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대륙대법제자
【정견망】
송나라와 원나라의 평화시기는 중국 경제가 몹시 풍요로웠던 시기다. 송나라 때 거란, 서하(西夏) 및 금나라와 대치하거나 전쟁을 했고 이후 몽골의 확장을 포함해 남송 및 원나라 시기 번영한 해운은 국가와 민족 간의 무역과 융합을 크게 강화해주었다.
많은 이들이 중국 특유의 문화현상, 예컨대 시가, 사, 곡, 소설 등이 모두 각 조대(朝代)에 상응해 출현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하나의 조대는 모종의 특유의 문화형식을 위주로 했는가. 또 조대가 바뀔 때는 왜 이런 특유의 문화현상마저 따라서 바뀌었는가? 사실 이것이 바로 신이 사람에게 전해준 문화 정수가 있는 것이다.
일조일대(一朝一代) 모두 그 특정한 문화적 역할이 있다. 조대가 바뀌면 역할도 전부 바뀐다. 이런 것은 비록 사람 중에서도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이런 이유들은 모두 인간세상의 표상에 불과하다.
본문에 쓰는 인물은 혹은 적거나 많거나 모두 대리성(大理城 역주: 지금의 운남성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과거에 대리국의 도성)과 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
송 태조 조광윤이 남쪽 정벌에 나서 대도하(大渡河, 사천성 중서부에 있는 강) 호반에 도착해 당 왕조가 실패한 교훈을 상기했다. 그래서 옥도끼로 대도하를 경계로 정했고 대리국은 이렇게 보전되었다. 나중에 원나라 때 와서 비록 나라가 망하긴 했지만 원나라는 여전히 원래 대리국왕이 국사를 돌보게 했다. 다시 말해 대리(大理)는 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지방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불법(佛法)을 매우 숭상해서 심지어 몇몇 국왕조차 왕위를 선양하고 스스로 출가해서 승려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곳은 수행의 분위기가 짙은 지역이었다.
(1)
그는 북송 시기 대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이 모르는 일을 알 수 있었고 매우 총명했다. 자라서는 부친을 따라 중원에 가서 장사를 했다. 도중에 많은 일을 만나 인생에 대한 경험을 풍부히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장사를 하는 과정에 무엇을 팔면 돈을 벌고 어느 때 팔며 얼마를 버는지 속으로 다 계산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은자 백냥을 벌어야 한다면 절대 한 푼이라도 더 벌지 않았다. 거리에서 병자를 보면 적극적으로 부축해 약방에 데리고 갔으며 어떤 약을 써야 가장 좋은지 알았다. 어떤 병은 약을 찾을 필요도 없이 어디가 잘못되었으니 고쳐야 하는지 알았다. 그는 구체적인 정황에 근거해 일일이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꽤 유명한 기인이 되었다. 나중에 화원구(花園口, 역주: 하남성 정주시의 고을 이름) 황하를 지나갈 때 그와 부친이 가진 화물을 강도에게 빼앗겼는데 그는 사전에 이미 알았다. 하지만 이런 난을 당해야 함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더욱 큰 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억울해 하다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사처로 떠돌아 다녔다. 그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늘 할 만한 일이 없는가 하면서 약방과 시장에서 맴돌았다. 사정을 보아 일을 했다.
그의 성격은 비교적 외향적이라 친구 사귀기를 좋아했지만 동시에 악을 원수처럼 싫어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그는 자신의 ‘예지’ 능력을 사용했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이 시장에 오는 것을 보았다. 본래 오늘 이 사람은 300냥의 은으로 한 마리 새를 사고 가난한 처녀를 데려가 첩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상황을 보자 즉시 그 가난한 처녀를 찾아 숨겼다. 그리고 나중에 그 부잣집 도련님이 마음에 드는 새 앞에서 은자 2냥으로 그것을 샀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잣집 도련님을 기다렸다. 그 부잣집 도련님이 잠시 후 다가와 이 새를 사려고 했다. 그에게 값이 얼마인지 물어보니 그는 은 300냥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도련님이 화를 내며 사람을 불러다 그를 한바탕 때려주려 했다.
