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遠之)
【정견망】
홍진(紅塵)은 바다와 같기에 망망한 인해(人海)라는 설이 있고, 또 고개를 돌리면 바로 피안이라는 고전적인 표현이 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서 명리(名利)와 정구(情仇)를 위해 기뻐하거나 근심한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돌리면 바로 피안임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바다 가운데로 끊임없이 헤엄쳐 간다. 멀리 헤엄쳐 갈수록 기슭과는 더 멀어지니, 자신의 진심(真心)과 본성(本性)으로 돌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마치 쇠뿔 속을 파고드는 것과 같아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막다른 길임에도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광활한 하늘과 무수한 통로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수행인은 단지 사찰 안에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해(人海) 속으로 들어가 단련해야 한다. 이 단련 과정을 운유(雲遊)라고 한다. 인해 속에서 이리저리 다니는 것이다. 몸부림치면서 심성(心性)을 제고해야만 비로소 자유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
사대명작 중에서 오직 《서유기(西遊記)》만이 노니는 것(遊)이지 다른 것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북유기(北遊記)》와 《동유기(東遊記)》도 있다. 모두가 수련하여 도를 얻는 과정이다. 당승 일행 네 사람이 유람을 하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피안을 향해 여행하는 과정이며, 또한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본래 서천으로 가는 길은 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단번에 십만팔천리를 가면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세월이 필요했는가? 서천(西天)으로 가는 길은 단련을 거쳐야 목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서천 그 자체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을 만드신 것은 세인들이 홍진 속에서 고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구도받고 제고할 수 있는 과정을 주신 것이다. 즉 자신을 깨끗이 씻고 제고하는 과정이다. 보기에 홍진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고층에서 떨어진 신(神)이 다시 천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연(機緣)이 될 수 있다.
창세주께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이곳에 오셨을 때가 바로 생명에게 가장 큰 기연이 도래한 때다. 다만 생명이 구도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생명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찌 되었든 기연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거 석가모니가 사람을 행복한 피안으로 제도하려 했다면, 오늘날 우주 정법(正法)은 사람을 진정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어느 때든 집은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다.
법선(法船)이 출항하여 홍진 속에서 사람을 제도해 천국 세계로 데려가려 한다. 기연이 닿은 지금, 우리가 회귀하는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또 우리가 미련을 가질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미망 속의 운운중생(芸芸衆生)들이여,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빨리 배에 올라 행복한 피안으로 향하자.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