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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시험에서 깨달은 것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11월 중순에 막 중간고사를 치렀고, 12월 중순에 다시 단원 평가를 보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중간고사와 같은 방식으로 치러야 했다. 이전의 단원 평가는 각 과목 선생님들이 알아서 시험을 보면 그만이었고, 중요 과목만 시험을 치렀기에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함께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교장 선생님이 왜 이렇게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에는 많은 학생이 독감에 걸려 병가로 결석 중인데, 이 시기에 시험을 치는 것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클지,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이 클지 의문이었다.

나 역시 이번 단원 평가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진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새 수업을 나갔으며, 학생들에게 시험 범위가 어디인지 알려주지도 않았고 방과 후 복습을 준비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단원 평가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려 시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시험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날 정도였다. 학생들의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지 않았고, 어떤 념(念)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험 성적이 나왔다. 원래 내가 가르치는 반 중 하나는 성적이 꼴찌였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순위가 2단계 올라갔고, 다른 반도 4단계나 올랐다. 대다수 학생의 성적이 향상되었는데, 이는 내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왜 학생들의 성적에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전까지 나는 명예와 이익을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기에 학생들의 성적이 어떠하든 개의치 않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시험 성적을 보면 내가 가르치는 반 중 하나는 늘 꼴찌였지만, 나는 줄곧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예전에 시험을 대하던 심태와 이번의 심태를 비교해 본 뒤에야, 나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숨겨진 문제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시험이 다가오면 시험에 맞춰 복습을 시키고, 무엇이 시험의 중점인지, 무엇을 반드시 마스터해야 하는지 강조하곤 했다. 마치 교육의 기점이 학생들의 시험을 위해 가르치는 것 같았고, 내가 어떤 지점을 복습해 주지 못했을까 봐 걱정했다. 이러한 행위 속에는 학생들이 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는 생각이 숨겨져 있었다. 좋은 성적은 구(求)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행위상으로는 여전히 예전의 교수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일종의 사고 습관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사고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메커니즘처럼 자동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야 했다. 수련인에게 있어 시험은 단지 하나의 형식일 뿐이다. 시험 성적이 좋고 나쁨은 시험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아마 평소 자신의 수련 상태가 나타난 표현일 것이다. 이 속에는 구세력의 관여가 있으며, 또한 사부님께서 계상취계(將計就計)로 안배하신 부분도 있다.

만약 시험 자체를 중하게 여긴다면 ‘시험’이라는 장(場) 속으로 들어가기 쉽고, 자동으로 많은 집착심이 생겨나게 된다. 예를 들어 잘 보고 싶은 마음, 못 볼까 봐 두려운 마음, 잘 본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 못 본 것에 대해 불복하는 마음, 잘 보면 기쁘고 못 보면 화가 나고 속이 타는 마음 등이다. 이 모든 것은 구세력이 안배한 메커니즘 속의 표현이다. 이 메커니즘에서 뛰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에 곤혹과 방해를 받아 법을 더 잘 실증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시험을 대하는 나의 심태는 ‘시험’이라는 이런 장(場) 속에 있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시험을 기점으로 수업하지 않았으며, 무엇이 나올지 어떻게 대응할지 전혀 생각지 않았다. ‘시험’을 완전히 내려놓으니 어떤 집착심도 생기지 않았고, 구세력이 틈을 탈 여지가 전혀 없었다. 같은 이치로, 만약 ‘박해’라는 개념이 없다면 구세력이 안배한 박해의 메커니즘 속에 있지 않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새로 안배해주신 이 길에는 박해가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는데, 누구도 대법제자를 파괴할 수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공사당이 얼마나 사악한가. 그것이 누굴 타도하려고 하면 그가 사흘을 버틸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가 타도되었는가? 갈수록 수련이 더욱 잘 되고, 갈수록 확고해지며, 갈수록 강성해지고, 갈수록 성숙해졌는데, 그것은 단지 이런 작용을 일으켰을 뿐이다.”(《각지 설법 11》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將計就計)하셔서 구세력의 안배가 다만 이런 작용만 일으키게 하셨을 뿐, 다른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이전에 교장 선생님이 왜 이번 단원 평가를 안배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알았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수련과 관련이 있는 것이며, 그 속에는 내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고 대법제자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해 안배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심성을 제고한다면, 대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낡은 기제로부터 탈태(脫胎)해 나올 수 있다.

이상은 착실한 수련(實修) 중의 깨달음으로 이를 써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