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대륙대법제자
【정견망】
수당(隋唐)시기는 중화 문명이 최고봉이었다. 북부 돌궐과의 충돌은 중원과 북방 민족의 융합속도를 가속시켰다. 남방 운하의 개발은 남북간의 경제 소통을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교류도 촉진했다. 일본, 한국 및 다른 여러 나라와의 왕래로 인해 중국은 당시 아시아 내지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도록 촉성했다.
흉노인들은 막북(漠北)으로 쫓겨 가고 서쪽으로 유럽 다뉴브강 유역까지 옮겨가서 지금의 헝가리를 만들었다. 돌궐인들은 서쪽으로 소아시아 반도로 옮겨가 지금의 터키가 되었다. 만일 원시 민족이 북쪽으로 이동해 형성한 에스키모인을 포함하고, 베링해협을 넘어 형성한 인디안까지 치며, 여기에 상(商)나라의 후예들이 한국과 중남미에서 번영하고 발전한 것 및 진나라 시기 서복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에서 이후의 남태평양 이주민까지 친다면 신이 사람에게 전해준 문화는 전 세계를 덮었다.
많은 경우 나는 동한(東漢) 시기에 어느 고승이 중국에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당나라 초기 현장(玄奘)이 멀리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오고 나중에 감진(鑒真)이 일본에 건너간 것을 생각한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중국인이 “예의상 왕래를 중시한다”는 규범을 숭상하는 것과 매우 부합한다. 현장이 인도에 간 것은 표면상으로는 원본 불경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실제로는 중국인들의 불법(佛法)에 대해 일종의 경건함과 존중을 대표하는 것이다. 나중에 불교 중의 불법이 중국에서 크게 번성하는데 바탕을 깐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만 말하고 이 시대를 말해보자. 위수(渭水) 강변에서 나온 세 사람이 법을 찾은 이야기를 해보자.
(1)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일부 구절을 읊기 좋아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무슨 압운(押韻)도 몰랐으며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수나라 시기에는 시가(詩歌)문화가 그리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진한(秦漢) 시기의 악부(樂府) 내지 가부(歌賦)의 풍격은 몰락했지만 여전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일부 구절을 읊는 것만 즐겼다. 특히 바깥의 경치를 보고 정이 솟아날 때 더 그랬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읊은 구절에는 운율이 좀 있었다.
그는 돌아다니길 좋아했는데 늘 서너 명 친구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 달을 감상하고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는 수나라 초년의 일이다. 그러다 수양제(隋煬帝) 시기가 되자 황제가 공명심이 크고 사치가 극에 달했다. 게다가 빈번하게 대외 전쟁을 일으켜 민생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들의 노래도 매우 고통스럽고 처량해졌다. 수나라는 아주 단명했는데 그 짧은 기간에 그들은 인생에 대한 사고를 하게 되었다. 일체는 우담화처럼 순식간에 피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슬픔이 올라왔다.
그는 서역에서는 불법이 매우 흥성하다는 말을 듣고 서역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모두 너무 멀다고 싫어했다. 또 그곳 역시 태평하지 않고 따라갈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는 행장을 좀 꾸려서 혼자 길에 올랐다.
그가 위수(渭水)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길가에서 노변(路邊) 풍경을 보았다. 저절로 몇 마디 싯구를 읊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멀리서 한 마리 쾌마가 달려오더니 그 앞에서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문득 보니 이 말 위에는 젊은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혼수상태인 것 같았다. 그는 여자를 안아 내린 후 그녀를 깨웠다. 한나절이 지나 여자가 깨어났다. 그는 몸에 지닌 물을 마시게 주었다. 여자는 누가 자기를 구해준 것을 보자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여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자신은 부모님과 낙양 친척집에 의지하러 가는 길이었다. 중간에 도적을 만나 부모와 가족들이 다 죽었고 자신만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운 좋게 손과 발에 말고삐를 둘둘 감았기에 떨어지진 않았고 그가 구하게 된 것이었다.
“이 말은 매우 영성이 있어서 사람을 알아봅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멀리서도 피해갑니다. 선량한 사람이나 인연 있는 사람을 보면 다가오거나 그의 신변에 머물며 뛰어놀기를 좋아합니다. 이왕 이 녀석이 당신 앞에 머물렀으니 그렇다면 당신은 이 말과 인연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좋은 마음으로 저를 구해주셨으니 이 말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혼자 계속해서 낙양 친척집에 가면 됩니다.” 그러면서 말고삐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는 이것을 보고 여자는 보통 여자가 아니며 풍모가 시원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번에 낙양으로 가는 길에도 도적이 출몰할 것인데 차라리 우리 함께 서역으로 가는 게 어떻겠소? 그곳에는 대 사막과 흐르는 모래가 있고 또 불법(佛法)이 있다고 들었소. 우리 함께 그곳에 가서 좀 알아봅시다.” 하고는 마음대로 몇 마디 싯귀를 읊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그는 학자처럼 학식이 좀 있어 보여 함께 가기로 동의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돈황을 거쳐 서역으로 들어갔다. 당시 돈황은 사람들도 굴에 불상을 막 파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다. 그들은 부처와 비천의 모양을 보고 매우 신성하다고 느꼈다. 나중에 서역에서 그들은 몇 명의 고승을 만났으며 그들의 일부 신통도 보았다. 당시 서역 많은 지방은 이미 가뭄이 들어 일부 작은 나라는 멸망에 직면해 있었고 전쟁이 매우 많았다.