이에 그가 설명했다. “이 새는 본래 겨우 2냥 가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298냥을 더 달라고 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도련님이 만약 계속 첩을 취한다면 몸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13명의 처첩이 있기 때문이죠. 이 처녀를 데리고 집에 가면 보름이 지나 당신 집 식구들은 298냥으로 당신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제가 300냥을 받는 것은 당신이 이 새만 데려가고 처첩을 멀리하고 그런 오락을 그만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도련님이 이 말을 듣고는 이 사람에게 뭔가 내력이 있다고 느껴 알아보니 본래 대리국에서 온 사람이었다. 당시 중원 사람들은 대리에선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어 능력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부잣집 도련님은 화를 풀고 기뻐하며 순순히 은 300냥을 그에게 주고 그 새를 데리고 식구들과 다른 곳으로 갔다.
부잣집 도련님이 먼 곳으로 가자 그는 가난한 처녀를 오라고 하여 돈 298냥을 그녀에게 주며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앞으로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처녀는 가지 않고 그가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자기를 그에게 바쳐야 하며 밤낮으로 그를 위해 일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사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처녀의 출신이 가난하고 의지할 데가 없으니 거두라고 권했다.
이때 그도 자신이 처녀가 한 단락 인연이 있음을 보았기에 응낙했다.
마지막에 그는 약방 하나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의원이 약을 짓는 것을 도왔다. 이 약방은 매우 흥했다. 의원은 많은 경우 몹시 바빴다. 한번은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노인환자가 왔는데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가 보니 이 사람 병의 원인은 오해로 팔순된 숙부와 싸워서 얻은 보응이었다. 그는 얼굴빛을 변하지 않고 좌당이 어떻게 약을 처방하는지 보았다. 의원이 한참을 보더니 약방문을 처방했는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것 같았다. 또 노인의 다리와 맥의 상태를 자세히 보더니 원래 처방을 버리고 말했다.
“당신의 병은 매우 괴상합니다. 일반적인 기혈(氣血)이나 풍한(風寒) 따위가 아니며 마치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상황을 보고는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며칠 전 숙부와 다툰 일이 있지요?” 노인은 매우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계속했다.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 약을 쓸 필요 없이 나을 것입니다.” 노인은 어쩔 수 없이 갔다. 보름이 지나 노인이 왔는데 이번에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다. 매우 건강해 보았고 다리도 나았다. 여기에 온 이유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인데 그에게 성심껏 잘못을 고치고 숙부에게 사과했다고 했다. 또 숙부의 용서를 얻었고 다리가 나았다고 했다.
약방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형형색색의 사람을 보았다. 많은 사람은 잘못된 일을 하여 매우 고통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그의 권고를 듣고 성심껏 잘못을 고쳤다. 어떤 사람은 줄곧 나쁜 짓을 했다. 결과적으로 고통이 더 심해졌다. 그래서 그는 대리국 수행의 문화를 생각했다. 사람이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해야 진정 해탈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그의 마음속에 늘 맴도는 문제였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왔는데 딸에게 어쩐 일인지 매우 심하게 귀신들린 것 같다고 했다. 말하기를 싫어하고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니 한번 가서 봐달라는 것이다. 그가 가서 보니 두 요괴가 그녀의 집에서 설치고 있었다. 그 요괴들은 그녀의 신체가 좋아 그녀의 몸을 빌려 수련하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 대리에서 배운 주문과 술법을 써서 그 두 요괴를 쫓아냈다. 딸도 정상이 되었다.
그 부인은 매우 고맙게 여겼고 심지어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그는 자기에겐 이미 아내가 있다고 했다. 여인은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첩도 괜찮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비록 거두긴 했지만 그는 평생 남녀간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전의 아내도 그저 말벗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는 나중에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없다고 느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각종 기괴한 일을 만나면 늘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도 이곳과의 연분이 거의 끝났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내와 첩을 데리고 전전하다 대리로 돌아갔다.
대리에 도착한 지 오래지 않아 그의 아내는 물이 맞지 않았는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 모두 병으로 떠났고 그에게 자식 하나 남겨놓지 않았다. 반면 첩은 줄곧 그의 옆을 지켰다.
