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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수련생의 반성 —— 대법 수련의 엄숙함을 깨닫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5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인데, 자신을 ‘수련생’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전법륜》을 받들어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신을 사부님의 진전제자(眞傳弟子)로 간주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수련생을 위해 해주시는 모든 것이 내가 책을 읽을 때 나를 위해서도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 굳게 믿었다. 나는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맹세했다! 또한 ‘사부(師父)’라는 단어의 내함이 일반적인 선생님과는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30년의 수련 길을 걸어온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고, 제자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본분을 다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에 부끄럽게도 진정으로 100%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지 못했다.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해 수많은 제고의 기회를 놓쳤다. 사부님께서 홍대(洪大)하신 자비와 호탕한 불은(佛恩)으로 거듭 시간을 연장해 주셨기에 정법 수련이 끝나지 않았고 제자에게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다. 오늘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 또한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기회다! 나는 반드시 마지막 길을 잘 걸어 자신의 사전(史前) 서약을 이행하겠다!

1. 법을 얻은 초기

나는 1995년에 법을 얻었으니 노제자라 할 수 있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스스로 진수제자(眞修弟子)로 진수(眞修)와 실수(實修)했다고 여겼다. 당시 머릿속에는 다른 일이 없었고 오직 한 가지, 수련뿐이었다. 책을 읽고 법공부를 하는 것 외에도 이어폰을 몸에서 떼지 않았으며, 길을 걸을 때나 일을 할 때나 늘 법을 들었고 매사를 법으로 가늠했다. 예전에는 아내와 자주 싸웠으나 모든 일에 참을 수 있게 되었고, 온종일 싱글벙글하며 기뻤다! 늘 어떻게 홍법(洪法)하여 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게 할까만 생각했다. 마치 넘기지 못할 ‘관(關)’이 없는 듯했다. 저녁에 퇴근하면 바로 밥을 하고, 먹고 나면 법공부를 하러 갔다. 법공부를 하러 나가는 전제 조건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법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9시가 넘었는데 아내가 내가 해주길 기다리느라 아직 식사 전이었다. 나는 두말없이 즉시 밥을 차렸다. 직장에서는 절대 탐욕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당시 겨울에는 눈을 치우러 나가야 했고, 봄에는 의무 노동으로 변두리 생활 구역의 겨울내 쌓인 쓰레기와 눈더미를 치워야 했다. 매번 노동할 때마다 나는 묵묵히 쉬지 않고 일했지만, 다른 동료들은 잡담하며 꾀를 피웠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모습은 상사와 동료들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겼다.

2. 풍운 돌변

1997년에 나는 집 근처에 연공장을 세웠다. 당시 아직 젊었던 나는 매일 녹음기를 들고 나갔고, 할머니들이 여럿 와서 연공했다. 아내는 “자꾸 나가서 망신을 시킨다”고 했지만, 나는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바람피우는 게 망신이지, 남들의 건강을 돕는 게 왜 망신이냐?”고 대꾸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원봉사 보도원’이 되었다. 7.20 법난(法難) 전까지 우리는 매일 밤 단체 법공부를 했다. 연공장과 법공부 소조는 방해를 받지 않았고 오직 수련뿐이었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나는 동수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수련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7.20 이후 처음으로 배포한 진상 자료는 《진리는 마난을 거치고 반드시 영원하리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 10월, 나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북경 천안문에 갔다. 가기 전에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부러움을 사던 직장(공무원), 80대 아버지, 막 중학교에 입학한 딸, 남편에게 의지하던 아내까지. 북경에서 납치되어 지역으로 압송되어 불법 심문을 받을 때, 나는 경찰에게 한마디 했다. “만약 전 세계에서 단 한 사람만이 파룬궁을 연공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일 것이오!” 당시에는 이 말의 무게를 몰랐다. 이 말을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돌이켜보면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다.

3. 3년의 불법 노동교양 중 박해에 반대해 법을 실증

대법이 박해받기 전 4년 동안 법공부와 실수(實修)를 거쳤기에 나는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었다. 불법 노동교양 3년 동안 나는 기본적으로 온건하게 관을 돌파했다.

