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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목기 시즌 3 (34)

화본선생

【정견망】

얼마 지나지 않아 복숭아 숲은 다시 무성해졌다.

요진은 다시 해치(獬豸)와 상의했다.

“듣기로 극락천(極樂天) 근처에 ‘음양이기병(陰陽二氣瓶)’이라는 병이 하나 있는데, 그 안의 음양 두 기운 역시 원고(遠古)부터 남겨진 것이라고 하더군.”

해치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 보물이 있지요. 다만 그것을 지키는 대붕조(大鵬鳥)가 매우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요사님, 우선 제가 그 대붕의 취향을 조사해볼 테니, 그 후에 병을 빌리러 가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요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내가 먼저 가봐야겠어. 사법천신인 내 체면이 통하는지 확인해 봐야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시녀를 재촉해 반듯한 관복으로 갈아입고는 서둘러 떠났다. 방에 홀로 남겨진 해치는 투덜거렸다. “성미도 급하지, 정말 급해. 아직 젊으니…”

요진이 극락천 근처에 이르니, 산 중턱에 대붕 한 마리가 앉아 보병(寶甁) 하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틀림없는 음양이기병이었다. 요진은 구름에서 대붕 앞으로 내려와 먼저 읍을 하며 말했다.

“이곳은 선운(仙雲)이 아른거리니 대붕 오라버니의 여유가 참으로 보기 좋구려!”

그 대붕조는 눈꺼풀을 슬쩍 들어 관복 차림의 사법천신을 보더니, 다시 눈을 감고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진은 약간 무안했으나 직접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붕 오라버니, 이곳에서 청수(清修) 중이신데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바로 용건을 말하겠소. 붕 오라버니의 음양이기병을 잠시 빌려주었으면 합니다. 내일 바로 돌려주겠소.”

대붕조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고,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석상처럼 굴었다.

요진은 한숨을 쉬며 “방해했구려”라고 말하고는 떠났다.

요진이 곤륜으로 돌아오자 모두가 병을 빌렸는지 물었고, 요진은 낙담하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희화(曦和)가 웃으며 말했다.

“수년 동안 삼계에서 당신을 이토록 홀대한 소선(小仙)은 없었을 텐데, 복숭아 숲을 위해 허리도 굽히고 기세도 꺾였군요. 하하.”

요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별일 아니야. 필경 극락천의 이웃이니 거드름을 피울 만도 하지.”

해치가 말했다.

“방금 조사해보니, 그 대붕의 이름은 ‘운정만리붕(雲程萬里鵬)’으로 극락천과 친인척 관계라더군요. 그런데 이 붕은 색(色)을 좀 밝히는데, 특히 꾸미지 않은 순수한 미인을 좋아하고 환화(幻化)한 미인은 싫어한답니다.”

청란이 거들었다.

“요진, 이 관복은 너무 엄격해 보여요. 사실 환화(幻化)하지 않아도 꾸며놓으면 미인 축에 드니, 옷을 갈아입고 다시 가서 시도해 봐요.”

요진은 생각에 잠기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 남주에서 싸울 때 호랑이 몸을 드러냈다가, 신의 몸으로 돌아오는 걸 깜빡하고 천제께 보고하러 간 적이 있었지. 천제께서 가마에서 떨어지실 뻔했는데, 이제 나 같은 사람도 미인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웃었고 해치가 말했다.

“요사님, 지금은 그때와 다릅니다. 수년간 용모가 국색천향(國色天香)으로 피어났으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모두가 웃으며 시녀들이 요진을 밀어붙여 단장을 시켰고, 요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길을 떠났다.

요진은 먼저 흰 비단으로 얼굴을 가리고, 산 중턱에 앉아 일부러 흐느껴 대붕조의 주의를 끌었다.

과연 대붕조는 옷자락이 나풀거리고 폭포 같은 긴 머리에 은은한 산차꽃 향기를 풍기는 미녀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붕조는 수려한 사내의 모습으로 변해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낭자, 어찌 이토록 가련하게 울고 있소?”

그러자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고생해서 복숭아 숲을 일구었는데, 이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깨끗한 음양의 기운이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답니다. 당신에게 순수한 음양의 기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산 넘고 물 건너 여기까지 왔지만, 붕군(鵬君)께서 위엄 있게 지키고 계시니 저 같은 이름 없는 소졸에게는 빌려주지 않으실 것 같아 서글퍼서 그만…”

대붕조는 그녀가 매우 진실하고 애처롭게 우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요진의 눈물은 진심이었고, 그 말 또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기에 대붕은 갑자기 연민의 정이 솟구쳤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빌려주겠소, 빌려주고말고! 그러니 제발 울지 마시오, 알겠소?”

