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우(蒼宇)
【정견망】
세상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문학 작품은 수도인의 높은 경지인 신래지필(神來之筆)에서 오는데, 이백(李白)은 호가 청련거사(靑蓮居士)다.
여기서는 우선 여산을 노래한 이백의 유명한 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망여산폭포2수(望廬山瀑布二首)》(제2수)
향로봉에 햇빛 비치니 자색 안개 일고
멀리 폭포를 보니 긴 강줄기를 매달았네.
곧추 날아 내리는 삼천 자 물길이
구천에서 쏟아지는 은하수 같구나.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낙구천)
“향로봉에 햇빛 비치니 자색 안개 일고(日照香爐生紫煙)”
여산 향로봉의 형상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표현했다. 향로를 태우는 것은 도가에서 단(丹)을 연마하는 화로이며, 햇빛이 밝게 비치는 것은 도법(道法)과 불광(佛光)이 비치는 것에 비유된다. 자색 기운이 동쪽에서 오고 아침 해가 솟으며 자색 연기가 생겨나는 것은, 구우주가 한 가닥 선천적인 원시지기(原始之氣)를 빚어내고 있음을 상징한다.
“멀리 폭포를 보니 긴 강줄기를 매달았네(遙看瀑布掛前川)”
멀리서 폭포를 바라보니 마치 산천 앞에 걸려 있는 듯하여 사람들에게 연극 무대의 커튼을 연상시킨다. 이는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 세상이 한바탕 큰 연극과 같음을 알려주는 듯하며, 부처가 말한 일체의 법이 꿈이나 환상, 거품, 그림자와 같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곧추 날아 내리는 삼천 자 물길이(飛流直下三千尺)”
여기서 왜 3천이라는 숫자로 형용했을까? 사실 이것은 우주 구조와 관련이 있다. 석가모니불은 일찍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설한 바 있는데, 매번 3천 개의 낮은 층 세계가 모여 한 층 높은 천체 우주를 구성한다. 만약 생명의 본원이 정말 천상의 선(仙)이라면, 그리고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면, 곧추 날아내린다는 것은 천계(天界) 비천(飛天)의 고급 생명이 층층의 우주 공간을 관통해 하계(下界)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겁난을 겪으며 수련함으로써 새로운 우주 체계로 갱신됨을 의미한다.
“구천에서 쏟아지는 은하수 같구나(疑是銀河落九天)”
분자라는 이 층의 입자로 구성된 공간에서 볼 때 삼계(三界) 범위는 태양계에 속하며, 은하계의 경지는 이미 삼계를 훨씬 벗어나 있다. 그리고 ‘구천(九天)’은 삼계 범위 내의 아홉 개의 큰 층천(層天)을 가리킨다. 폭포가 있는 곳에서 보여주는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웅장한 기세를 “구천에서 쏟아지는 은하수”(銀河落九天)라고 한 것은 바로 삼계 밖 수많은 불도신(佛道神)이 삼계로 진입하는 우주의 장관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또한 유백온(劉伯溫)이 예언한 “말후(末後)가 되면 만조(萬祖)가 하계로 내려오고, 천불(千佛)이 세상에 임하며, 하늘의 모든 별들이 과위(果位)를 깎이고…”는 내용이다.
또 다른 수도자 동파거사 소식(蘇軾)도 《제서림벽(題西林壁)》에서 여산에 대한 깨달음을 노래했다.
가로로 보면 산줄기, 옆으로 보면 봉우리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각각 그 모습 다르네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은
단지 내 몸이 이 산 속에 있는 탓일세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불도(佛道)의 경전은 부동한 경지에서 동일한 문장을 보아도 서로 다른 함의가 있으며, 이는 수도자의 부동한 층차의 수행 근거가 된다. 이것이 바로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뜻이다.
“도가도(道可道)”란 천기는 함부로 누설할 수 없고 오직 경지가 승화된 후에야 비로소 한층 더 높은 법리가 나타나 수련자가 도를 깨닫게 할 뿐이다. “비상(非常)”이란 늘 일정하지 않으며, 부동한 우주 층차의 법칙이 서로 다르다.
불경에서 말하는 “법무정법(法無定法)”이 가리키는 바도 이와 같다. 우주 천체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여 마치 여산을 가로로 보고 세로로 보고, 멀리 보고 가까이 보고, 높은 곳에서 보고 낮은 곳에서 보는 것과 같다. 천목(天目)의 경지가 삼계를 초월해 되돌아 지구를 돌아보면 단지 한 알의 미세한 먼지일 뿐이다. 구대행성(九大行星)이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것은 마치 현미경으로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함은 경지가 아직 낮은 한 층 우주 천체의 주천(周天) 순환 속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련을 통해 각 층 공간의 입자로 구성된 신체(身體)를 닦아 낼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를 인식하고 어느 층 입자의 에너지를 관찰하거나 이용하고 싶다면, 또 어느 한 층의 물질 구조(예를 들어 쿼크)를 꿰뚫어 보고 싶다면, 그 층의 입자로 구성된 신체로 완성할 수 있으며 해당 층의 입자로 구성된 천안(天眼)으로 관찰하면 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그러므로 몸으로써 몸을 보고,
집으로써 집을 보며,
마을로써 마을을 보고,
나라로써 나라를 보며,
천하로써 천하를 보아야 한다.”
故以身觀身,以家觀家,
以鄉觀鄉,以邦觀邦,
以天下觀天下
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이 관점의 문제를 말한 것이다.
불도 수련에서 매번 한 공간의 경지를 돌파할 때마다, 해당 층 공간의 생명(평행 우주)과 맺은 얼연(孽緣 역주: 서로에게 해를 끼치거나 괴로움을 주는 좋지 않은 인연)을 선해(善解)해야 한다. 이상 두 수도인의 작품을 종합해 볼 때, 은하수가 날아내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대천세계의 중생과 인연을 맺었겠는가. 경지가 제한되어 있고 몸이 인연의 얽힘 속에 빠져 그 진면목을 알지 못할 뿐이다. 수련은 마치 산을 오르며 마난을 겪고 관을 넘는 것과 같으며, 아직 풀리지 않은 “연(緣)”이 있어 몸이 여전히 어느 산속에 있는 것과 같다. 층층 되돌아가려면 한 겹 또 한 겹의 얼연(孼緣)의 산봉우리에서 몸을 빼내어 떠나야만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