1) ‘대마두’ 고소

사악한 당의 사악함은 허위 법률로 자신을 위장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노동교양소에 갓 도착했을 때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동수가 심판 청구서를 썼다. 나는 그들이 대법을 파괴하고 있고 나는 대법의 일원이기에, 대법을 박해하는 그들을 기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법이 있어야 내가 있고, 대법이 없으면 나도 없기 때문이다. 박해는 강귀(江鬼, 장쩌민)가 일으킨 것이기에 나는 그것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죄를 고소하기로 했다. 나의 개인적인 심판 청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파룬따파의 합법성(결백함)을 실증해야만 나의 합법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청구 내용은 장쩌민이 불법적으로 대법을 박해한 것에 대한 고소가 되었다.

다 쓰고 동수에게 보여주니 동수는 “이걸 어디에 고소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하늘에 하겠소”라고 답했다. 쓴 글을 미처 제출하기도 전에 나는 다른 대대로 이송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소지품 검사를 당했는데, ‘감방장(牢頭)’이 소장을 보더니 기뻐하며 “이 사람이 얼마나 글을 잘 썼는지 보세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부대대장이 감방에 왔을 때 나는 그 소장을 전해주며 제출을 부탁했고, 그는 웃으며 그것을 받아 갔다.

2) 단식으로 《전법륜》을 되찾다

당시 감방에 보서(寶書) 《전법륜》 한 권이 있었는데, 한 수감자가 빼앗아 교도관에게 바쳤다. 돌려받지 못하자 감방의 동수들은 단식을 결정했고, 다른 감방 동수들도 소식을 듣고 함께 단식했다. 경찰이 왜 단식하느냐고 묻기에 대법 서적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틀 후, 그 부대대장이 나를 사무실로 불러 면담하면서 일부러 《전법륜》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그와 몇 마디 나누고 대법 서적을 들고 돌아왔으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 관리과장에게 삿대질

노동교양소는 우리가 가부좌하고 연공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다리를 벌리고 앞뒤로 다닥다닥 붙어 앉게 강요했다. 이런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는 단식으로 항의했다. 대대장은 4명의 대표를 불러 사무실에서 면담했다. 이때 경찰 두 명이 들어왔는데, 우두머리 격인 자가 우리에게 호통을 쳤다. 당시 나는 노동교양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경찰들의 직책을 몰랐기에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다. 다른 경찰이 즉시 아첨하며 “이분이 관리과장님이시다”라고 했다. 우리는 소파 하나에 끼어 앉아 있었는데, 나는 가만히 앉은 채 관리과장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당신이 많은 대법제자를 때렸다고 들었소! 또 우리를 때리러 온 거요?” 관리과장은 즉시 겁을 먹고 창가 쪽으로 돌아서더니 “난 안 그랬…” 하고 중얼거리며 꼴사납게 밖으로 나갔다. 온 노동교양소가 이 일을 다 알게 된 듯했다.

4) 반박해 중에서 타협한 동수들을 정도(正道)로 이끌다

동수들의 반박해로 인해 노동교양소 측은 확고한 대법제자들을 성(省) 노동교양소로 이송했다. 그곳의 동수들은 대부분 전향되어 이른바 보증서를 썼고, 어디서든 잘해야 한다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이 보증서를 써서 자신이 대법제자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설령 정말로 일을 잘한다고 한들 그것이 어떻게 대법을 실증할 수 있겠소? 하물며 우리가 박해받아 이곳에 갇혀 있는데 왜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준단 말이오?” 이렇게 조금씩 동수들이 이어서 보증서가 무효임을 성명했다. 사부님의 경문 《건의》가 노동교양소에 전달되자 동수들은 대규모로 보증서 무효 성명을 냈다.

