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이때 옥경산에서는 원시천존과 통천교주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형, 이번에는 사형이 분명히 졌습니다!”
통천교주는 곳곳에 함정을 파서 이미 원시천존의 바둑돌을 꼼짝 못 하게 포위했다.
원시천존이 말했다.
“허허, 사제여 말이 너무 빠르구려. 그대가 비록 겹겹이 함정을 팠으나 천도(天道)의 무상함은 대적하기 어려울 것이오.”
원시천존이 바둑돌을 채 놓기도 전에 밖에서 큰 외침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사부님, 살려 주십시오! 사부님, 살려 주십시오!”
원시천존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좋지 않구나!” 그러고는 곧장 동굴 문을 나섰고 통천도 뒤따라 나왔다.
원시천존은 요진이 한 선가(仙家) 청년을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청년의 심장에는 날카로운 검에 찔린 구멍이 나 있어 목숨이 위태로웠다. 천존은 서둘러 불진을 휘둘러 그 청년을 침상 위로 옮겼다.
사건의 연유를 묻자 요진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사부님! 제 정곤유리검이 실수로 그를 다치게 했습니다!”
통천교주는 이미 그가 아택임을 알아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으나, 요진이 그를 다치게 했다는 말을 듣자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사형! 당신들이 큰일을 저질렀소! 그가 누군지 아시오?! 바로 우리 사부님 곁을 지키던 시자(侍者)요!”
원시천존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뭐라고?!”
통천교주가 말했다.
“이 자는 사부님께서 이번 남주 전쟁을 위해 특별히 내게 보내주신 사람인데, 요진 저 아이가 간이 부어올라 어찌 감히 그 목숨을 해치려 한단 말이오?!”
요진은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사숙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어서 그를 구해주십시오!”
통천은 소매를 휘둘러 요진을 문밖으로 내쫓고 원시천존과 함께 아택의 상처를 살피려 했다.
상처를 확인한 후 원시천존과 통천교주는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들은 생각했다.
‘이 정곤유리검은 상고(上古)의 예기(利器)인데, 이 검에 심장이 꿰뚫렸으니 살릴 방도가 있겠는가?’
요진은 생각했다.
‘사숙님과 사부님이 계시니 아택은 이제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풍잠이 지금 공공의 손에 잡혀 있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먼저 가서 그를 살펴보고 구한 뒤에 다시 돌아오자…….’
그리하여 요진은 구름을 타고 떠났다.
방 안의 천존과 통천은 속수무책이었다. 천존이 막 “어서 대라천으로 보내세, 사부님 그 어르신이라면 분명히……”라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통천이 아택을 안고 구름을 타고 오르며 말했다.
“나는 천궁에 가서 천의(天醫)에게 보여야겠소, 혹시 살길이 있을지 모르니…….”
원시천존이 아래에서 외쳤다.
“에잇! 천의가 어찌 사부님 어르신보다…….”
통천교주는 그의 말을 아예 무시하고 곧장 아택을 안고 천궁으로 향했다.
원시천존은 생각했다.
‘저 사람이 기어이 천제께 이 일을 알리려 하는구나…….’
원시천존은 잠시 생각하더니 곁에 있던 어린 제자에게 말했다.
“가서 나의 타신편(打神鞭)을 가져오너라!”
한편 요진이 남주로 막 돌아오자마자 부상자의 ‘가족’이 찾아왔다.
도도와 묵묵이 울면서 요진을 찾아왔는데, 손에는 피가 낭자한 흰 셔츠 여러 벌이 들려 있었다.
도도와 묵묵은 요진을 보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이 양심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우리 주인님이 당신에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당신이 그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그야말로 무정한 냉혈 인간이군요!”
요진은 그들이 아택의 수하임을 알아보고 막 설명하려 했으나, 도도가 피 묻은 옷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보시오! 이것이 우리 주인님이 당신을 위해 대신 견뎌낸 것입니다!”