이렇게 그들은 한차례 고난을 거쳐 또 돈황으로 돌아왔다. 중원에 이때 전란이 끊이지 않았기에 그들은 돈황에 머물렀다.
가는 동안에 그들은 너무 많은 생명이 전쟁이나 빈궁, 기아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사망하는 것을 보았다. 이곳은 비록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발생한 일은 매우 간단하고 순수했다.
그가 마음에 일부 변화가 일어났을 때 늘 일부 구절을 읊었고 나중에 변방시의 유행을 따라 그도 영향을 받아 읊은 구절은 더욱 내포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늘 주위 아이들이 구경하고 모방을 하게 되었다. 이때마다 여인은 옆에서 가볍게 미소 지으며 감상하고 격려하며 공감을 일으켰다.
어느 날 그들 집에 일백세 되는 노인이 찾아왔다. 이 노인은 이곳에서 가장 장수한 노인으로 덕망이 있었다. 노인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말했다. 어제 꿈에 금갑신인(金甲神人 황금갑옷을 입은 신인)이 내게 말했다네. “자네들 절대 금생에 불법과 맺은 연분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라 했네. 이 연분은 장래에 지금 황제(당태종)와 관련이 있네. 불법에는 또 많은 종류가 있으며 이런 것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네.”
노인은 그들이 눈을 크게 뜨고 노인의 말을 듣는 것을 보고 계속 말했다. “나는 일찍이 노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꿈에 신인의 점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이 큰 행운이며 조상이 상당한 덕을 쌓아야 비로소 된다고 했네. 자네들은 소중히 여겨야 하네.” 노인은 말을 마치고 물을 마시더니 나갔다. 나가서 그 말을 보더니 말의 이마를 툭툭 쳤다. 말도 매우 온순하게 대했다. 그가 멀리 갔을 때 말은 돌연 길게 히잉하고 울었다. 반드시 노인의 부탁을 기억하겠다는 표시였다.
그 둘은 이 상황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느껴 불법에 마음을 써서 공부해보기로 결심을 내렸다. 또 절대 주어진 틀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이후 그들은 전생하면서 늘 부부 혹은 다른 형식으로 함께 했다. 그가 파룬따파 창시인의 저서 《/span>홍음중에서 《/span>장안을 회억하다(憶長安)> 라는 글을 보았을 때 자기는 당나라와 매우 큰 연분이 있다고 느꼈다. 그 조대에 대해 매우 친밀감을 느꼈다.
(2)
그는 중당(中唐)시기 안사(安史)의 난 이후 위수 호반에서 자랐다. 당시에는 토번이 늘 침략했기에 그는 군대에 참가하여 토번의 침입을 막는 전투에 참가했다가 그만 포로가 되었다. 그는 배운 게 좀 있었기에 포로가 된 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바로 죽이지 않았고 토번 귀족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얽혀버렸는데 그는 중원 사람이고 중원문화를 좋아하여 이방의 여러 문화에 습관이 되지 않았다. 토번녀는 비록 성격이 사나웠지만 그에게는 잘 대해주었다.
당시의 티벳(토번이 있는 지역)은 신앙이 비교적 혼란했다. 인도에서 전해온 불교가 있는가 하면 티벳 고유신앙도 있었다. 불교 신앙에도 몇 가지 종파가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20여 년을 머문 후 티벳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신앙 방면에 있어서 그는 티벳의 각종 교파는 매우 기괴하여 중원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줄곧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종교 신앙에 물들어 부처에 대해 많은 인식이 있게 되었다. 일이 없을 때 그는 일부 티벳 불교의 경전을 보았다.
눈 덮인 고원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한인이 장기적으로 거주하기는 그런 느낌은 견디기 어려웠다. 생활상의 고생은 그래도 지낼 만했다 하더라도 정신상의 적막함과 고통은 견디기 매우 힘들었다.
그가 정신적인 이런 ‘방랑’이 정말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토번 아내에게 그녀 부모와 상의해 함께 중원에 가서 장사를 하는 게 어떠냐고 상의하게 했다. 이러면 그들은 중원에 대해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늘 토번에 돌아와 부모를 볼 수도 있었다.
부모 역시 그녀의 권고에 동의했고 많은 재물과 하인을 주어 그들이 중원에 가서 장사하도록 했다.
그들은 중원이나 서남 지역에서 가져온 차나 일부 생활용품을 이곳 귀족들에게 주고 일부 티벳의 특유의 산품을 중원으로 가지고 가서 팔았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들은 정말 돈을 많이 벌었다.
돈을 번 나머지 그는 고원에 눈 덮인 봉우리와 풍요로운 중원을 바라보며 이 거대한 차이에 그는 늘 깊이 빠져 들었다. 티벳에서 그는 생명이 윤회가 있고 신이 된다는 설을 알았고 또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악보를 받는다는 도리를 알았다.