낭자는 울음을 그치고 물었다.

“정말 빌려주시는 건가요?”

대붕조는 즉시 음양이기병을 손바닥 위에 올리며 말했다.

“물론이오! 다만 빌려주기 전에 작은 부탁이 하나 있소.”

낭자가 물었다.

“무슨 부탁인가요?”

대붕이 말했다.

“낭자의 눈이 참으로 맑고 투명하구려! 분명 얼굴도 아름다울 텐데, 면사(面紗)를 벗어 내게 한 번 보여줄 수 있겠소?”

낭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먼저 병을 주세요!”

대붕조는 쾌히 병을 건넸고, 낭자도 천천히 면사를 벗었다.

대붕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당… 당신은 방금 그 사법천신 요진이 아니오!”

요진은 대붕조에게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병 빌려줘서 고마워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잽싸게 자리를 떴다!

대붕조가 뒤에서 외쳤다.

“어이! 병을 연 뒤에는 절대 말을 하면 안 되오! 절대 명심하시오!”

말을 마친 대붕은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안 빌려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뭘 그리 급하실까. 보아하니 요진도 꽤 미인이군. 굳이 관복을 입고 위세를 떨칠 게 아니라 진작 이렇게 왔으면 바로 빌려줬을 것을…”

사실 대붕조가 마지막에 외친 말은 매우 중요했다. 병을 연 후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였다. 그러나 요진은 그 말을 대충 듣고 흘려버렸다.

요진은 돌아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음양이기병을 복숭아 숲으로 가져갔다. 병을 열고 한참이 지났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저 숲이 맑고 서늘해질 뿐 다른 변화는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요진은 이리저리 살피다가 무심결에 한마디 내뱉었다.

“에이, 왜 아무런 기척이 없지?”

그 순간, 병 속에서 불덩이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튀어오르자 요진은 그제야 방금 자신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진은 서둘러 병 뚜껑을 닫으려 했으나, 불덩이가 너무 빨리 날아와 정신이 없었다. 결국 요진은 통증을 참으며 손으로 병 입구를 막았고, 그제야 겨우 뚜껑을 닫을 수 있었다.

요진의 손은 화상을 입었고, 몇몇 복숭아나무도 불에 데었다. 동료들이 서둘러 달려와 요진에게 물었다.

“괜찮나? 화상을 입은 건가?”

요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네.”

요진의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통증 때문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희화가 말했다.

“화상 치료약을 찾아오겠소!”

요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니 괜찮네. 보아하니 이 병도 소용이 없구먼. 누가 이 병을 돌려주게나. 방금 내가 규칙을 잊고 말을 하는 바람에…”

요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주인인 요진의 고통을 지켜보던 신장(神杖)이 어린 창룡(蒼龍)으로 변하더니 입에서 물을 뿜어 요진의 손에 뿌렸다. 그러자 화상 부위의 통증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요진은 신장이 뿜는 물에 이런 신기한 효능이 있는 것을 보고, 신장에게 물을 더 뿜어 복숭아 숲에 뿌리게 했다. 과연 화상을 입었던 나무들이 금방 회복되었고, 신장의 물로 기른 나무들은 더욱 튼튼하고 무성하게 자랐다.

이번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뜻밖에 신장의 물이 가진 묘용을 발견했으니 이른바 ‘무심코 심은 버들이 그늘을 이룬’ 격이었다.

그렇게 요진은 수년 동안 반복해서 시도했으나, 여전히 진정한 징음징양(澄陰澄陽)의 기운을 찾지 못했다.

이 세월 동안 요진은 복숭아 숲을 가꾸는 한편 사법천신의 직무를 수행했다. 공공(共工)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공공의 처지는 전보다 덜 절박해졌고, 틈틈이 통천교주에게 가서 선단과 약을 훔치기도 했다. 통천교주 또한 눈을 감아주었기에 공공의 법력은 꽤 증진되었다.