요진은 그 피 묻은 옷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묵묵이 피 묻은 옷 한 벌을 집어 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것은 당신이 첫날 장령들을 위해 대신 견뎌낸 검독(劍毒)입니다. 어깨와 양옆구리에 각각 석 치 길이의 핏자국이 두 개씩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날 입은 가시 돋친 상처이고 가슴팍에 두 줄기 핏자국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날 입은 황매독(黃黴毒)인데 상처 부위에 고름이 가득 찼었습니다. 보세요, 이 옷깃에 온통 누런 고름 자국뿐이지 않습니까…….”
요진은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피 묻은 옷 위의 상처 자국들이 자신의 부상 부위와 완전히 일치했다!
요진은 경악하여 물었다.
“이……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도도가 말했다. “우리 주인님께서는 매일 밤 당신의 군막 밖으로 가서 전업술을 사용해 당신 몸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옮겨 당신 대신 견디셨단 말이오.”
요진은 그 말을 듣고 청천벽력을 맞은 듯 믿기지 않아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 그럼 그는 왜 그렇게 한 것이냐?”
묵묵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늘 당신이 검으로 찌른 그 사람은, 이번 남정(南征) 전날 밤 곤륜산의 약수(弱水)에 빠졌다가 물가로 올라오자마자 당신을 보았소. 그때 정(情)의 뿌리가 내린 것이오.”
요진은 크게 놀라 외쳤다.
“무엇이라고?! 그가 약수에 빠졌다가 올라오자마자 나를 보았다고?! 아…… 안 돼…… 그럴 리 없다…….”
도도가 말했다.
“그럴 리 없다니?! 묻겠소, 상신께서 그날 밤 약수 옆에서 크게 웃지 않았소?”
요진은 갑자기 그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옥탁 선녀가 떠나는 모습이 우스워 약수 옆에서 한참을 웃어댔던 기억이 났다…….
요진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피 묻은 옷들을 바라보았다. 아택이 그날 자신에게 전업술을 가르쳐줄 때의 그 애틋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검으로 아택을 겨누었을 때 그의 표정은 분명 비통함에 젖어 있었다…….
요진은 피 묻은 옷들 곁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옷들을 하나씩 만져보았다. 그녀의 심장도 떨리는 듯했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도와 묵묵은 요진이 주인님의 옷 곁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자 마음이 움직여 그녀가 그렇게 밉지만은 않게 되었다.
요진은 손으로 옷을 꽉 움켜쥐고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깊은 회한에 잠긴 요진의 모습에, 평소 위풍당당하던 그녀가 우는 것을 본 적 없던 도도와 묵묵도 그것이 연기가 아님을 알았다. 게다가 무릎까지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도와 묵묵도 본래 선량한 이들이라, 주인님은 어차피 불사(不死)의 몸이니 그저 다친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요진을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희화가 그들을 떼어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우선 나갑시다, 그녀 혼자 조용히 뉘우치게 둡시다.”
그리하여 희화는 도도, 묵묵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요진은 방 안에서 홀로 아택라는 사람을 조용히 추억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도도와 묵묵의 말대로 아택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은 늘 정이 가득했다. 요진은 생각할수록 그에게 면목이 없었다…….
한편 이때 풍잠은 북산 입구에서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본래 다보가 풍잠에게 준 계책이었는데, 풍잠은 그저 요진과 농담을 하는 정도로만 여겼을 뿐 이런 결과가 초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풍잠의 수하가 비틀거리며 달려와 보고했다.
“주인님!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온통…… 온통…… 온통 피입니다!”
“무엇이라고?! 요아가 다쳤단 말이냐?” 풍잠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 어린 시종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누구의 피인지…… 누구의 피인지 모르겠습니다…….”
풍잠은 요진이 걱정되어 서둘러 진영으로 날아갔다. 요진의 장막 밖에서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희화와 마주쳤다.
희화가 놀라 물었다.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별일 없으시지요!”
풍잠이 물었다. “요진이 다쳤소?”
희화가 답했다. “아니요, 어떻게 빠져나오셨습니까?”
풍잠은 요진이 다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며 희화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진은 장막 안에서 풍잠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듣고도 요진은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풍잠이 희화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당신도 속았구려! 그녀와 농담한 것이오! 공공 따위가 어디 있겠소! 나는 북산에서 혼자 산책하고 있었단 말이오!”