나중에 노동교양소 측은 안에 경문이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한 동수가 접견 때 가족이 준 것이라며 책임을 떠안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으나 경문 전달 경로가 막힐까 봐 우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경문을 주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박해로 인해 ‘앉아 있기’ 벌을 받고 있었는데, 경찰이 그 동수를 시켜 나에게 경문을 달라고 했다. 나는 “돌아가서 없다고 전해라!”라고 했다. 경찰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을 때 나 역시 매우 두려웠으나,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아님을 알았기에 확고하게 말했다. “없소, 내가 먹어버렸소!” 대대장은 순간 멍해지더니 “그럼 어쩔 수 없군. 당신이 이러면 같이 온 아무개(동수)의 형기를 연장하겠소”라는 우스운 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 ‘당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5) 경찰이 “내가 사람을 때린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다

한 대법제자의 박해 기간이 다 되었음에도 석방하지 않자, 그는 삭발을 거부하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노동교양소에는 만기가 다 된 사람은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박해를 위해 그에게는 허용하지 않았다. 한 경찰이 면담하며 왜 머리를 기르느냐, 어떤 모양으로 기를 거냐고 물었다. 그 경찰은 아주 짧은 스포츠머리였는데 동수는 “당신처럼 기르겠소”라고 답했다. 경찰은 동수가 자신을 도발한다고 여겨 그를 때렸다. 이 경찰은 노동교양소에서 유명한 ‘다섯 마리 호랑이’ 중 하나로, 매질을 가장 잘하는 경찰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다.

이 일을 알게 된 후, 대대의 모든 경찰이 사무실에 있는 상황에서 나는 직접 안으로 들어가 그 경찰에게 왜 사람을 때렸느냐고 따졌다. 부대대장이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걸 묻느냐?”라고 하자 나는 “당신들 말대로라면 나는 피선거권만 없을 뿐 다른 권리는 다 있소!”라고 답했다. 부대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 경찰을 질책했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위법이오. 그가 법을 어겼다면 법이 다스릴 일이지, 경찰로서 사적으로 때리는 것은 범법 행위이며 하물며 당신은 술까지 마시고 때렸소!” 겉으로는 술을 마셨다는 지적이 주효했는지 그는 “난 매일 술을 마신다”라며 우물쭈물했다.

사실 이 경찰은 나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한번은 다른 대대의 수감자가 나를 때리자, 그는 자기 대대의 경찰로서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했는지 그 사람을 잡아다 때리고 형기를 연장하려 했다. 내가 경찰에게 그를 용서했으니 형기를 연장하지 말라고 간청하여 그 수감자는 위기를 모면했다. 그래서 이번에 그는 그때 일을 꺼내며 말했다.

“당신이 맞았을 때 내가 당신을 위해 그놈을 때려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소?”

나는 대답했다.

“당신이 그를 때린 것도 찬성하지 않지만 이미 끝난 일이오. 이번은 다르오. 대법제자는 박해받는 중인데 당신이 우리 ‘대법제자’를 때린다면 나는 반드시 관여해야겠소!”

그러자 그는 “내가 사람을 때린 것은 잘못이오”라고 나직이 말했다.

6) 경찰이 “돈이 필요하면 나에게 말하라”라고 하다

2002년, 노동교양소의 대법제자들은 보편적으로 옴이 오르고 몸이 떨리는 증상을 겪었다. 한 대법제자는 옴이 아주 심해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추워하기에 나는 그에게 솜외투를 덮어주었다. 한 경찰이 감방에 왔다가 이를 보고 외투를 치우라고 하며 덮지 못하게 했다. 나는 즉시 일어서서 “당신과 면담하겠소”라고 말했고, 그는 나를 철문 안의 큰 사무실로 데려갔다. 내가 왜 외투를 못 덮게 하느냐고 묻자 그의 태도는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이런 태도로 어떻게 면담을 하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철문 밖의 간부 당직실로 데려갔다. 그가 침대에 앉기에 나도 이어서 다른 침대에 앉았더니 그는 움찔했다. 수감자와 면담할 때 수감자는 앉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서로 돕고 단결하며 사랑하라고 배웠소. 같은 감방 사람끼리 서로 돕고, 몸이 안 좋은 이에게 외투를 덮어주며 보살피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소? 당신의 행위는 교육 이념과 상반되는 것 아니오? 수감자들을 어떻게 교육하려는 것이오?”

