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이때 남주 군영에도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었다. 도도와 묵묵은 이 거센 바람에 휩쓸려 하늘가로 사라졌고, 아택의 피 묻은 옷들만이 남았다.
이 거센 바람은 비통과 분노에 잠겨 있던 요진을 깨웠다. 요진은 갑자기 아택이 지금 옥경산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서둘러 그를 보러 가려 했다.
요진이 막 문을 나서려는데 사부님이 엄숙한 표정으로 문앞에 서 계셨다. 요진이 급히 물었다. “사부님, 아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시천존은 방 안으로 들어오며 요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엄하게 말했다.
“꿇어라!”
요진은 서둘러 무릎을 꿇으면서도 계속 물었다.
“사부님! 아택은 이제 큰 고비를 넘겼습니까?…….”
원시천존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네 조사님께서 이미 그의 선신(仙身)을 데려가셨다.”
요진은 ‘선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오뢰정타를 맞은 듯 울먹이며 물었다.
“선신(仙身)이라 하시면? 그가 이미…….”
원시천존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죄책감을 이기지 못했다. 원시천존은 타신편을 꺼내 들고 엄격하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아택을 실수로 다치게 했느냐?”
요진은 다시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시천존이 다시 말했다.
“말해라! 어찌하여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의 목숨을 해쳤느냐?”
요진은 비통함을 억누르며 말했다.
“제가 공공을 죽이러 가려는데 그가 제가 위험할까 봐 길을 막기에…… 제가 검을 찔렀습니다.”
원시천존이 다시 물었다.
“지금 남주 전쟁은 이미 평정되었고 너는 본래 전쟁을 즐기는 자가 아닌데, 어찌 공공 하나 때문에 그토록 조급해했느냐? 혹시 나에게 숨기는 일이 더 있는 것이냐?”
요진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그저 제가 조급했을 뿐입니다.”
“짝!” 소리와 함께 원시천존이 타신편으로 요진을 매섭게 한 대 내리치며 다시 물었다.
“사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냐?”
요진은 방금 타신편을 맞고 등이 몹시 아팠으나, 오히려 마음의 비통함은 조금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사부님, 저를 때려죽여 주십시오. 이 배은망덕한 인간을 때려죽여 주십시오…….’
요진은 여전히 말했다.
“없습니다, 그저 제가 공공을 죽이려고 조급했던 것뿐입니다.”
그 후 “짝, 짝……” 소리가 일고여덟 번쯤 들렸다. 채찍질 한 번 한 번이 참으로 매서웠다. 요진의 등에는 이미 여러 갈래 핏자국이 생겼고 상처마다 피가 흘렀다.
원시천존이 다시 물었다.
“네가 자초지종을 다 말하지 않는데 사부가 어찌 너를 감싸줄 수 있겠느냐?!”
요진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부님께 숨기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제 스스로 공공을 죽이려고 서둘렀을 뿐입니다.”
그러자 원시천존은 노기를 띠며 소매를 휘둘러 더욱 세게 요진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사실 방금 희화가 방 안 휘장 뒤에 있었는데, 채찍이 “짝짝” 울릴 때마다 그녀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원시천존의 손이 지칠 때까지 요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원시천존은 그제야 손을 멈추고 물었다.
“요진아, 사부에게 말해다오. 네가 누군가를 감싸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
요진은 땀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지만 여전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원시천존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매를 휘두르고 떠났다…….
그제야 희화가 휘장 뒤에서 나왔다. 그녀는 요진의 몸 가득한 상처와 땀범벅이 된 채 낙담한 표정으로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희화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중 문 앞에 작은 병 하나가 꼿꼿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희화가 집어 보니 타신편의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었다. 원시천존이 방금 남겨두고 간 것이 분명했다.
희화는 생각했다. ‘아, 천존께서도 차마 때리고 싶지 않으셨겠지만 가르치지 않을 수 없으셨겠지…….’
희화가 병을 들고 요진에게 약을 발라주려 하자 요진이 희화를 밀치며 말했다.
“필요 없어요, 견딜 수 있어.”
희화가 말했다.
“억지 부리지 마! 약을 발라줄께!”
요진은 다시 한번 희화를 밀쳐내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눈물을 머금고 외쳤다.
“필요 없단 말이오!”
말을 마친 그녀는 두 손으로 아택의 피 묻은 옷들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리고 억지로 정신을 차리며 명령했다.
“명을 전하라. 공공 잔당의 일은 나중에 다시 논의할 것이니,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겠다.”
그리하여 이번 남주 정벌은 일단락되었다.
한편 이때 천궁에서는 통천교주가 여전히 천제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요진이 아택을 실수로 죽인 일을 붙잡고 늘어지며, 절대로 요진의 사법천신 임명을 찬성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천제는 여전히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한 신관이 보고했다.
