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내 기억에 어떤 파출소장이 득의양양하게 대법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수련은 ‘진선인(眞善忍)’을 말하는데, 내가 보기에 ‘인(忍)’은 마음(心) 위에 칼날(刃)이 놓여 있으니 고생을 겪여야 해.”
그 대법제자는 그를 반박하지 않고 대신 한 구절 법을 외워주었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정진요지》 〈무엇이 참음인가〉)
그 소장이 듣고 나서 매우 놀라워했다.
“아, 원래 그런 것이군요?!”
대법이 소장 마음속의 사악한 기운을 흩어버리고 선량한 본성을 되살려 주었으며, 자신의 편협함과 천박함을 깨닫게 한 것이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이러니 경찰이 대법제자를 관할할 수 없구나.”
얼마 전 한 친구가 흥분해서 나에게 말했다.
“내가 발견했는데, 번체자 인(忍)을 보면 칼 위의 점 하나가 있는데 刀의 삐침 위에 있어. 이건 날이 서지 않은 칼이라는 뜻이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참으라고 일깨워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남을 해치고 자신까지 망칠 수 있으니까.”
나는 친구의 이해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것 역시 ‘인(忍)’에 대한 그 나름의 독특한 이해이다.
이로 인해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서양 전설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왕위를 다투며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그가 환희심에 젖어 왕좌에 앉았을 때, 깜짝 놀라 발견한 것이 있었다. 왕좌 바로 위에 칼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는데, 왕좌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 칼을 볼 수 없었다. 인정(仁政)을 베풀고 천도(天道)에 부합하는 국왕에게 그 칼은 위엄을 주고 그를 보호해 주지만, 권력을 다투며 권세로 백성을 해치는 자에게 그 칼은 경고하고 벌을 준다. 또한 흉악한 폭군에게는 그 칼이 언제든 떨어져 목을 쳐서 대중 앞에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지은 죄가 있어 마음이 찔렸고, 그 칼의 차가운 빛이 사람을 압박하는 것 같아 전전긍긍하며 서둘러 왕좌에서 내려왔다.
중국인들은 흔히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謀事在人 成事在天)”라고 말한다. 또한 “하늘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昌 逆天者亡)”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하늘’ 즉 ‘천도(天道)’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진정으로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도연명은 그저 “이 속에 참뜻이 있으니,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노라[此中有真意,欲辨已忘言]”라고 깨달았을 뿐이고, 노자도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상도(常道)가 아니다”라고 했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오직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에야 비로소 파룬따파(法輪大法)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명확한 답을 주셨다.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전법륜》 〈제1강〉).
“천체ㆍ우주ㆍ생명ㆍ만사만물은 우주 대법이 개창(開創)한 것인바, 생명이 그에 어긋나면 곧 진정한 패괴(敗壞)이고, 세인이 그에 부합할 수 있으면 진정 좋은 사람이며 동시에 선보(善報)와 수복(福壽)이 따를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그에 동화하면 당신은 바로 득도자(得道者) ⎯⎯ 신(神)이다.” (《전법륜》 〈논어〉)
중공 마귀는 ‘진선인’과 적이 되어 천도를 위배했으니 자연히 실패하게 되어 있다. 즉 그것 스스로 자아 파멸을 선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공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파룬궁을 박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결말도 비참하고 가련할 수밖에 없다.
션윈(神韻) 관람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파룬궁의 진상도 점점 널리 전파되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누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고 무엇이 진정으로 사악한지 깨닫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국가와 정부, 그리고 개인이 션윈을 지지하고 파룬궁을 보호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