결국 그는 “돌아가서 덮어주라고 해라!”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나에게 매우 친근하게 대했고, 대법제자들이 단식할 때 노동교양소에서 어떻게 악의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하고 바닥에 끌고 다니는지 등 박해 방식을 나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사실 이 대대에서 대법제자 한 명을 박해해 사망하게 한 사건의 가담자 중 한 명이었던 자였다. 얼마 후 내 직장에서 노동교양소로 찾아와 나를 해고했다. 그는 나를 감방으로 데려가는 길에 내가 선망받는 직장을 잃은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는 나에게 “나중에 돈이 필요하면 나에게 말해라!”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늘 수감자가 경찰에게 돈을 바쳤지, 그 반대는 없었다. 대법제자의 선(善)이 경찰을 변화시킨 것이다.

7) 자신을 반성 —— 반박해 중의 부족함

나는 3년간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2002년 초에 나는 이러한 박해를 부정해야 하며 3년의 형기를 인정하지 않고 나가야 함을 인식했다. 그래서 발정념으로 노동교양 형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 후 변화가 생겨 친척이 손을 써서 성(省)의 수속 서류를 들고 나를 데리러 노동교양소로 왔다. 그러나 대법제자의 경우에는 이 서류만으로는 부족했고 지역 ‘610’ 사무실의 직인이 더 필요했다. 친척이 ‘610’을 찾아갔으나 그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안 된다”라고 거절했다. 친척은 그들과 크게 싸웠고, 그 후 ‘610’의 지시로 내 직장이 없어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사실 나의 수련 문제가 있었다. 이 박해에 대해 나는 여전히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집착과 관념, 두려움이 있었다. 구체적인 문제에서 속인 층차의 법률이나 기본 상식으로 이치에 맞을 때만 그 이치를 이용해 그들을 제약하려 했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법에서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수련해야 하며 사악의 명령에 따르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나는 3년 동안 매를 맞을까 봐 두려워 감히 연공하지 못했다. 속인의 이치로 그들과 따질 만한 더 좋은 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자신을 이 틀 속에 가두어 두었다. 친척이 데리러 왔을 때 나가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는 안에서 밖의 상황을 몰랐지만 꿈을 하나 꾸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허락이 떨어졌는데, 나는 노동교양소 마당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그들이 수속 서류를 나에게 가져다주기만을 기다리는 꿈이었다. 동수들의 눈에 나는 오성이 아주 좋고 다른 이의 문제를 법에 비추어 잘 깨닫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꿈이 사람의 속박을 내려놓으라는 점화였음을 깨달았다. 이 문제는 반박해뿐만 아니라 개인의 심성 제고에서도 나타났다. 나는 고유한 사람의 관념에 갇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4. 장기간 인식하지 못한 관념이 대법과 완전히 동화되는 것을 막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수련의 엄숙함을 무수히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나는 ‘엄숙’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최근 몇 년 사이에야 서서히 주의를 기울이고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그 내함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매사를 엄숙하게 대하고 대법으로 가늠하며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련 상태와 비교하면 나는 아직 거리가 매우 멀다.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대법에 투입하고 조금도 남기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만물을 창조한 ‘우주 대법’에 무조건 동화될 수 있다.

1) 법공부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연공 시 입정하지 못해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미리 알려주셨다. 다만 자신이 깨닫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법공부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그러나 나는 법공부할 때 이리저리 방해를 받았고, 오랫동안 이를 중시하지 못한 채 ‘자연스러움에 따른다(順其自然)’며 합리화했다. 사상업력 등의 방해를 오랫동안 받아 마치 읽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고, 얼마나 이해하고 생각하는지 자신도 몰랐다.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관념이 가져온 문제였다.

연공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다섯 가지 공법을 다 마치지 못했고 장기간 연공 중에 입정(入靜)하지 못했다. 집착의 교란을 받았기에 입정할 수 없었던 것인데, 연공을 중시하지 않고 입정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교란받은 결과였다. 법에서 연공 중에 입정하지 못하는 것은 집착심이 있기 때문임을 알면서도, 나는 오히려 이를 핑계 삼아 ‘집착심이 있으니 입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라고 여겼다. 이제야 깨닫게 된 점은 연공할 때 입정을 교란하는 집착심이 나타나면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억제하고 그것을 닦아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대법의 연공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문제 때문에 나는 연공 중에 이것저것 생각하며 다른 영체(靈體)에 통제당하면서도 자각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수련 초기에는 연공 중에 어떻게 홍법할까 하는 연공장 일을 생각했고, 99년 ‘법난’ 이후에는 어떻게 진상을 알릴까? 하는 일을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 자체로 미혹성이 있어 나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 주의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공 중에 문제를 생각하는 ‘어떤 것’을 양성해 왔고, ‘이 물건’의 통제 하에서 연공할 때 입정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입정하지 못할수록 더 생각하게 되어 그것을 더 키웠다. 30년을 수련했으면서도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연공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자신은 줄곧 이 문제를 중시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문제 자체를 중시하지 않은 점이었다!

