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백호는 청란을 보호하려다 구름 아래로 떨어졌으나, 다행히 거대한 요수(瑤樹) 위로 떨어져 뼈가 부러지는 참사는 면했다.
공교롭게도 요수는 온통 옥처럼 희고 나뭇가지와 잎이 촘촘하여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모습이 마치 옅은 얼룩무늬 같았다. 백호의 털색과 거의 흡사했다.
백호가 요수 가지 위에 엎드리니 마치 은신한 것과 같아졌다. 옥두와 다보가 한참을 찾았으나 백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형, 분명 이 근처로 떨어졌는데 왜 보이지 않을까요?”
옥두와 다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 백옥 같은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의구심을 품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보와 옥두야! 어디로 가려 하느냐?”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보니 뜻밖에도 사백(師伯)인 원시천존이었다.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 뒤, 백호를 찾고 있는 사정을 아뢰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원시천존은 구름 위에 앉아 말했다.
“너희는 그만 돌아가거라. 그 백호는 곤륜산의 희귀한 영수(靈獸)라 너희 힘으로는 찾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저 호랑이는 성품이 어질어 무고한 생명을 해치지 않느니라.”
말을 마친 그는 불진을 한 번 휘두르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두 사람이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옥두와 다보는 사백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히 더 머물지 못하고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떠나갔다.
요수 위에 엎드려 있던 백호는 이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백호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앞발을 모으고 계속해서 읍을 했다. 원시천존이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이었다.
원시천존은 백호의 이런 행동이 무척 귀엽고 눈빛에 진실한 고마움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하늘을 향해 크게 웃었다. 한참 웃던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치 혼잣말인 듯, 혹은 뼈가 있는 말인 듯 중얼거렸다.
“내가 오늘 점을 쳐보니 아주 좋은 제자 하나를 거두게 되겠구나.”
그러고는 다시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허허, 마침 때가 된 모양이다.”
총명하고 영리한 백호는 이 분 진인(真人)이 자신을 제자로 거두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얼른 앞발을 땅에 대고 뒷발로 무릎을 꿇으며 원시천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호랑이가 머리를 찧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원시천존은 고개를 돌려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소매에서 금단(金丹) 한 알을 꺼내 백호에게 던져주었다.
호랑이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 순간 백호의 온몸에서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백옥 같은 털은 점점 매끄러운 옥 같은 살결로 변했고 옅은 노란 무늬는 우아한 연노란색 원피스로 변했다. 백호의 육신이 신체(神體)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백호는 자신에게 팔다리가 생기고 검은 머리카락이 자라난 것을 보고 기쁘고도 신기했다!
그녀는 얼른 무릎을 꿇고 천존에게 아뢰었다.
“오늘 진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신령한 약까지 주시니 그 은혜가 끝이 없습니다. 진인께서 싫지 않으시다면 저를 제자로 거두어 주십시오. 진인의 은덕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원시천존은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점잖게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네게 우리 도가(道家)의 근골(根骨)이 조금 보이는구나. 오늘 네 소원을 들어주어 제자로 거두어 주마!”
노란 옷을 입은 소녀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자가 사존께 큰절 올립니다!”
원시천존은 그제야 구름에서 내려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수 아래에서 해맑게 웃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는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요수 그림자 맑고 결백하니 기상이 공령하고,
웃는 얼굴 순수하고 밝으니 참된 성정이로다.”
瑤影清白姿空靈,笑顏純朗真性情
원시천존은 요수를 한 번 보고 소녀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얘야, 사부가 네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마. ‘요진(瑤真)’이라 부르면 어떻겠느냐?”
소녀는 멍하니 있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요진, 요진…” 들을수록 이름이 낯익고 마치 원래 자신의 이름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기쁘게 원시천존에게 말했다.
“요진, 사부님께서 이름을 하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서주에 옥경산(玉京山)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곤륜산과 달리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자작나무가 많고 고라니와 옥토끼가 뛰어놀며, 때로는 백학이 길게 울고 모래사장의 해오라기가 나지막이 노래하는 곳이다.
곤륜산이 신비하고 깊다면, 옥경산은 밝고 맑으며 훤히 트인 곳이다. 옥경산에도 동부(洞府)가 많아 수련하는 선인(仙人)들이 거처하는데, 산의 동서남북 사방에는 제옥수(帝屋樹)라는 나무가 선산(仙山)을 지키고 있다. 산 중턱 정중앙에는 ‘정본징원대(正本澄元台)’라는 도량(道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원시천존의 거처다.