“폐하, 내일 있을 사법천신 임명 대전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사법권장(司法權杖)을 모셔와 잠시 정건전(正乾殿)에 두었습니다.”
천제가 말했다.
“알았으니 물러가라.”
통천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요진은 정곤유리검 하나만 가져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사법권장까지 얻게 된다면 아예 하늘을 뒤엎으려 할 것입니다!”
천제는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 임명은 일단 취소하도록 하지!”
통천이 급히 말했다.
“폐하, 취소해서는 안 됩니다. 삼계의 사법천신 자리가 비어 있은 지 이미 오래되어 사주의 선악을 관장할 신이 없습니다. 누군가 맡지 않는다면 사주를 다스리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천제가 물었다.
“교주의 뜻은 사람을 바꾸라는 것인가? 교주가 직접 말해보라.”
통천은 짐짓 분석하는 체하며 말했다.
“이 곤륜산 사람들은 살기가 너무 강하고, 옥경산 사람들은 전쟁에 서툽니다. 차라리 저희 자운산 사람이 부족하나마 그 직을 맡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천제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좋소! 자운산도 이번 남정(南征)에 참여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그 위덕도 충분히 감당할 만하오. 교주께서 한 명을 추천해 보시오!”
통천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신은 다보를 추천합니다! 다보는 제가 어릴 때부터 지켜봐 온 자로 사람됨이 충직하고 진중하며, 또한 저의 자운신통(紫雲神通)을 익혔으니…….”
천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좋소! 명을 전하라. 요진은 아직 나이가 어려 더 연마해야 하니, 내일 다보를 사법천신으로 임명하겠노라!”
통천교주는 만족하며 물러갔다.
통천교주가 떠나자 천제 뒤에 있던 늙은 노복이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천제가 이를 눈치채고 물었다.
“어찌하여 웃는 것이냐?”
노복은 얼른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미천한 신하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방금 웃은 것은 저 교주께서 정녕 모르시는 것 같아 그런 것이옵니다. 이 삼계 사법의 직책은 본래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 만약 그 사람이 하늘이 택한 재목이 아니라면 저 사법권장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를 골탕 먹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제도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아는 것이 제법 많구나!”
…….
남주 전쟁이 끝난 뒤 요진은 본래 천정에 가서 복명(復命)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 장계 한 장으로 당시의 전황과 전과를 간단히 보고하여 천정에 올린 뒤, 곧장 곤륜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곤륜산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지가 내려왔다. 그녀의 사법천신 임명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진은 성지를 받고서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침전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모두가 이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풍잠도 소식을 듣고 급히 희화를 찾아와 물었다. 희화가 답했다.
“그녀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짊어졌습니다.”
풍잠은 목이 메어 천정으로 달려가 천제께 설명하려 했다. 희화가 그를 밀치며 엄숙하게 말했다. “가서 무엇이라 말할 것입니까? 당신이 그녀를 아낀다고요? 아니면 그녀가 당신을 아낀다고요? 요진을 더 난처하게 만들 작정입니까?!”
풍잠은 목이 메어 말했다.
“내가 요아에게 빚진 게 너무 많구나…….“
…….
말을 마친 그는 구름을 타고 떠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때 원시천존과 통천교주는 모두 홍균노조 앞에 무릎을 꿇고 벌을 청하고 있었다.
통천이 말했다.
“제자가 아택을 잘 보살피지 못하여 무모한 자의 검 아래 비참하게 죽게 했으니,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원시천존이 말했다.
“사부님, 제가 그 무모한 것들의 사부이니 벌은 제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홍균노조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일어나라.”
그러자 통천교주는 일어났으나 원시천존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원시천존이 품속에서 피 묻은 타신편을 꺼내며 말했다.
“사부님, 천제께서 이미 요진의 사법천신 직위를 거두셨고 내일 사제의 제자인 다보가 맡게 될 것입니다. 요진이 무모했던 것은 모두 제 허물이니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그러고는 피 묻은 타신편을 홍균께 바쳤다.
통천은 타신편에 묻은 피를 보고 사형이 또 고육지계를 쓴다고 생각하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홍균은 천천히 눈을 떠 그 채찍을 보더니 다시 눈을 감고 말했다.
“사법천신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그를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통천은 얼른 읍하며 말했다.
“예! 사부님, 제자가 반드시 그를 잘 가르쳐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홍균은 눈을 떠 원시천존을 한 번 바라보더니 사라졌다…….
다음 날 임명 대전(大典)이 시작되었다.