연공 동작에서도 관념에 장애를 받았다. 7.20 전에는 연공장에서 신수련생들에게 연공 동작을 자주 가르쳤었다. 내 동작이 꽤 괜찮다고 자부했지만, 사부님께서 명확히 요구하신 부분에서 틀리게 하면서도 관념에 가로막혀 인식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제5장 공법의 가지(加持) 동작을 할 때, 사부님께서는 아래팔이 윗팔을 이끌게 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듣고도 흘려버린 채 계속 윗팔이 아래팔을 이끌게 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다른 동작들도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며, 법을 잘 공부하고 연공을 잘하여 수련의 길을 온건하고 바르게 걷는 보장이다!

연공 시 입정하지 못하니 발정념(發正念) 효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랫동안 잘하지 못해 느슨해졌고 발정념을 형식적으로 대하다 보니, 나중에는 발정념을 할 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씩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게 되었고 그저 형식을 갖추는 정도가 되었다.

2) 자신을 느슨히 하다

수련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나의 수련 상태는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게 되어 점차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추게 되었다. 특히 두 차례나 수련 환경을 잃은 후에는 기본적으로 속인과 섞여 살았다. 수련은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법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 대법에 대해 매우 확고하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수련 환경을 잃고 나니 하락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외지 공사 현장에 있을 때였다. 노동교양 박해 후 직장을 잃어 외지로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수련 환경을 잃자 법공부가 점점 줄어들었고 시간이 있어도 대법 서적을 잡지 못했다. 발정념은 형식에 치우쳤고 진상을 알리는 일도 줄어들어 능동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동료들은 내가 대법제자임을 알았고 속인들에게 인상도 좋았지만, 깊이 있게 진상을 알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부 동료들이 삼퇴를 했지만 여전히 많은 유감과 놓친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나보다 경력이 많고 기업 간부를 지냈던 분이 실직 후 나와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에게도 대법 진상을 알렸으나, 그가 업무 중에 나를 비판하자 나는 그와 다투었다. 나중에 그는 회계 처리가 불투명한 것을 내 탓으로 오해했다. 해명할 기회도 없이 그는 회사를 떠났다. 그가 이 일로 대법에 부정적인 생각을 품어 구도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자신의 수양은 진정으로 중생 구도와 직결되어 있다.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과 체면을 차리는 마음을 인식한 후 층층이 닦아내고 있다. 하지만 쟁투심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인식하지 못했고 안으로 찾을 때도 쟁투심을 찾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야 이 마음을 줄곧 닦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아내와의 관을 넘기지 못하고 그녀의 잔소리와 훈계에 계속 억지로 참아왔는데, 그것이 바로 쟁투심이었음을 발견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바름을 다투며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매번 억지로 참기만 했다. 쟁투심이 줄어들자 그녀가 나를 나무라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두 번째는 외손자가 태어난 후 큰 도시에 사는 딸의 집에 가서 아이를 돌봐줄 때였다. 고향의 수련 환경을 떠나 온 가족 다섯 명이 좁은 방에 부대끼며 살았다. 법공부와 연공이 점차 느슨해지고 손자에 대한 정(情)이 깊어지자, 가정 내에서 원한심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딸이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것, 효도가 부족한 것,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 등을 원망했다. 특히 딸은 어릴 때부터 대법을 접해 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었음에도 점차 법과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정에 이끌려 그녀를 원망했고 자비심이 없었으니 이미 수련인의 심태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수면 장애를 동반하여 장시간 잠들지 못하게 했고, 신체적 피로와 심장의 통증으로 이어져 이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3) 뼈아픈 반성