그날 원시천존의 제자들이 동굴 밖에서 검술을 연습하고 있는데, 사부가 노란 옷을 입은 소녀 하나를 데리고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보였다.
“이 아이가 앞으로 너희의 막내 사매가 될 것이니 잘 대해주어라.” 말을 마친 천존은 불진을 한 번 휘두르고 다시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수련하던 많은 제자들이 이 막내 사매를 살펴보았다. 연노란색 옷을 입고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올린 채 영롱한 눈빛을 빛내는 소녀였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살짝 홍조가 띠었고, 웃을 때 살짝 보이는 송곳니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덕분에 요진은 사형과 사제들에게 금세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요진은 옥경산에 온 처음 사흘 동안은 낯이 설어 조금 조용히 지냈으나, 사흘이 지나자 활발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틈이 날 때면 사형과 사제들은 요진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제들은 요진에게 곤륜산의 풍경이 어떠냐고 물었고, 요진은 대답했다. 곤륜산에는 수정처럼 맑은 정계(晶溪)가 있고, 굽이굽이 흐르는 윤하만(倫河灣)이 있으며, 분홍색 꿈결 같은 약수(弱水)와 푸르고 늠름한 정천(晴川)이 있다고. 또한 낮은 덤불이 무성한 울구(鬱丘)와 수천 개의 작은 봉우리, 수많은 골짜기가 있어 산 정상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호숫가에서 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 자신도 곤륜산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모를 정도였다……
사형들은 곤륜산에 어떤 신기한 짐승들이 있느냐고 물었다. 요진은 기린과 달리기 시합을 하고 홍곡(鴻鵠)과 날기 시합을 했다고 답했다. 때로는 호수에 뛰어들어 늙은 거북을 골탕 먹이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예작(霓雀)들의 춤을 감상했다고 했다. 외적이 침입하면 중명조(重明鳥)가 울고 맹호가 싸우러 나갔으며, 해치(獬豸)가 아이디어를 내고 청란이 자신을 태우고 도망쳐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요진, 옥경산에 온 지도 꽤 되었는데 집이 그립지 않니?”
봉완(芃菀) 사저(師姐)가 물었다.
요진이 답했다.
“저는 원래 부모도 형제자매도 없어 늘 아무런 미련이 없었어요. 굳이 그리운 게 있다면 제 친구 청란이 좀 보고 싶긴 하네요.”
“요진아, 너는 수행해서 어느 경지까지 가고 싶니?” 천유(川悠) 사형이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요? 당연히 아주아주 대단해져서 선량한 생명들이 사마(邪魔)들에게 괴롭힘당하지 않게 지켜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죠!”
“하하하하….” 사형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 꼬마 사매가 꽤 허풍이 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외에도 글과 그림을 논하고, 수수께끼를 풀며 대련을 짓고 바둑을 두기도 했다. 남은 시간은 원시천존의 강설을 듣거나 선법(仙法)과 도술(道術)을 익히는 데 전념했다.
“사제, 또 졌구나! 이번에는 뭘 줄 거니?”
“이건 풍잠(風潛)의 피리인데, 어제 녀석이 막 다 깎은 걸 내가 몰래 가져왔어요. 이걸 줄 테니 한 판 더 해요!”
“후돈! 내 피리를 훔쳐 가더니 그걸 걸고 지다니! 내 오늘 네 귀를 가만두지 않겠다!”
“아… 안 돼… 요진아! 나 좀 살려줘…..”
“후돈 사형! 풍잠 사형이 쫓아오니 적어도 삼오백 리는 날아야 끝날 것 같네요! 하하, 오늘 사형은 밥을 열 그릇은 더 드셔야겠어요!”
…….
수행인에게 있어 사부에게서 직접 도법(道法)을 전수받고 동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시절이다. 순수하고 즐거운 그 자유로운 마음은, 훗날 어깨에 책임이 실리고 가슴에 사명이 깃들었을 때 오직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보물처럼 남게 된다.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볼 때나 깊은 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문득 꺼내어 감상하게 되는 그 푸르렀던 청춘의 나날들 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