그러나 늘 티벳의 불법은 자기가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한인(漢人) 지역에서 그는 일부 고승과 이인을 만나 그들에게 일부 수행 방면의 것에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는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속으로 심지어 생각했다. 자기는 불조가 세상에 계시면서 법을 전할 때 불법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일생 중에 그는 늘 탐색하고 있었고 그의 토번 아내 역시 그와의 관계 때문에 일부 한지 문화와 수련 방법을 접촉했다. 그들이 금생에 사람이 수행하여 진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대법을 얻기 위해 좋은 바탕을 깔았다.
(3)
오대십국의 시기 그녀는 위수 호반에 태어났다. 이 강은 장안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관련된 많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 역시 노인들이 말해준 위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강자아가 위수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다 주문왕을 만났고 당나라 초기의 위수의 맹약 등등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참음(隐忍)과 냉막(淡漠)의 내포를 알았다.
당시에는 전란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늘 이별의 고통을 받았고 그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20대 때 가족들은 병사로 잡혀가거나 아니면 피살되었다. 그녀도 전쟁 중에 눈 하나를 잃었다. 원래 예뻤던 그녀는 눈을 하나 잃음으로 해서 괴로워하다 자살하려 했으나 어느 비구니가 구했다. 나중에 전전하다 항산에 도착했다.
당시 항산에는 향불이 많이 번성(절이 많아)했고 수행인 역시 매우 많았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원래의 그 비구니와 매우 사이가 좋았다. 사람들은 함께 경을 외우고 수행하며 정진했다.
나중에 어느 중년 비구니가 밖에서 떠돌아다니다 중병에 걸렸다. 산으로 돌아와 얼마 안 되어 곧 병사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녀는 수행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련의 목표는 해탈인데 수련 중에 중병으로 죽어버리면 어찌 그것을 해탈이라 할 수 있는가?” 그녀의 생각에 비록 국한성이 있지만 그 시기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자기의 생각을 자기를 산에 데리고 온 노비구니에게 말해주었다. 비구니는 한참을 중얼 거리더니 말했다. “사실 사람의 생사와 해탈은 별개의 개념이지만 불가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세상을 떠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불법을 품어야 내생에 진정한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 말에 매우 도리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리 확실치 않아서 암암리에 더 똑똑히 말해주고 법력이 더욱 큰 불법이 나타나야 한다고 느꼈다.
이런 기대를 갖고 절에서 20여 년을 머물렀다. 한번은 그녀가 밖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 절의 비구니와 이곳에 놀러 온 비구니가 실내에서 불경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한참 들어보니 그들은 불조께서 《/span>묘법연화경에서 언급한 장차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와 법을 전한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span>전륜성왕이라는 몇 글자를 듣자마자 즉시 한 가닥 자상하고 자비로운 에너지가 백회로부터 신체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때부터 곧 “나는 반드시 전륜성왕이 세상에서 법을 전하는 그날을 기다리겠다.”라고 결심했다.
기대가 있으니 희망이 생겼다. 이후 수행의 길에 어떤 간난과 위험을 만나도 위축되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한번은 그녀가 다른 두 비구니와 하산하여 동냥을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갔을 때 한 무리의 관병을 만났다. 그 관병들은 두말 않고 그녀들을 묶어 상관 앞에 대령했다. 이 상관은 호색한이라 그녀들 세 사람이 잘 생긴 것(다만 그녀가 외눈이었지만)을 보고 나쁜 짓을 하려고 했다. 당시 다른 두 여인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당당히 말했다. “나의 사부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불타는 사람의 생과 사를 중시하지 않으며 다만 마음속에 늘 불법을 가슴에 품고 있느냐를 중시한다고 했소. 오직 진심으로 불법을 품은 사람은 비록 신체가 일부 죄를 짓더라도 진정한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했소.” 그녀가 한자 한자씩 말하는데 쟁쟁하며 힘이 있었고 자비 중에 위엄이 스며있었다.
관리는 이 말을 듣자 벼락이 귀를 때리는 것 같아 매우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석방했다.
만년이 되어 그녀는 신체도 좋지 않게 되어 늘 괴로웠다. 이때 그녀는 더 일찍이 전륜성왕의 직접 전하는 도를 얻기 희망했으며 그런 심정이 절박해졌다. 그녀가 임종할 무렵 이곳 토지가 그녀에게 많은 은혜를 주었다고 생각하여 만일 장래 진정 법을 얻는다면 반드시 대법을 이곳 사람에게 전해주겠다고 했다.
금생에 그녀가 정말 전륜성왕이 직접 법을 전한 후 산서(山西)에 한 매우 긴시간 머물렀으며 가능한 대법의 복음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전해주었다.
바로 다음과 같다.
渭水滔滔逝千年生命尋法未曾閑眾得師尊親傳度勇猛精進兌誓言
위수는 도도히 천년을 흐르고생명은 법을 찾느라 쉰적이 없네뭇사람 사존이 친히 전한 도를 얻고용맹정진하여 서약을 실천하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5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