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대법제자
【정견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의 30여 년 수련 과정을 돌아보면, 앞선 20여 년 동안은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다. 그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수련이라 여겼고,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몰랐으며 일을 하려는 마음이 강해 심성과 층차를 높일 기회를 많이 놓쳤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 환경 중에서도 모두 수련할 수 있는데, 수련하는 것은 자신이다. 이익 앞에서, 좋고 나쁨 앞에서, 시비 앞에서, 마땅함과 마땅하지 않음 앞에서,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놓을지, 당신은 바로 가서 실천하고 수련하라. 책도 읽었고, 법도 보았으므로,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법을 보고 있는데, 그럼 사회에서 당신이 어떻게 자신을 잘 장악하는지에 달렸다.” (《각지 설법 11》 〈2010년 뉴욕법회 설법〉)
법공부를 통해 점차 깨닫게 된 것은, 사실 일을 하는 것이 수련은 아니며 바쁜 것이 정진은 아니고 적극적인 것이 실수(實修)는 아니라는 점이다. 열정, 노력, 헌신, 인내하는 겉모습이 수련이 아니라, 미루지 않고 숨기지 않으며 안으로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수련이다. 법에서 자신을 제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관(關)과 난(難)을 겪을 때 늘 시원하게 넘기지 못하고 질질 끌곤 했다. 각종 모순과 마난 속에서 나는 점차 자신을 잘 닦는 것이 관건임을 알게 되었다.
팬데믹으로 집에 머물게 된 때부터 나는 법공부의 밀도를 높여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체계적으로 두 번 공부했고, 《전법륜》을 두 번 외웠다. 그러면서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임을 점차 명백히 알게 되었고, 어떻게 자신을 높이는지 배웠으며, 끊임없는 실수 속에서 ‘안으로 찾는 것이 법보(法寶)다’라는 깊은 내포를 초보적으로 체득했다. 아래에 내가 두 차례 심성 관을 넘기며 얻은 작은 체득을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안으로 찾아 동수 사이의 간격을 해소하다
노인 아파트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E 동수가 나에게 단지 활동에 참여하자고 권했다. 대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 쉽다는 이유였다. 나는 기쁘게 동의하고 함께 갔다. 가서 보니 불교 선원을 참관하는 것이었고, 활동 내용은 강연을 듣고 팔괘 건강 댄스를 추는 것이었다. 대강당에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덮쳤고, 아주 큰 힘이 나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더니 즉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E 동수에게 왜 이런 곳에 오느냐고 원망했다. 나는 대강당에서 나와 담장 옆 화단 근처 바닥에 앉아 발정념을 하며, 사부님께 보호막을 쳐주셔서 사악한 기운의 간섭을 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E 동수는 나의 행동에 매우 불만스러워하며 비판했다.
“당신 정말 철이 없군요. 나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일단 왔으면 협조해야죠.” (그녀는 협조인이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고 가부좌를 했다. 잠시 후 그녀는 나를 화장실에 가자고 해놓고는 보살상들을 참관하게 하고 관련 자료를 보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따라 이런 것들을 보면 안 되며, 보면 번거로움을 초래하고 우리 수련을 간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당신이 나보다 수련을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어 집에 가고 싶다고만 했다. 그녀는 일요일이라 셔틀버스가 없어 혼자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생겼다. 비록 여전히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대법 활동에 참여했지만, 서로 사이에는 큰 산이 가로막힌 것 같았다.
