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淸風)
【정견망】
〈늑대(狼)〉는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 중 아주 우수한 단편이다. 나는 청대 한 백정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수련 과정에서 오직 정념정행해야만 비로소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먼저 첫 단락을 보자. “한 백정이 늦게 귀가하는데, 짐 속의 고기는 다 떨어지고 오직 남은 뼈만 있었다. 길에 늑대 두 마리가 아주 멀리서 뒤따라왔다.”
백정의 귀가는 우리가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볼 수 있고, 늑대는 사악의 상징이다. 그 함의는 매우 넓어서 사악한 구세력 자체와 그들이 우리에게 내린 갖가지 복잡하고 정밀한 안배, 그리고 그들에게 조종당하는 생명 등을 포함한다. 전체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를 수호하고 계신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사악 역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다음은 “백정이 두려워 뼈를 던져주었다. 한 마리 늑대는 뼈를 얻자 멈췄으나, 다른 한 마리는 여전히 뒤를 쫓았다. 다시 뼈를 던져주니 뒤에 오던 늑대는 멈췄으나 앞서 멈췄던 늑대가 다시 다가왔다. 뼈는 이미 다 떨어졌으나, 두 늑대가 나란히 쫓아오는 것은 전과 같았다.”는 대목이다.
이 문장은 매우 간결하지만 몇 가지 문제를 설명한다.
첫째는 백정에게 정념이 없어 사악에 대해 타협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효과가 없었다. 뼈를 이미 전부 던졌음에도 두 마리 늑대가 여전히 그를 뒤쫓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사악에 대해서는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탐욕스러운 본성과 사람을 잡아먹는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타협은 도저히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오직 갈수록 태산인 상황만 초래해 결국 우리를 망가뜨릴 뿐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특히 구류장이나 감옥 등 사악한 환경하에서 마주친 유사한 일이 어디 한둘인가?
“백정이 크게 곤혹스러워하며 앞뒤로 공격받을까 두려워했다. 들러보니 들판에 타작마당이 있었고, 마당 주인이 땔나무를 쌓아두어 언덕처럼 덮여 있었다. 백정은 곧바로 그 아래로 달려가 기대어 짐을 내려놓고 칼을 잡았다. 늑대는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노려보며 대치했다.”
여기는 전체 글의 전환점이다. 백정은 이때 이미 자신의 처음 방법이 틀렸음을 깨달았고 정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를 찾아 짐을 내려놓고 칼을 들었으며, 그러자 늑대는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 수련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가 정념만 족하다면 사악도 곧 두려워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하는 것은 표면상의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들 뒤에 있는 사악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뒤에 사부님과 법(法)이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의 정념만 족하다면 그들은 절대로 함부로 덤비지 못하며, 그렇지 않으면 오직 스스로 멸망을 취할 뿐이다.
다음은 “백정이 갑자기 일어나 칼로 늑대의 머리를 내리쳤고, 다시 몇 칼을 휘둘러 죽였다.”는 대목이다. 백정의 정념이 완전히 일어난 것이다. 그는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공격했다. 여기서 “백정이 갑자기 일어나 칼로 늑대의 머리를 내리쳤고, 다시 몇 칼을 휘둘러 죽였다.”는 부분은 매우 통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데, 우리가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것과 어찌 이리도 흡사한가!
그러나 사악은 또 교활하다. “막 가려다가 땔나무 더미 뒤를 돌아보니, 한 마리 늑대가 그 가운데 구멍을 뚫고 있었는데, 땅굴을 파고 들어가 뒤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몸이 이미 절반이나 들어갔고 오직 꼬리만 드러나 있었다. 백정이 뒤에서 그 넓적다리를 끊어 역시 죽였다. 그제야 앞의 늑대가 가짜로 잠든 체한 것이 적을 유인하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악은 패배를 달가워하지 않으며 계략이 많다. 그러므로 절대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며 반드시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환이 무궁하여 공든 탑이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계시는 공능을 써서 악을 제거할 때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정념(發正念)을 해야 비로소 최종적인 좋은 결과가 있다.
“늑대 역시 교활하지만 순식간에 두 마리가 죽었으니, 짐승의 속임수가 얼마나 가겠는가? 오직 웃음거리만 더할 뿐이다.”
문장의 결말은 매우 깊은 뜻이 있다. 사악은 교활하고 심지어 능력이 있을지라도, 짐승은 결국 짐승일 뿐이라 사람과 비길 수 없으며 결국 멸망에 직면할 뿐임을 명시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정념정행을 해냈을 때 우리가 가진 능력과 에너지는 구체적인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을 훨씬 초월한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홍음 2》 <무엇이 두려우랴>)는 정념의 위력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글은 현재 중국 대륙의 중학교 교과서에 이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문장은 약 400년 전에 쓰였는데, 당(黨) 문화가 점령한 대륙에서 수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신(神)의 오묘한 안배와 천기(天機)가 있기 때문이다. 만고의 일은 법을 위해 온 것이기에, 마(魔)는 영원히 도(道)보다 높을 수 없음을 충분히 설명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6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