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話本先笙)
【정견망】
지난 회에 삼계 중생 상당수가 ‘부독산’에 중독되어 심성이 기준에 미달하는 부분이 백 배나 증폭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매우 순정(純淨)한 생명에게는 부독산이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았다.
다람쥐는 부독산의 근원인 각념 삼림을 찾아냈다.
벽요 일행은 번개 같은 속도로 각념 삼림에 도착했다.
그들은 숲속에서 부독산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원숭아, 네 코가 영민하지만 이 냄새를 너무 많이 맡는 것은 좋지 않으니 내가 네 영민한 코를 잠시 빌리겠다. 이 향기를 따라 독 안개의 정확한 위치를 찾으마. 모두 기척을 죽이고 나를 따르라. 놈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모두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벽요는 말을 마치고 손으로 원숭이의 코 부분을 쓱 잡더니 자기 얼굴에 문질러 코를 빌려왔다.
향기로운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 코를 찌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벽요는 아무런 불쾌함도 느끼지 않았다. 보아하니 법왕인 그녀는 여전히 매우 순결한 듯한데, 정말 그럴까? 계속 지켜보자.
점점 진해지는 냄새를 따라가던 중 드디어 한 동굴 안에서 괴물들을 발견했다.
초록 가죽을 쓴 괴물 서너 마리가 하얀 김이 나는 탕을 달이고 있었고, 탕에서는 비정상적일 만큼 진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벽요 일행이 동굴 옆에 숨어 살피니 괴물들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하하! 이 부독산 한 솥이면 삼계(森界) 신들의 목숨을 손쉽게 거둘 수 있지! 우리 대마왕(大魔王)님은 정말 천재라니까!”[잠시 ‘마왕’이라 부르겠으나, 사실 그들도 자기 왕을 ‘존주’라 부른다. 그런 높은 층차에서는 사실 ‘마’라는 개념이 없고 생명은 오직 정(正)과 부(負)로 나뉘어 서로 의지하며 존재할 뿐이다.]
얼굴이 흉측한 괴물 하나가 말했다.
연파는 악(惡)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중생을 해치는 괴물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가 막 마를 벨 기세로 눈을 부라리자 벽요가 갑자기 텔레파시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일렀다.
이어 벽요는 무리에게 수인을 지어 보였는데, 그 뜻은 ‘호랑이를 굴 밖으로 유인하여 괴물들을 부독산에서 떼어놓은 뒤 일거에 소탕하겠다’는 것이었다.
벽요는 무리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신호한 뒤 초록 가죽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손에는 붉은 괴물의 머리를 들고 비틀거리며 울면서 걸어 나갔다.
“으허허억……. 화귀왕(火鬼王)님…… 어쩌다 이렇게 처참하게 돌아가셨나요…….”
인생이란 연극과 같으니 전부 연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 괴물들은 동료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 다가와 물었다.
“형제여,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야!”
“으흑흑…… 삼계 법왕은 너무 독해요! 화귀왕님이 아래층에서 벼락으로 한참 신나게 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나무 지팡이가 나타나더니, 용 머리가 달린 놈이 한 방에 화귀왕님을 때려죽였습니다! 으아앙…… 이제 우린 어떻합니까!”
“형제여, 상심하지 마! 이 형님이 당장 가서 화귀왕님의 원수를 갚아줄게! 가자! 어느 층이야?……” 그중 한 괴물이 소리쳤다.
“팍!” 그러자 다른 괴물이 그놈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이 바보야! 그 지팡이는 삼계 법왕의 법기라 위력이 끝이 없어! 우리 몇이 상대가 되겠어?!”
괴물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기 시작했다.
“그럼 어떡해?…… 그 지팡이가 여기까지 쫓아오면 어쩌지?……”
벽요가 보니 마(魔)들의 마음이 혼란해진 것이 딱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신통으로 복룡장을 허공에 던졌고, 즉시 용의 포효가 울려 퍼지자 괴물들은 혼비백산했다! 이어 복룡장이 황금룡으로 변해 그들을 향해 달려들 듯 위협했으나 실제로 치지는 않았다.
“큰일 났다! 삼계 법왕이 왔다! 형제들 빨리 도망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은 틀린 게 없다. 마(魔)나 더 삿[邪]된 것일수록 겁이 많고 위협에 약하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용의 포효 몇 번에 괴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벽요는 즉시 무리에게 추격하여 소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행은 각자 신통을 발휘하여 어렵지 않게 괴물들을 모두 처단했다.
“해냈어요! 존주님, 13층천부터 주층천까지의 사마(邪魔)들을 모두 소탕했습니다! 삼계에 다시 평화가 오겠어요!” 원숭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모두의 얼굴에 희망이 꽃피었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맞아요!…… 대단해요!…… 우리 주님의 법력(法力)은 끝이 없으십니다!……”
이때 연파가 갑자기 물었다.