희화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며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가 물었다.
“어찌 그런 농담을 하셨습니까?”
풍잠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음…… 별것 아니오, 그녀가 나를 정말 아끼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지. 어차피 우리 예전에 옥경산에 있을 때도 늘 농담하며 지내지 않았소!”
희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큰일을 저지르셨군요…….”
방금 요진이 아택이 자신을 깊이 연모하여 매일 밤 치료해 주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청천벽력이었다면, 풍잠의 입에서 나온 “농담한 것이오”라는 말은 요진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화가 치민 요진은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요진은 탁자 위에 풍잠이 선물했던 ‘빙심옥호(冰心玉壺)’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힘껏 탁자를 내려치자 그 호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풍잠은 장막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요진이 그를 등지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요진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온통 피칠갑을 한 채 매우 분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풍잠도 그 모습에 몹시 놀랐다.
요진은 자기 몸에 묻은 핏자국을 가리키며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 허허, 이제 만족하십니까? 이 온몸의 선혈이 내가 당신을 아낀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겠지요.”
풍잠은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어찌 된 일인지 물으려 했으나, 요진은 망토를 휘둘러 풍잠을 장막 밖으로 쫓아버렸다.
풍잠은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하다가 급히 희화에게 사건의 내막을 물었다.
희화는 이 일의 전말을 하나하나 풍잠에게 들려주었다.
풍잠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기에 내심 몹시 미안해하며, 다시 들어가 요진에게 사과하려 했다. 그때 요진의 장막 안에서 파편 한 무더기가 날아왔는데 바로 깨진 빙심옥호였다.
풍잠은 그 파편들을 보며 비참해졌다. 잠시 후 장막 안에서 옷감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찌익, 찌익…….” 마치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 같았다. 이어 장막 안에서 설백의 망토 조각 하나가 날아왔다. 그 하얀 조각은 천천히 내려앉아 깨진 빙심옥호 조각들 위에 덮였다. 처량함 위에 처량함이 더해졌으니, 모든 것이 아마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었다.
풍잠은 그 옷자락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녀가…… 그녀가 나와 절교하려는 것인가?”
풍잠은 쭈그리고 앉아 옥호 파편 하나를 꽉 쥐었다. 손이 베여 선혈이 낭자해졌음에도 그는 놓지 않았다…….
한편 이때 천궁에서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끊어질 듯한 아택을 앞에 두고 천의(天醫)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이 일은 천제까지 놀라게 하여 천제도 아택을 보러 왔다.
통천교주가 천제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요진은 살생의 업이 너무 무겁고 살기도 너무 강하니 사법천신의 직책을 맡기기 어렵습니다…….” 통천은 계속해서 천제의 귀에 대고 좋지 않은 말을 해댔다.
원시천존은 어떻게든 아택을 구할 방법만 생각할 뿐 통천교주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택의 호흡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고 이제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사제, 빨리 서둘러 아택을 대라천으로 데려가세. 더 지체하다가는 일이 잘못될까 두렵네!”
원시천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택을 살리던 천의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내전에서 나왔다.
천의들이 고개를 저으니 천제가 다급히 물었다. “설마, 설마 이미…….”
천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신(臣)들이 무능했습니다.”
원시천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통천교주도 긴 탄식을 내뱉었다.
이때 하늘가에서 보랏빛 기운에 싸인 작은 배 한 척이 날아왔다. 배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한 줄기 보랏빛 기운이 노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배는 천천히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원시천존은 눈을 크게 뜨고 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사부님의 경주도(輕舟渡)로구나. 위에는 사부님의 한 가닥 선기(仙氣) 서려 있어.”
그 경주도 위에 홍균노조(鴻鈞老祖)의 한 가닥 호흡이 있었기에 원시천존과 통천은 마치 홍균노조를 뵌 듯 일제히 경주도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경주도는 천천히 아택이 누워 있는 내전으로 들어갔다. 보랏빛 기운은 노를 내려놓고 아택의 침상으로 다가가 그를 감싸 안아 배 위에 싣더니, 다시 노를 저어 하늘가로 천천히 나아가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