한번은 그가 첩을 데리고 함께 전처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인생의 한세상에 인연이 되면 모이고 연이 다하면 흩어진다.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첩은 근기와 오성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대리국에 온 후 두 사람은 함께 불법을 닦았고 대리에서 풍경, 눈, 비, 달의 경치 중에 그들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족적을 남겨 놓았다.
그들은 근기가 좋아 진보도 매우 빨랐고 닦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더 홍대(洪大)한 불법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중에 그들은 각자 한 장면을 보았다. 무한히 넓은 우주 중에 한 거대한 부처님이 나타나자 석가모니 부처와 다른 여러 부처들이 함께 거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공손히 듣고 있었다. 선악(仙樂)이 가지런히 울리고 비천(飛天)이 춤을 추었다. 그것은 정말 비할 데 없이 웅대하고 수승했다.
이 장면을 본 후 그들은 본래 함께 중원에 가서 그 거대한 부처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대리국에서 일부 상황이 생겨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부처님을 찾는 일은 그들의 생명 속에 깊이 박혔다.
몇 번의 윤회를 거쳐 금생에 그와 원래의 처, 첩은 모두 이미 법을 얻었다. 그는 금생에 수련 중에 여전히 일부 초상적인 능력이 있다. 작년에 그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다 붙잡혀 판결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의 일체가 다 잘 되기를 희망한다.
(2)
남송 시기에 북방은 이미 금나라에 점령당했다. 그는 북방 연산(燕山) 일대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매우 유명한 목공 장인을 만났다. 그는 그 목장(木匠)을 따르며 기술을 잘 배웠다. 나중에 금나라가 남쪽으로 정벌을 떠나자 그는 줄곧 군대를 따라 남하했다. 중원 지역의 각종 건축 양식을 알게 되어 매우 놀랍고 신기하게 느꼈다. 나중에 그는 군대를 따라 어느 사원에 도착하여 휴식했는데 그곳의 승려들은 이미 다 도망가고 없었다.
그가 이곳에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피곤하여 일찍 잠이 들었다. 그는 직업적 본능으로 사원의 도처를 다니며 구경하면서 건축 구조를 보았다. 그가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지 않는 어느 구석에 갔을 때 무의식중에 화분을 하나 건드렸다. 이때 바닥에 틈이 하나 갈라졌고 그곳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호기심에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속에 지하도는 매우 길었는데 그가 들어간 지 멀지 않아 이곳에는 아무 보물이 없었고 각종 경서와 고승이 세상을 떠날 때 남겨놓은 사리와 일부 기록을 발견했다. 기록으로 보면 이런 것들은 전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남겨놓은 것이며 많은 기록은 고승이 수행한 경력과 과정이었다.
당시 그는 배고픔과 피로도 잊고 이런 경서와 기록을 뒤져보다가 점점 이 고승에 대해 경탄이 저절로 생겼다.
이곳에는 원래 사람이 피난을 할 수 있도록 물과 먹을 것을 준비해 놓았다. 그는 이곳에서 머물자 곧 2달이 지났다. 여기에 있는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많은 생각을 했다. 그의 직업이 목공이기 때문에 집을 짓는 일이나 틀 뼈대를 세우는 일은 이런 직업은 사람이 바람과 추위를 피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늘과 신에 대해 경의를 표현하는 일종 방식이었다.
고승의 실천이 있었기에 그는 수행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 있었다. 그는 군대를 따라 정벌하길 원하지 않았고 나가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수행의 방식을 찾으려고 생각했다.
그가 지하도 출구를 여는 단추를 찾아 나온 후에 원래의 군대는 이미 명을 받들어 남하한 것을 발견했다. 그는 부근에서 피난가지 못한 힘없는 백성들을 찾아가 이 절의 역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느 할머니가 알려주었다. 이 절은 원래 동한(東漢) 말년에 지은 것이며 당시 멀리서 온 스님이 주지로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북송 말이 되자 이곳에 도적이 들끓어 원래 있던 스님들은 다 죽거나 도망갔고 한동안 절이 텅 비어 있었다. 나중에 어느 사람이 몇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은 모두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곳으로 와서 출가한 것 같았다. 이것은 2,3년 전의 일이었고 최근에 금나라 군대가 오자 그들은 또 도망갔다.