어느 날 요진은 천제로부터 남주(南洲) 인간 세상의 촉(蜀) 땅을 유심히 살피라는 성지를 받았다. 그곳에 사람의 심장과 간을 먹는 사마(邪魔)가 나타났으며, 수련계에서도 그 사마가 범인(凡人)뿐만 아니라 수련인들의 심간(心肝)까지 먹어 치운다는 상소문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요진은 신속하게 갑옷과 망토를 걸치고 촉 땅을 살피러 갔다. 과연 사마들이 밤마다 사람들을 납치해 촉 땅 산천의 동굴 속에 가두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이를 ‘행방불명’으로 여겼다.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없었기에 요진도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요진이 보니 마귀들이 사람을 석판 위에 묶어놓고 막 심장을 꺼내려 하고 있었다. 요진이 번개를 내리쳐 동굴을 부수자, 놀란 마귀들이 요진을 보고 도망치려 했다. 요진은 손을 뻗어 악행을 저지른 모든 사마를 왼손바닥 안에 가두었다. 요진은 먼저 잡혀 온 범인들과 수련인들을 돌려보낸 뒤, 오른손으로 거울을 그려 천목(天目)으로 이 마귀들이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비추어 보았다.

거울 속에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귀들은 납치해 온 사람들을 석판에 묶었는데, 그중에는 수련에 정진하지 않아 빈틈을 보인 수련인들도 있었다. 마귀들은 잔인하게도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한 채, 자신의 심장, 간, 비장, 신장 등이 도려내져 먹히는 것을 눈을 뜨고 지켜보게 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고, 그 소리가 처절할수록 마귀들은 더욱 기뻐했다. 피가 다 마르고 장기가 모두 먹힌 뒤에야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요진은 분노로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삼계에 이토록 사악한 일이 존재하다니!”

분노한 요진이 지팡이로 죄악의 동굴들을 격파하자, 인간 세상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요진은 분노를 억누르며 왼손에 쥔 사마들을 데리고 지옥으로 향했다.

“천신께서 행차하신다! 모든 귀신은 물렀거라! 천신께서…”

소리(小吏)가 미처 보고를 마치기도 전에 요진은 이미 지부(地府)에 당도해 있었다.

염왕이 입을 떼기도 전, 요진은 장풍으로 지옥의 문 하나를 부수고 왼손에 가두었던 사마들을 그곳에 던져버렸다. 요진이 엄숙하게 염왕에게 말했다.

“지부에서 가장 손속이 잔인하고 엄격한 망나니를 불러오시오!”

염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많은 망나니를 불러왔다.

요진이 물었다.

“사마가 악행을 저지르면 몇 배로 갚습니까?”

염왕이 대답했다.

“보통 백 배로 갚습니다.”

요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되오. 이 사마들은 너무나 잔인무도하여 백 배는 너무 가볍소. 만 배(萬倍), 만 배로 갚게 하시오!”

사마들은 그 소리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빌었고, 염왕과 망나니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염왕이 서둘러 말했다.

“천신님, 이것은 정해진 규칙입니다. 보통 백 배인데 만배라 하시니… 그것은…”

요진이 차갑게 말했다.

“규칙 또한 신(神)이 정한 것이니 특수한 상황이 있는 법이오. 이 사마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과 간을 먹으며 인간을 가장 고통스러운 지경에 몰아넣었소. 만 배로 갚게 하되, 한 번의 오차도 없어야 하오.”

말을 마친 그녀가 사법신장(司法神杖)으로 땅을 내리치자, 그 위세에 온갖 귀신들이 울부짖고 염왕도 비틀거렸다. 귀리(鬼吏)들은 모두 엎드려 제창했다.

“천신님 노여움을 거두소서! 천신님 노여움을 거두소서!”

염왕도 서둘러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만 배로 갚게 하겠습니다! 만 배로…”

요진이 엄히 말했다.

“지금 당장 형을 집행하라! 한 치의 실수도 용납지 않겠다!”

곧이어 사람의 심장을 파먹던 사마들도 석판 위에 못 박혔다. 망나니들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감각을 사마들의 몸에 주입했다. 사마들에게도 심장과 간, 비장, 폐가 생겨났고 고통을 느끼는 정도도 인간과 똑같아졌다. 망나니 우두머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명령했다.

“집행하라.”

그러자 모든 망나니가 사마들의 심장과 간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사마들도 인간과 똑같이 울부짖고 포효했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은 이런 경험을 만 번이나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 파낸 후에는 망나니가 다시 장기를 집어넣고 꿰맨 뒤 다시 파내고 다시 꿰매기를 만 번 반복했다.

요진은 분노가 풀릴 때까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곁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염왕에게 말했다. “좋다, 이 일은 우선 이렇게 처리해라. 만 배다, 한 번이라도 부족해선 안 된다. 만 번의 형벌이 끝나면 전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처넣어 소멸시켜라.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염왕이 읍하며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천신님 안녕히 가십시오.”

요진은 떠나는 길에 파내진 심장 몇 개를 챙겨 마계(魔界)의 대문에 화살로 박아버렸다. 사악한 무리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 후 요진이 재임하는 동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