“존주님, 아까 왜 그냥 치지 않으시고 연극을 하신 겁니까?”
“이 부독산 솥을 보거라. 만약 싸우다가 이 탕이 엎질러지기라도 하면 수습할 길이 없는데 어찌하겠느냐?”
“아, 그런 뜻이 있으셨군요. 그럼 존주님, 이제 이 부독산은 어찌합니까?”
“유리 비녀야, 어서 가서 시공 터널을 지키는 막리(莫漓)를 불러오너라.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이 약에 대해 알지 모른다!”
유리 비녀가 오채신룡으로 변해 허공을 향해 신호를 보내 막리를 호출했다.
막리가 급히 달려왔는데 바로 제1회에 연파의 주층천 출입을 막았던 문지기 노인이다.
“미천한 신하 막리가 존주님을 뵙습니다. 존주님의 자비하신 위엄…….”
“됐네, 됐어. 어서 이 약을 좀 보게!”
“이 늙인이가 보기에 이것은 상고 서적에 기록된 마계(魔界)의 보물인 부독산이로군요. 이 가루약의 위력은…….”
“해결할 방법이 있는가?” 벽요가 다급히 물었다.
“밖에는 해독약이 없고 마땅히 안으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노인이 수염을 만지며 천천히 말했다.
“어떻게 안으로 원인을 찾는가?”
“이 독은 나쁜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이니, 나쁜 마음이 멸(滅)하면 독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건 시간이 걸리지 않는가, 중독된 이들을 당장 깨울 빠른 방법은 없는가?”
“그렇다면 복룡장 안의 홍묘로 그들을 씻어 깨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임시방편은 되겠으나 중독자의 패괴(敗壞)한 마음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이 독이 다시 도질 것입니다!” 노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벽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럼 이 부독산은 어찌 폐기하는가? 우주 어느 곳에 버리든 그곳에 심각한 오염이 될 텐데!”
“존주님, 이 독은 마음이 순정한 사람에게는 그저 맹물 한 솥이나 다름없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노인이 덧붙였다.
순간 벽요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 부독산 냄새를 맡아도 아무렇지 않고, 나는 삼계의 왕이니 내가 순정하지 않을 리는 없다. 순정한 사람에게 그저 물과 같을 뿐이라면 나에게는 더욱 아무 소용이 없겠지. 차라리…… 내가 중생을 대신해 감당하자. 내가 이것을 마셔버리는 거야!’
이 생각이 들자마자 벽요는 무리에게 말했다.
“차라리 내가 중생을 대신해 감당하는 게 낫겠다! 내가 이것을 마시마!”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 저마다 말렸다.
“안 됩니다! 존주님! 이것은 거대한 독약입니다! 당신께선 신체(神體)를 보존하셔야 합니다!…… 마실 수 없사옵니다!”
“모두 걱정마라. 막리의 말로는 순정한 사람에게는 물일 뿐이라지 않느냐. 너희는 너희들의 주(主)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존주가 그렇게 묻자 무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칫 더 말렸다가는 존주가 순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꼴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모두들 자신들의 왕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왕은 더없이 신성한 존재였다!
벽요는 반대가 잦아들자 미소를 지으며 부독산 솥을 들어 올렸다. 속으로 ‘그저 물 한 솥일 뿐인데!’라고 생각하며.
이어 그녀는 단숨에 탕을 들이켰다!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벽요야 벽요야, 너무 자신만만하구나…….
벽요는 부독산 한 솥을 깨끗이 비웠다. 그녀는 천천히 솥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여전히 신채(神彩)가 당당했다!
그제야 모두의 마음이 놓였다. ‘우리 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시구나! 삼계의 위난도 이제 끝났구나!’
모두 환호하고 기뻐하며 다시 한번 삼계의 태평성대를 축하하고 존주의 위덕에 감사를 표했다.
벽요 역시 대견한 듯 그들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원신(元神)이 뭔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 비녀야…… 저들이 왜 저리 좋아하는 것이냐?”
유리 비녀는 미처 상황 파악을 못한 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저들이 당신을 칭송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법력(法力)이 무변하시어 삼계의 태평이 모두 당신 덕분이라고 말입니다!”
벽요는 지금 머리가 점점 아프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환호하며 기뻐하는 저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허허, 내가 이 삼계를 태평하게 한 것이 저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저들이 무엇인데 감히 기뻐한단 말인가!” 벽요의 감정이 심상치 않았다.
유리 비녀는 그제야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존주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존…… 존주님, 혹시…… 당신도 중독되신 건 아니겠지요?”
“중…… 중독이라니? 저 사람들이 아주 진저리가 나니 모두 물러가게 하라!”
……
천겁이 어찌 그리 쉽게 지나가겠는가?
삼계의 진정한 천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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