사법천신의 직위는 사주(四洲)의 선악(善惡) 상벌(賞罰)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 사악(邪惡)을 제거하고 팔방(八方)을 정벌해야 하기에, 천정의 수많은 무장들이 다 참석해야 했다. 또한 병권(兵權)을 사법천신에게 넘겨야 하니 이제 사법천신은 모든 무장의 직속 상관이 되고 천병들도 그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지금은 다보가 임명되는 자리였지만 요진은 평남원수였기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보가 의기양양하게 임명을 준비하러 나타났다. 요진이 낙담한 표정으로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목덜미와 손등에는 채찍에 맞은 핏자국이 선명했고, 약을 바르지 않아 등에서는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다보가 다가와 도발하며 말했다.
“왜? 사백님께 매 좀 맞더니 기운이 쏙 빠졌나?”
요진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다보가 또 비아냥거렸다.
“허허, 보아하니 요진은 불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사백님의 채찍도 무서워하는구먼! 하하하!”
그가 하하 웃다가 다시 요진을 쳐다보니,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방금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요진이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역시 네가 소인배였구나! 역시 너였어…… 치우와 결탁해 하마터면 남주를 망칠 뻔하다니, 양심을 완전히 저버렸어!”
다보는 증거가 이미 혼란 중에 훔쳐 와서 파기했음을 떠올리고는 담을 키워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쩔 것이냐? 네게 증거라도 있느냐?”
요진은 주먹을 꽉 쥐고 그를 보지 않으려 두 눈을 감았다.
임명 대전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권장(權丈) 수여’였다.
한 신관이 두 손으로 사법권장을 받들고 나왔다. 이 사법권장이야말로 사법천신의 상징이었으며, 이 지팡이를 받아야만 진정한 사법천신이 되어 병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사법권장은 온몸이 오래된 나무의 창백한 색을 띠고 있었으며, 지팡이 머리는 용의 머리 모양으로 강인한 기운이 넘쳤다.
“권장을 수여하노라!” 신관이 말을 마치고 사법권장을 다보에게 바쳤다. 다보가 손을 뻗어 잡으려 했으나 지팡이는 마치 무엇인가에 달라붙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보가 힘껏 끌어올리자 지팡이가 “쌩” 하고 그의 손바닥에서 빠져나갔다.
지팡이는 곧장 요진의 곁으로 날아가 그녀의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았다. 요진도 일시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다보는 지팡이가 요진을 맴도는 것을 보고 불쾌해하며 다시 힘을 내어 잡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잡아도 잡히지 않았고, 지팡이는 요진의 주변을 돌거나 그녀의 머리 위에서 선회할 뿐이었다.
다보는 마음이 급해져 공력을 발휘해 지팡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려 했다. 이때 신관이 외쳤다. “상신(上神), 억지로 힘을 쓰지 마십시오! 그 지팡이가 노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보의 공력은 이미 뻗어 나갔고 지팡이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다보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지팡이를 집으려 했다. 그런데 지팡이가 갑자기 한 마리 창룡(蒼龍)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입에서 물을 뿜어 다보를 온통 적셔버렸다.
화가 난 다보가 창룡을 향해 다시 한 장(掌)을 내질렀다. 이에 노한 창룡은 꼬리를 휘둘러 다보를 매섭게 쳐서 비틀거리게 했다.
다보가 또 창룡을 공격하자 신관이 다급히 만류했다.
“상신, 안 됩니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난 다보는 창룡과 싸우기 시작했다. 창룡은 완전히 격노하여 꼬리 한 방으로 다보를 바닥에 거꾸러뜨리더니, 계속해서 물을 뿜어대어 온 천궁이 폭우가 내리는 듯했다.
요진도 어안이 벙벙해 있었는데, 창룡이 다시 하계로 물을 뿜으려는 것을 보았다. 그 하계는 바로 남주였다. 이에 요진이 훌쩍 뛰어올라 창룡 앞에 서더니 오른손을 들어 제지하며 엄하게 말했다.
“남주를 향해 물을 뿜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창룡은 즉시 하계로 물 뿜는 것을 멈추고 요진의 말을 매우 잘 따랐다. 그러고는 다시 물을 천궁에 뿜어댔다.
이때 신관이 요진에게 말했다.
“요진 원수님! 저 지팡이가 당신의 말을 듣는 군요! 빨리 저것을 거두십시오!”
요진은 시험 삼아 창룡에게 말했다.
“물을 뿜지 마라! 어서 신통을 거두어라!”
즉시 창룡은 물 뿜기를 멈추고 다시 신장(神杖)의 모습으로 돌아와 요진 앞에 꼿꼿이 섰다.
요진은 지팡이를 들어 신관에게 넘겨주었다. 지팡이가 다보에게는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았기에, 이번 임명 대전은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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