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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고 따뜻하며 소망 가득한 《모귀산중(暮歸山中)》

운희(雲熙)

【정견망】

저물녘 산으로 돌아오니 산은 이미 어둑한데
시냇물에 발 씻으니 달이 물속에 잠겨 있네.
사립문 둥지에는 까치가 잠들었고
어두운 숲속에는 반딧불이 어지러이 춤추네.
처자식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밝은 등불 아래 나물 밥상 마주하네.
시원한 소나무 계수나무 사이에 우두커니 서니
성긴 별들 은하수 너머로 멀리 보이네.

暮歸山已昏,濯足月在澗。
衡門棲鵲定,暗樹流螢亂。
妻孥候我至,明燈共蔬飯。
佇立松桂涼,疏星隔河漢。

명나라 시인 남인(藍仁)의 시 《모귀산중(暮歸山中) –저물어 산속으로 돌아가다》은 은거한 고결한 선비의 청담(淸談)한 생활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산속의 어느 평범한 가정이 보내는 질박하고 진실한 일상 풍경을 그렸다.

“저물녘 산으로 돌아오니 산은 이미 어둑한데,
시냇물에 발 씻으니 달이 물속에 잠겨 있네.
사립문 둥지에는 까치가 잠들었고,
어두운 숲속에는 반딧불이 어지러이 춤추네.”

시인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사방에 어둠이 내릴 때 집으로 돌아온다. 문에 들어서기 전, 산골 시냇물에서 달빛을 빌려 하루의 먼지를 씻어낸다. 소박한 사립문 위에는 까치가 이미 평온하게 잠들었고, 어스레한 숲속에는 반딧불이가 깜빡이며 밤 풍경을 밝힌다.

이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산속의 밤이다. 고요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청적(淸寂)함 속에 미세하게 움직이는 생기가 깃들어 있다. 화면에는 동(動)과 정(靜)이 어우러져 한 폭의 옅은 수묵 산수화처럼 평화롭고 여유롭다.

“처자식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밝은 등불 아래 나물 밥상 마주하네.
시원한 소나무 계수나무 사이에 우두커니 서니
성긴 별들 은하수 너머로 멀리 보이네.”

평범한 삶 속에는 고유한 따뜻함이 있다. 등불 아래에서 기다리는 처자식, 소박한 나물 반찬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은 낮 동안의 피로를 단번에 씻어준다. 식사 후 소나무와 계수나무 사이에 서서 바람을 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성긴 별들 너머로 은하수가 하늘 끝에 걸쳐 있다.

이것은 결코 풍족한 삶이 아니다.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고 길도 험난하지만, 결코 빈곤하지도 않다. 가족이 있고, 등불이 있으며, 몸을 안식할 수 있는 한 조각 땅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인생은 단지 여기에 그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고개를 들어 은하수를 올려다볼 때, 그 눈빛에는 분명 일상을 초월한 동경, 즉 멀고 신비로운 경지를 향한 응시가 담겨 있다.

고인(古人)이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아마 단지 낭만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천지 사이에서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본능적인 추구였을 것이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시인이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산골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그는 깨어 있는 사람이다. 속세의 계산과 소란을 멀리했기에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더 명확히 볼 수 있고, 그 순수한 기대를 더 쉽게 지켜낼 수 있었다.

정법(正法)이 시작되어 대법 사부님께서 인간 세상에서 법을 바로 잡으시면서 인류 존재의 수수께끼를 세상 사람들에게 밝혀주셨다. 알고 보니 고인이 별을 올려다본 것은 공상이 아니라 진정한 귀착처를 찾는 과정이었으니 그것은 천상 고향에 대한 깊은 동경이었다.

법을 얻어 원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유일한 염원이다.

다만, 지금 이 점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