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청허는 요진을 데리고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가서 말했다.
“보시오, 저것이 바로 여심천이오.”
요진이 보니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샘이 하나 있었는데, 맑고 투명하며 주변의 공기조차 가볍고 온화했다.
청허가 요진에게 말했다.
“오른손을 내밀고 나를 따라서 해 보시오.”
요진이 오른손을 내밀어 청허를 따라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청허가 말했다. “단전의 힘을 운용하여, 이것을……” 복잡한 수인(手印)을 마친 후, 청허의 손바닥에서 졸졸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솟아나왔다. 이것이 바로 여심천이었다.
하지만 요진의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요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손에는 왜 아무것도 없을까요?”
청허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 서두르지 마시오. 본왕이 먼저 이 사법천신을 심문해 봐야겠소.”
요진도 웃으며 예를 갖추고 말했다.
“사법천신, 귀를 씻고 ‘심문’을 기다리겠습니다.”
청허가 말했다.
“짐새는 본래 생령을 먼저 공격하지 않소. 그대 몸에 진한(嗔恨)의 기운이 배어 있지 않은 이상 말이오. 은무산을 지나기 전, 진한의 마음을 일으킨 적이 있소?”
요진이 진지하게 회상하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남주의 사마(邪魔)들이 너무도 잔인하여, 제가 확실히 큰 진한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청허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그대는 평소 한 번의 결단으로 생사를 가르는 기백은 있으나, 웃음 한 번으로 원한을 없애는 도량을 가졌소?”
요진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으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청허는 생각했다.
‘과연 참된 성품을 가진 요진답구나. 대답이 막힘없고 시원시원해.’
청허가 말했다.
“좋소, 대답이 명쾌하구려. 그럼 그대는 이 여심천의 ‘여심(如心)’ 두 글자가 어떠한 뜻인지 알겠소?”
요진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如)와 심(心)이라, 혹 용서(恕)라는 글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청허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진이 다시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더러 그 사마들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까?”
청허가 물었다.
“짐독에 중독된 것이 사마들이오? 아니면 요진이오?”
요진이 웃으며 말했다.
“중독된 것은 접니다.”
청허가 말했다.
“그렇소. 그대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바로 그대 자신이오. 진노(嗔)도 원한(恨)도 없어야 비로소 마음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지! 이것이 바로 여심천을 만드는 심법(心法)이라오. 방금 그대는 이 심법을 모르고 내가 가르쳐준 기법(技法)만 썼기에 이 샘을 만들지 못한 것이오. 이제 알겠소?”
요진이 말했다.
“네,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청허가 말했다.
“그럼 다시 시도해 보시오.”
요진이 방금 배운 수인을 다시 해보자, 과연 손바닥에서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가 흘러나왔다.
청허가 말했다.
“돌아가서 심성(心性)을 많이 닦고 자신의 용량을 넓히면, 이 샘물은 점점 더 잘 나올 것이오.”
그러고는 손을 뻗자, 마치 대양과 같은 샘물이 청허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왔다.
요진이 감탄하며 말했다.
“호천대제께서 만드신 이 샘물을 이토록 철저히 수련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청허는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요진이 다시 물었다.
“동왕의 도량이 넓고 큰 을 제가 보았습니다. 동왕께서는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 없으셨습니까?”
청허는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예전에 하나 있었지만 그것 또한 이미 털어버렸소.”
요진이 물었다.
“그게 어떤 일입니까?”
청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주심(誅心)의 일이었소.”
요진이 놀라며 말했다.
“뭐라고요? 감히 누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단 말입니까……”
청허는 요진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 참! 방금 그 기법을 좀 더 보강해야겠소.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니……”
요진에게 비법을 다 가르친 후, 청허는 다시 요진을 데리고 왕궁의 후원을 산책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즐거웠고 요진의 얼굴에 서려 있던 허약한 기운도 점차 사라졌다. 두 사람이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한 늙은 정원사가 포도 지지대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요진은 청허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 노인을 도와 포도 지지대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 왕의 권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분은 한 주(洲)의 왕임에도 저렇게 소탈하신데, 나도 가서 도와야지.’