그는 이 오래된 절을 바라보며 매우 감개가 깊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얼른 짐을 싸서 서생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계속 수행의 땅을 찾으러 갔다.
가는 길에 서하에서 불법을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서하로 가서 그곳에서 5년을 머물렀다.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서하 왕족의 딸이었다. 당시 서하 왕족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정권찬탈의 현상이 있었고 그녀도 그 일에 휘말려들었다. 여인의 부친은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멀리 떠나보내려 했다. 여인이 이 이야기를 말하자 그는 동의하고 그녀를 데리고 떠났다. 나중에 대리국이 수행하기 비교적 적합하다는 말을 듣고 그는 여자와 함께 대리국으로 갔다.
창산(蒼山) 부근의 얼하이(洱海) 호반에서 그들은 오두막을 짓고 수행했다. 그는 이미 좋은 수공예 기능이 있었으므로 평소 목공 일을 하며 살았고 돈을 많이 벌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아내와 함께 점점 그곳의 풍토와 인정에 익숙해졌다. 특히 불법을 숭상하는 분위기는 그들에게 이곳이 정말 수행하기 좋은 곳임을 느끼게 했다.
어느 날 부부가 초가집에서 불법을 닦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탁발하는 스님이 왔다. 스님은 이곳에서 좀 쉬어 가고 싶다고 했고 부부는 바깥에 장소를 찾아 거주했다.
사흘 후 그들이 돌아오니 초가집은 불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매우 다급했다. 하지만 불법을 연마한 사람들이라 세간의 일체를 가볍게 보았다. 초가집이라 집은 곧 잿더미가 되었다. 그 스님은 막 잠에서 깬 것 같이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 팔을 펴고 허리를 뻗어 눈을 비볐다. 그러면서 어쩌다 집에 불이 붙었지? 하고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들 두 사람은 이 장면을 보고 이 분은 득도한 고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다. 스님은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한차례 겁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 와서 점화해주었고 차라리 문밖에 나가 거주하고 초가를 내게 주어 휴식하게 했다. 이는 당신들은 정말 선량한 마음을 지녔음을 설명한다. 그래서 내가 당신들을 도와 이번 위난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고승에게 이곳에 남아 불법 수련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고승은 “당신들은 내가 가르칠 수 없소. 장래에 만고에 만나기 힘든 부처수련 방법이 전해 나올 텐데 그 때가 되면 나도 그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소. 당신들은 여기서 기다리시오. 나는 또 나와 인연이 있는 몇 분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말을 마치고 고승은 종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둘은 한참이나 멍하게 있다가 정신이 돌아왔고 땅에 엎드려 하늘을 향해 절을 하며 목숨을 구해주고 점화해준 은혜에 감사드렸다.
그 둘은 여기에 또 다시 집을 지었고 계속 목공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에 불법을 연마했다. 이후 어떤 일이 나타나도 고승의 부탁은 잊지 않았다.
윤회 전전하며 천년이 흘렀지만 그 기억과 기대는 여전히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 이번 생에 그들 둘과 고승은 이미 법을 얻었고 이후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나도 그들은 수련의 길에 정진하고 있다.
(3)
원나라 때 그녀는 운남(雲南)에서 출생했다. 그곳에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있는데 이들 민족은 가무에 능하다. 그녀도 예외가 아니어서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났고 늘 이웃들과 대가(對歌-일문일답식의 노래 형식)를 불렀다.
이런 대가는 청년 남녀 사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이런 오락은 광범위하게 그곳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부드러워서 듣기가 좋았고 반주를 더하면 그야말로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노래와 따라서 자랐다. 가정환경이 부유했기 때문에 별 걱정도 없었다. 그녀는 성혼할 나이가 되었다. 본래 마음에 둔 상대가 있었는데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대가를 하는 중에 몇몇 우수한 청년들도 그녀에게 사랑의 뜻을 표현한 적이 있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 느낌이 없었다.