그해 ‘5.13’ 축하 행사 때, 협조인은 미리 화장을 해야 하니 오전 11시까지 어느 동수의 집에 도착해야 한다고 통지했다. 협조인이 너무 바빠서 T 동수에게 우리 건물 동수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T 동수는 E의 전화번호가 없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건물의 동수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E 동수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그녀는 매우 불쾌한 기색으로 “어머, 당신 외교관이라도 된 모양이지?”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그 동수네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길을 잘 아니 같이 가자고 했고, 10시에 로비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5분이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먼저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동수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이미 먼저 와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왜 약속을 어겼느냐고 물었다. 먼저 올 생각이었으면 왜 말하지 않았는지, 왜 내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따졌다. 그녀는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은 늘 옳고 모든 게 완벽하죠! 당신 집의 이는 쌍꺼풀까지 있겠네요…”
그녀의 말은 내 화에 기름을 부은 듯했다. 무척 노여웠으나 ‘5.13’ 행사를 앞두고 화를 낼 수는 없어 억지로 참았다. 당시 머릿속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그녀는 왜 나에게 저러는 걸까? 길을 모른다더니 왜 먼저 도착했지? 도대체 왜?’ 축하 행사로 바빠서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밤에 집에 돌아오니 낮에 있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 잡생각을 하며 이 아파트로 이사 온 것을 후회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저 사람과 어떻게 마주 보지?’ 뒤척이며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차라리 일어나서 법공부를 하자는 생각에 책상 위 대법 서적 한 권을 무심코 펼쳤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이익과 자아가 자극받았을 때, 당신이 안에서 찾아보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순 속에서 당신이 정말 무고(無辜)하다 해도 “오, 알겠다. 내가 틀림없이 무언가 잘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다 해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해서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고 하면 된다.” (《각지 설법 11》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 사부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시는구나!’ 나는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사부님의 인내심 있는 가르침과 세심한 인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이 안배해주신 수련 환경이며, 사부님께서 나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나의 업력은 스스로 갚아야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반드시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녀와의 간격을 해소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니 어떻게 그녀와 간격을 없애야 할지 막막했다. 본래 나는 억울한 것을 못 참고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 좋게 대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다. 수련생은 생사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런 사람마음과 집착을 왜 내려놓지 못하는가? 구세력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사악에게 빌미를 잡혀 박해를 받는다면 우리의 수련에 지장을 줄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는다면, 많은 일에서 당신은 논쟁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순을 발생시키는 이런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각지 설법 10》 〈맨해튼 설법〉)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허스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에 감사드렸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약속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듣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겠습니다.” 그 순간 머리 정수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내려와 온몸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고, 마음이 점차 진정되면서 진지하게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나의 성격은 비교적 급하고 인내심이 없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며 남을 용서하지 못했다. 쟁투심과 남을 멸시하는 마음 등은 모두 사악한 당문화의 잔재였다. 또한 원망하는 마음과 두려움 등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니, 나의 근본적인 집착인 ‘자아를 수호하려는 마음’을 발견했다.
나는 다음 날 E 동수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튿날이 되자 다시 발걸음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렸고, 나의 인심이 다시 고개를 들며 밖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며칠 동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고 허리와 머리도 아팠다. 밤에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명혜 방송을 듣다가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누군가 내 귀에 대고 크게 외쳤다. “사람에서 뛰쳐나와라!”
나는 깜짝 놀라 깼다. 벌떡 일어나 앉아 “사람에서 뛰쳐 나와라! 사람에서 뛰쳐 나와라!”라고 자신도 모르게 반복해서 되뇌니 머리 아픈 것도 사라지고 맑아졌다. 사부님께서 아직 깨닫지 못한 나를 보시고 다시 한번 할(喝)을 하신 것임을 알았다. 더는 앞뒤를 재며 주저할 수 없었다. 수련인은 생사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직도 이런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부끄러움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허스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내일 반드시 E 동수네 집에 가서 그녀와 잘 교류하고 우리 사이의 간격을 없애겠다고.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나는 E 동수의 집을 찾아가 겸허하게 사과했다. “제 성격이 좋지 않아 급하고 인내심도 부족했습니다. 말이 너무 직설적이고 딱딱해서 남을 배려하지 못해 그동안 당신을 불쾌하게 해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우리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은 인연이며 사부님의 안배라고 말했다.
또한 나는 원래 이 건물로 오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아들 집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노인 아파트 신청서를 수정할 때 원래 적었던 시내 중심가 건물 여섯 곳을 모두 스카버러 지역으로 바꿨는데, 마지막에 55호 건물(지금 사는 곳)만 남겨두었다. 아들은 이 건물도 빼자고 했지만 내가 왠지 그냥 두자고 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알 수 없었으나, 지금 보니 사부님께서 남겨두신 것이었다.
설령 이 건물을 배정받았더라도 거절할 수 있었지만, 당시 집주인 동수가 갑자기 방을 비워달라고 했고 여든이 넘은 노인이 새로 방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너무 걱정이 되어 밤잠을 설치고 난 다음 날 아침 9시, 연공을 마치자마자 집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바로 이 55호 건물이었다. 나는 이 집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임을 알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도움이었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있으면서 서로 돕고 구하기를 바라신 것이다.