요진이 막 도우려는데 청허가 포도 한 송이를 따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요진이 손을 뻗어 받으려 하자 청허가 말했다.
“자, 그냥 드셔 보시오. 맛을 보구려!”
요진은 손을 내리고 입으로 살짝 포도 한 알을 깨물었다. 청허는 미소 지으며 그녀가 맛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진은 이 포도가 정말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보통 포도와는 달랐기에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포도는 처음 먹어봅니다. 껍질부터 씨까지 신맛이나 떫은맛이 전혀 없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한 것이 정말 맛있습니다!”
청허는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맛있다니 다행이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정원을 거닐었다. 요진이 다시 가벼운 기침을 하자 청허가 말했다. “피곤한 모양이오. 본왕이 숙소로 데려다줄 테니 쉬도록 하시오.”
요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답했다. 청허는 그녀를 비전으로 배웅했다.
“그럼… 푹 쉬시오. 본왕도 이만 가보겠소.”
요진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동주왕을 배웅합니다.”
청허는 급히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 없소.”
요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허는 정말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막 떠나려다 뒤돌아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내일 본왕과 함께… 조찬을 드시면 어떻겠소?”
요진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요진은 아주 일찍 일어나 침상 곁에서 밤을 지킨 시녀에게 살며시 물었다.
“너희는 평소에 무엇으로 눈썹을 그리느냐?”
시녀가 대답했다.
“천신님, 저희는 문어녀(章魚女 암컷 문어)의 먹물로 눈썹을 그립니다.”
요진이 웃으며 말했다.
“비리지 않느냐? 아, 참, 너희는 계속 바닷속에 살았다는 걸 깜빡했구나.”
어린 시녀가 말했다.
“비리지 않습니다. 천신님께서 눈썹을 그리시려나요? 제가 좀 가져오겠습니다.”
요진이 말했다.
“그래, 오늘은 초췌한 기색이 가신 것 같으니, 너희 임금님을 뵐 때 조금은 단정히 해야겠구나.”
시녀가 말했다.
“네, 제가 곧 가져오겠습니다.”
시녀가 나가자마자 요진은 비전을 빠져나와 바다로 향했다.
요진은 바닷속을 마음껏 누비며 보라색 진주 몇 알을 주워 이마를 장식했고, 붉은 산호의 빛깔을 빌려 입술을 붉게 물들였다. 마침 해수면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자 아침 노을 한 자락을 끌어당겨 어깨에 두르는 숄(披帛)로 삼고, 파도 몇 송이를 따서 치맛자락을 만들었으며, 반짝이는 햇살을 모아 머리카락 사이에 수놓았다…… 요진이 돌아오자 시녀가 문어 먹물을 들고 눈썹을 그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눈썹을 그린 뒤 요진은 거울을 꼼꼼히 비추어 보며 기분 좋게 곁의 시녀에게 물었다.
“어떠냐?”
시녀들이 말했다.
“천신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진정 신선 중의 절색(絶色)이십니다!”
요진은 수줍게 웃다가 갑자기 한 가지가 생각나 물었다.
“참, 연지(胭脂)는 없느냐?”
시녀들이 웃으며 말했다.
“천신님, 거울을 한 번 보십시오. 연지가 더 필요하시겠습니까?”
요진이 자세히 거울을 보니 자신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녀들이 말했다.
“천신님의 뺨이 지금 선도(仙桃)처럼 발그레한데, 연지가 어디 더 필요하겠습니까?”
요진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조찬을 들러 가자구나.”
궁녀의 인도를 받아 요진은 조찬 장소로 향했다.
청허는 그곳에 도착한 요진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곱고 사랑스러워 말을 잊은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요진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말했다.
“동주왕을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습니다.”
청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 앉으시오. 그대가 포도를 좋아하기에 노인이 갓 딴 신선한 포도를 가져오라고 특별히 일렀소.”
요진은 조심스럽게 앉으며 수줍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청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따가 본왕이 그대를 데려갈 곳이 있소.”
요진이 물었다.
“어디입니까?”
청허가 말했다. “가보면 알게 될 것이오.”
