽다고 여겨 희망조차 품지 않았다.

그런데 방(榜,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기 전날, 서사방의 시험지가 채택되었다. 고시관이 방에 그의 이름을 쓰던 중, 막 “초두변(艹)”을 쓰는 순간 곁에 있던 촛불의 심지가 갑자기 터지면서 불똥 한 방울이 방에 떨어져 한 귀퉁이를 태웠다.

이때 고시관들은 모두 술렁이며 어떤 이는 ​”이 사람은 분명 어떤 악업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하였고, 또 어떤 이는 ​”이미 명단까지 다 썼는데 어떻게 바꾸느냐?“​라고 말하였다. 결국 책임 있는 관리가 ​”괜찮습니다. 이름을 지우고 다시 쓰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들은 예비 시험지를 가져와 바꾸려고 뜯어 보았는데, 뜻밖에도 그것이 서사분의 답안지였다. 모두가 기뻐하며 말했다. “다시 지우고 보충할 필요가 없겠군요. 이미 쓰인 초두변(艹) 아래에 ‘분(分)’ 자만 더하면 되겠군요!”

​이처럼 타인의 급한 돈을 탐하는 것은 가볍게는 낙방(落榜)에 그치지만, 심하면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 만든다. 청나라 때 요의경(廖儀卿)이라는 관리가 들었던 실화가 있다.

​그의 집 근처에 강서(江西)에서 온 사람이 운영하는 다과점(茶食店)이 있었다. 어느 날, 아전처럼 보이는 남자가 가게에서 음식을 먹고 나갔다. 주인이 그릇을 치우다가 탁자 위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발견하였다. 열어보니 전당포 표(當票) 두 장과 은표 합계 500여 냥이 들어 있었다. 주인은 몰래 그 보따리를 감추었다.

잠시 후, 그 남자는 비틀거리며 가게로 뛰어들어와 사방을 헤매며 천 주머니를 찾았다. 한참을 찾지 못하자 낙심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말했다.

“저는 모(某) 대감 댁의 하인입니다. 오늘 아침 일찍 대감께서 가죽 상자 두 개를 전당포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장생(長生) 전당포에서 540냥을 받았는데, 전당표와 은표를 모두 흰 천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방금 여기서 쉬었는데, 주머니가 분명 여기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주머니를 돌려주신다면 큰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굳은 얼굴로 꾸짖었다. “이 가게를 출입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누가 가져갔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남자는 이 말을 듣고 무릎을 꿇고 울면서 애원했다.

“오늘 이 주머니를 찾지 못하면 돌아가서 무슨 면목으로 보고를 하겠습니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때 구경꾼들이 점점 많아지자, 주인은 사람들 앞에서 하늘에 독한 맹세(毒誓)를 하였다. “내가 만약 이 주머니를 줍고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반드시 물속에서 죽을 것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가 이토록 독한 맹세를 하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슬슬 흩어졌다.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떠났다.

​그 후 가게 주인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하여 현지 칠기(漆器)를 다른 곳에 팔았다. 몇 번의 거래 만에 많은 돈을 벌었다. 1년 후, 그는 모든 저축을 털어 칠기를 더 사고 아들을 데리고 외지로 장사를 나갔다가 다시 큰돈을 벌었다.

​그가 배에 가득 물건을 싣고 돌아오던 중, 그 배가 갑자기 얕은 여울목에서 거대한 돌에 부딪혔다. 배는 산산조각 났고, 온전한 나무판자 하나 남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구조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그해 가게 주인이 했던 독한 맹세가 이때 영험하게 된 것이다.

보아하니, 함부로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독한 맹세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심을 속이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타인의 재물을 탐하다가 목숨을 잃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그 가게 주인은 결코 남의 돈을 자신의 소유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자료: 《이담(耳談)》, 《북동원필록(北東園筆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