나중에 그녀는 자기의 생각을 부모에게 알렸다. 그녀 부모는 상대의 정황을 알아보았다. 그는 아주 먼 곳에서 이곳으로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었고 남자 쪽 부모는 매우 술을 좋아하며 남자도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듣고 감정을 곧 내려놓았다.
한번은 그곳의 명절날이 되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가를 하면서 한참 흥이 올랐을 때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한 마리 봉황 모양의 구름이 푸른 창공에 비치어 매우 아름다웠다. 당시 생각했다. ‘만일 내가 저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를 마친 후 집으로 달려갔고 가는 길에 작은 호수를 지났는데 푸른 하늘이 수면에 거꾸로 비친 장면을 보고 더욱 더 자기가 봉황을 타고 하늘에 날아다녔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행복할까 하는 느낌을 가졌다.
아마 이날 생각한 연고일까, 며칠이 지나 어느 날 밤 자기가 어떤 물체에 떠받쳐 위로 약간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푸른 하늘에 한껏 놀러 다녔고 많은 금색 남색 또 다른 색의 봉황을 보았다.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반나절을 놀았던 것 같았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노래 한 수를 불렀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다 깨났다. 깨어났을 때 부모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친이 말했다. “네 마음에 든 남자를 만난 거 아니니? 꿈에 웬 노래를 부르니?”
그녀는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친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꿈에 봉황을 본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보아하니 우리는 정말 봉황과 인연이 있는가 보다! 만일 우리가 꿈처럼 그럴 수 있다면 자유자재로 천지간에 노닐 수 있다면 그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이곳은 대리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대리가 불법을 숭상하는 지방임을 알았다. 그래서 부모는 그녀를 데리고 대리로 갔다. 대리에서 그녀는 많은 다른 민족 문화와 풍습을 접촉했다.
그녀는 줄곧 천지에 놀러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기에 이곳에서 조용히 수행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곳에 많은 괜찮은 젊은이가 구혼을 해왔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는 이번 생에 출가하지 않았지만 줄곧 집에서 수행했다.
수행이 길어짐에 따라 그녀는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졌고 일부 공능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일부 일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한번은 가부좌하고 있는데 곧 입정에 들었다. 정에 들어서자 그는 한 무리 신불이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현재 장래 대법을 전하는 각자와 연을 맺어야 해. 때가 되면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어야 해.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영원을 얻을 수 있어.”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곳에서 조용히 지냈다. 한참 보는데 한 무리 봉황이 나타났다. 이어서 한 무리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장래 그 각자가 인간에서 법을 전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며 자기가 그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때 그녀의 사상에 일념이 생겨났다: 이 각자가 장래에 오면 나는 어디에 가서 찾는가? 기타 영상이 사라지기 전에 글자 하나 ‘北’을 보았다.
이 장면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나중에 부모에게 이 일을 말했다. 부모가 말하기를, “너는 시집가려 하지 않으니 그럼 여기에서 잘 수련하자. 장래 북방에서 온 각자를 만나거나 기회가 있으면 북방으로 가서 각자를 만날지 모르니 우리 반드시 수련을 잘하자. 기왕 네가 봉황과 이런 인연이 있으니 장래 네 이름에 ‘봉(鳳)’자가 있어야 이 단락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생에 그녀는 여전히 부유한 집에 자라서 널리 사랑을 받고 능력이 매우 좋았는데 이 속세 중에서 생명의 순진한 본색을 보전할 수 있기가 매우 어려웠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이전에 소원한대로 진정하게 만고에 만나기 힘든 대법을 만났으며 이름에도 ‘봉’이 있다. 이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20여 년의 수련 중에 많은 마난을 겪었지만 일체는 그녀와 수련하는 식구들이 더욱 확고히 수련의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大理之願結宋元神佛點悟慈悲顯曆經百代千古事今朝得法兌前願!
대리의 소원이 송, 원에 맺어져신불의 점화로 자비를 드러내니천고의 일은 백 세대를 거쳐오늘날 법을 얻어 예전 소원 이루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5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