조찬을 마친 후 청허는 요진을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다.
요진이 보니 그곳은 멀고도 한적한, 깊은 산 중의 산이요 깊은 골 중의 골이었다. 그곳에는 크지 않은 작은 오두막이 한 채 있었고,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당에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돌상, 돌의자가 놓여 있었다.
청허가 말했다.
“본왕은 평소 이곳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오. 이곳은 조용하여 술수(術數) 류의 천서(天書)를 보아도 정신이 흩어지지 않소.”
요진은 놀라며 말했다.
“술수 천서요? 저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몇 권만 보아도 지능을 다 써버린 것 같던데요, 헤헤.”
요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청허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본 그 책들에는 복희대제의 지혜가 담겨 있으니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오.”
요진은 복희대제라는 말에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아, 혹시 징양(澄陽)과 징음(澄陰)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청허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요진이 다시 물었다.
“대체 징양과 징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청허가 말했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낳고,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으니, 삼계 내 최초의 양의가 바로 징양과 징음이오.”
요진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그 최초의 양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청허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태초에 복희대제께서 태극을 만드셨고, 태극이 다시 양의를 낳았소. 복희대제와 여와낭랑(女媧娘娘)께서는 일남일녀(一男一女)를 두셨는데, 그들이 바로 우리가 아는 상고이신(上古二神)인 동왕공(東王公)과 서왕모(西王母)라오. 동왕공이 훗날 호천대제가 되셨는데, 이 두 신의 몸에 징양과 징음이 깃들어 있소.”
요진은 생각에 잠겼다가 탄식하며 말했다.
“에휴…… 그럼 그 두 신 외에는 삼계에서 다시는 징양과 징음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까?”
청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까지는 본왕도 모르겠소.”
청허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것을 묻는 것이오?”
요진은 얼버무리며 말했다.
“아… 방금 복희대제를 말씀하시기에 갑자기 생각나서요……”
“자, 방 안으로 들어가 앉읍시다.”
청허가 웃으며 요진에게 말했다.
요진은 이 작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식품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집안에 벽밖에 없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소박했다. 한 주의 왕이 이토록 누추한 오두막에 머물기를 좋아한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어머? 이건 구들입니까? 인간 세상의 온돌(火炕)인가요?”
요진은 방 안에 온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청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한번 앉아 보시오.”
요진이 앉아보니 온돌이 부드럽고 따뜻하여 웃으며 말했다.
“이 구들은 인간 세상의 것과는 다르군요. 훨씬 안락합니다!”
청허가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이때 창밖에서 갑자기 산토끼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왔다. 청허는 토끼를 안아 들고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웃으며 요진에게 말했다.
“보시오, 이 녀석 참 귀엽지 않소? 그대를 닮았구려.”
요진은 흠칫 놀랐다. 자신의 진신(眞身)이 본래 백호(白虎)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저보고 토끼를 닮았다고요? 하하, 제가 어찌 토끼를 닮았겠습니까?”
청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뒷산에 귀여운 동물들이 아주 많소! 내가 가서 보여주겠소.”
요진이 뒷산에 가서 보니,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닭, 오리, 거위, 개, 그리고 토끼와 사슴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요진은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왕’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한 주의 왕이 이토록 평범한 백성처럼 살기를 좋아하고, 집에 ‘구들’을 놓은 것도 모자라 직접 가축을 기르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청허는 요진을 데리고 산천을 유람했다. 때때로 동주의 백성들을 만나면 백성들은 마치 친구를 대하듯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도 수시로 노인을 도와 그물을 거두거나 장기판을 벌였고, 백성들과 함께 세상을 논했다. 백성들 중 그 누구도 그가 바로 이 동승신주의 왕이며, 동승신주의 모든 생령이 그의 은혜를 입고 그의 비호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임금님, 천신님. 만찬이 준비되었습니다.”
궁녀 한 명이 와서 아뢰었다.
“시장하시겠소. 돌아가서 밥을 먹읍시다!”
청허가 요진에게 말했다.
요진은 웃으며 말했다. “네, 정말 배가 고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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