자신의 상태가 악화함에 따라 점차 수련의 엄숙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진정한 자아는 줄곧 조급해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예전의 밝은 미소를 잃었고 무의식중에 자주 한숨을 쉬었다. 진념(眞念)이 나를 성찰하게 했고, 이러한 해이함이 여전히 닦이지 않은 집착과 관념 때문임을 발견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태도였다. 이 뿌리 깊은 관념은 내가 많은 문제에서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못하게 했고 법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아 한 층차에서만 맴돌게 했다. 깊은 곳의 많은 집착이 은폐되어 있었기에 그러한 집착 하에서의 행위는 명백히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돌아보면 학교에서나 동수들 사이에서, 심지어 환경이 열악한 노동교양소에서도 나는 남과 충돌하지 않았고 자신의 습관을 고집하지 않으며 환경에 부합하고 남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려 했다. 이는 속인 시절부터 갖추고 있던 개인적인 소양이었다. 그러나 이는 선천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체면을 차리고 남에게 비난받지 않으려는 ‘명(名)’에 집착하는 관념 하의 행위였다. 타인의 어려움을 보고 기꺼이 돕는 선한 면도 있었으나 그 안에는 약자에 대한 동정이 숨어 있었다. 이것이 나빠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배후에는 남 위에 서려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세상의 강자 앞에서는 아마 이러한 선한 행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니, 그 배후의 질투심까지 파헤쳐졌다. 이러한 좋지 않은 것들을 닦아버려야만 생명에 대한 차별 없이 똑같이 자비로울 수 있다.

한번은 공원에서 손자를 데리고 온 부부가 뒷걸음질 치며 자기 손자를 촬영하다가 실수로 내 외손자를 들이받아 넘어뜨렸다. 엉덩이가 아이의 머리에 부딪혔다. 그들이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 쳤고 아이는 몸이 유연해 금방 앉아버렸기에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외손자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원망(자기 아이만 챙기고 남의 아이는 주의하지 않는다는 원망)이 나를 수련인의 풍모에서 벗어나게 했다. 나는 화를 내며 그를 나무랐고, 그 부인 역시 참지 못해 남편에게 화를 내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와 즉시 잘못을 깨달았고 매우 부끄러웠다! 만약 내가 그런 꾸중을 들었다면 아마 상대와 다투었을지도 모른다. 이 무슨 심성인가!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 관을 넘기지 못한 것을 보시고 비슷한 기회를 다시 안배해 주셨다. 아이들이 아래층에서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내 외손자를 때려 울게 했다. 그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다. 나는 가서 외손자를 안고 달래주었다. 외손자의 유치원 반 친구 엄마가 달려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며 우리 편을 들어주었다. 때린 아이의 아빠가 오더니 자기 아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뚱뚱한 그 아이는 혼이 나느라 머리에 땀이 범벅이었다.

나는 외손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동시에 화장지로 그 아이의 땀을 닦아주었고, 아이 아빠에게 말했다. “아이 땀 좀 닦아주세요, 그만 꾸중하시고요.”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평온하게 말했다.

“얘야, 앞으로는 사람 때리면 안 된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상황이 종료되었다. 긴장했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한순간에 놓이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내 마음에는 어떤 파동도 없었고 평온하고 상화(祥和)했으며 사랑으로 가득했다. 대법이 끊임없이 나를 정화해 주시고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보살펴 주신 것이다!

맺음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때로는 좋았고 때로는 나빴으며, 자신의 사명과 서약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부님께서는 이 못난 제자를 줄곧 보살펴 주셨다. 자비로운 점화와 안배로 오늘까지 걷게 하셨고, 또 새로운 수련 환경을 안배해 주시어 부족함을 보게 하셨다. 이제 진정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진아(眞我)를 찾아 수련의 엄숙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동수들은 비학비수하면서 정체적으로 제고하고 있다. 최근 몇 차례 발정념 때 동수들이 나의 손이 넘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남은 시간 동안 제자는 오직 마음을 다해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사부님께 드리는 최고의 보답이라 믿는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자가 은사님께 무릎 꿇고 절을 올립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