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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선인 국제미술전 작품 소개: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상)

—저우이슈(周怡秀)

주칭밍(朱淸明)정리

【정견망】

질문: 간단히 경력을 소개해주세요.

답변: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미술 시간마다 자신이 다른 학생들보다 잘 그린다는 것을 발견했고 선생님도 격려해 주셨죠.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때 대학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부터입니다. 선생님은 미대 지망생들을 집 화실로 불러 소묘(素描), 수채화 등 기본기를 가르쳐 주셨어요. 이후 순조롭게 대만 사범대학 미술계열에 합격했는데, 그곳은 미술 교사를 양성하는 곳이었습니다. 졸업 후 미술 교사가 되어 2년간 가르치다가 프랑스어 시험에 통과해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밟았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나는 지금의 이른바 전통 회화가 사실 이미 변이(變異)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교수님들은 모두 인상파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이미 전통화로 간주되던 때였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매우 전통적인 그림들이 있었으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현대파 화법이었고, 저는 당시 방향을 잃었습니다. 현대 예술에 대해 저는 내심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 작품들을 봐도 감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림을 그려야 할지 이론을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화실(畫室)을 접촉해 봤지만 그들은 전통적인 것을 상당히 배척했습니다. 결국 미술계열에 들어갔지만 교수는 학생들에게 아무렇게나 그리라고 독려할 뿐이었고, 그러고는 잘 그렸다고 칭찬했습니다. 저 자신도 어디가 좋은지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현대 예술은 혁신을 강조하기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저도 때로 괴이한 수법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때는 정말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데 클래식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음악으로 돌려 피아노를 배우고 악보와 화성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미술과 음악 중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미술 전공자였지만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이 더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술의 길 위에서 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20세기 초 화가이자 음악가인 파울 클레(Paul Klee)라는 예술가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비록 추상으로 흘렀지만 그는 전통 클래식 음악을 무척 좋아했기에 음악적 정신을 그림에 표현하려 시도했습니다. 저는 그의 그림을 보며 그가 표현하려는 바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좋아한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바흐는 저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덕분에 논문을 아주 잘 써서 교수님께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예술 속의 매우 숭고한 부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나아가다 보니 그 길 역시 막다른 골목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그때는 아직 법을 얻기 전이었나요?

답변: 대법(大法)을 접하기 시작한 것이 대략 그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몸이 좋지 않아 양약을 먹으면 무척 괴로웠기에 중의(中醫)를 찾아갔습니다. 저를 치료하던 중의사가 대륙에 다녀오더니 요즘 다 파룬공(法輪功)을 배우는데 아주 좋은 공법인 것 같다며 수련을 추천해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주지 않고 연공만 하라고 해서 흥미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분이 책을 주어 읽어 보니 이 책은 매우 남다르게 쓰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부님은 분명 고인(高人)일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때는 《파룬공(수정본)》만 보았는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상쾌했습니다. 당시에는 책을 보기만 해도 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책을 볼 때마다 편안함을 느꼈지만 스스로 수련하고 있다는 것은 몰랐고, 다만 내 마음속의 많은 매듭(死結)이 풀리고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이후 다시 대만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번은 짐을 정리하다가 복사해 두었던 《파룬궁(수정본)》을 다시 찾아냈습니다. 이번에 읽을 때는 느낌이 또 달랐습니다. 당시 제 안에서 매우 강렬한 생각이 솟구쳤다. “나는 반드시 이것을 연마해야겠다. 반드시 선생님을 찾아가야겠다.” 당시에는 대륙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줄 알았기에 대륙에 가는 친구에게 부탁해 찾아달라고 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대만 어디선가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해보았지만 이미 없어졌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외출하며 아들을 잠시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이와 밖을 나섰는데 아이가 마음대로 걷다 어느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책을 보러 달려간 사이 아이를 찾던 중 탁자 위에 펼쳐진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리(李) 사부님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신문 광고에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이 대만에 오셔서 설법하시니 인연 있는 분들은 들으러 오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가 이미 오후 5시였는데 설법은 오후 2시에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아차, 놓쳤구나!” 싶어 몹시 낙담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그 학교를 찾아가 사부님께서 지금 어디 계신지 수소문했습니다. 결국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아 타이중(台中)에서 열린 사부님의 두 번째 설법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뒤 원래 몸에 있던 많은 병이 어느덧 모두 사라졌습니다.

[역주: 사부님께서 1997년 11월 16일 타이베이에서 11월 20일 타이중에서 설법하고 수련생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3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