사부님의 가지 덕분에 그녀의 태도도 누그러졌고, 우리 둘 다 상대방을 탓하지 않았다. 결국 앞으로 서로 돕고 일깨워주며 함께 정진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녀는 앞으로 각자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타인의 생활에 간섭하지 말자고 덧붙였다.
2. 이유 없는 비난에 태연히 안으로 찾다
또 다른 일이 있었다. 노인 아파트로 이사한 후 P 동수가 나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다. 그녀는 연중 내내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는 정진하는 동수여서 나는 그녀를 매우 존경했다. 그녀가 예전에 넘어져서 허리를 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무척 안타깝게 여겼다. 버스에서 그녀를 두 번 만났을 때 자리를 양보했으나 그녀는 나를 본체만체했다. 나는 아마 나의 선심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대면 법공부를 할 때 그녀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녀는 나를 보더니 매우 불쾌한 기색으로 가방을 들고 다른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주변 동수들이 나와 그녀 사이에 무슨 모순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나도 의아했다.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무슨 모순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가 나를 보고 불쾌해한다면 분명 마음이 괴로워서일 것이다.
나는 아마 이번 생이 아니라 전생 어느 때인가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반드시 선의로 그녀와 교류하고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 때 그녀가 온 것을 보고, 그녀와 친한 자매 동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밤에 우리 차를 타고 가라고, 내 아들이 집까지 바래다줄 것이라고(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험한 말까지 내뱉었다.
나중에 차이나타운 진상 판넬 거치대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내가 웃으며 인사하자 그녀는 매우 기분 나쁘게 나를 밀치며 소리쳤다.
“저리 가요! 여기는 내 진상 거점이야!”
내가 “이러지 마세요, 우리는 동수잖아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수련생도 아니야! 진정으로 수련하는 게 아니라 가짜로 하는 거지!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샜는데 당신이 진짜 수련하는거야?”
그녀의 고함 앞에서도 나는 신기하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고 변명도 원망도 생기지 않았으며, 마치 그녀가 욕하는 대상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수님, 우리 모두 사부님 말씀을 명심해요.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 인심이 무거우면 바다 건너기 어렵도다'” (《정진요지 2》〈심자명〉)
나중에 한 동수가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대하는데 왜 화가 나지 않나요?”
나는 법리에서 알게 된 것을 말했다. “동수에게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동수가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눈앞에 놓여 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찾아야 하죠. 타인의 상태가 바르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은, 자신의 사심을 닦아 없애라고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마도 내가 예전에 그녀를 서운하게 했거나 괴롭혔을 것이고,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해서 나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괴로운 것일 터였다. 또한 그녀는 나의 심성을 높여주고 있으니 나는 그녀에게 매우 감사했다. 그녀가 나를 욕한 말은 어쩌면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진짜 수련을 하고 있는가? 매 순간 모든 일에서 사부님의 법에 따라 수련하고 있는가? 실천하고 있는가?’ 아직 많이 부족했다. 우리의 공법은 성명쌍수(性命雙修)이므로 끊임없이 수련하면 계속 젊어지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
동시에 만약 내가 그녀와 따지고 거리에서 싸웠다면 대법의 형상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둘 다 업을 지어 수련에 어려움을 더했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업력을 없애주시고 심성을 높여주셔서 이번 심성 관을 순조롭게 넘기게 해주신 것에 만분 감사드린다. 안으로 찾는 것이 정말로 보배임을 체득했다!
3. 맺음말
사부님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
정법은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실수(實修)의 시간은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수련 환경은 복잡해지고 우리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므로 우리는 더욱 정진해야 한다. 반드시 수련생의 상태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가 정념을 견지하기만 하면 우주의 정신(正神)들과 사부님의 법신이 우리를 가지해주실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에서 뛰쳐나오라”고 하셨다. 모순이 생기거나 어떤 관과 난이 닥칠 때, 혹은 신체에 병업의 가상(假相)이 나타날 때, 우리는 반드시 수련생의 기준으로 문제를 생각해야 하며 반드시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음속에 사람 마음과 집착이 가득 차 있으면 신(神)의 상태가 나오지 못하며, 우주의 뭇 신과 사부님의 법신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반드시 법공부를 열심히 하고 발정념의 강도를 높이며, 자신을 잘 닦고 사람을 많이 구하여 원만에 이를 때까지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바짝 따라가야 한다.
이상은 내가 심성관을 넘기며 얻은 작은 체득이며,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