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어느 날, 《전법륜》의 다음 단락을 외우고 있었다.
“한번은 그가 식물 두 그루를 나란히 놓고서 그의 학생에게 그중 한 그루 식물 앞에서 다른 한 그루 식물을 마구 짓밟고, 뭉개어 죽이게 했다. 그런 다음 남은 한 그루 식물을 방 안으로 옮겨 거짓말탐지기에 연결해 놓고, 그의 다섯 명 학생을 밖에서 차례로 들어오게 했다. 앞의 네 학생이 들어왔으나 반응이 없었다. 다섯 번째 학생, 식물을 짓밟은 학생이 들어오자 아직 앞까지 걸어오지도 않았으나 전자펜이 즉시 급속하게 곡선 하나를 그려냈는데, 사람이 두려워할 때에나 그려낼 수 있는 이런 곡선이었다.”
문득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며, 짓밟힌 그 식물이 너무나 가엽고 무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비록 그 식물의 비명과 통곡, 구조 요청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실험은 만물에 영성이 있으며, 그것들도 감정과 지각이 있음을 증명했다.
두 번째로 이 단락을 외울 때, 아마도 사부님의 점화(點化)였는지 나는 수련인으로서의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되었다. 짓밟혀 죽은 이 식물은 대법에 쓰여 대법 서적에 기록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이 생명이 무엇을 겪었든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갈 것이며, 그 뒤에 연결된 생명들 또한 구도(救度)될 것이다. 이것은 천고에 만나기 어렵고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커다란 좋은 일이며, 이전에 겪은 고통과 마난은 얻은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한 생명이 법과 인연을 맺기만 하면, 포기하지 않는 한 앞길이 어떠하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명의 영원한 영광과 광명일 것이다.
이전에는 늘 천하 만물이 이 세상에 와서 고단하게 생존하며 나아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곤 했다. 사람이 설마 단지 한 평생을 살기 위해서이며, 풀과 나무가 단지 한 계절을 살기 위해서겠는가. 적막한 세월 속에서 생명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사실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한자는 이미 우리에게 그 해석을 전해주고 있었다.
예전에 한 동수의 글에서 ‘기다릴 대(待)’와 ‘기다릴 등(等)’이라는 글자에 왜 모두 ‘절 사(寺)’ 자가 들어있는지에 대해 쓴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비록 고대의 해석으로는 ‘사(寺)’가 고대 관청을 대표하여 길 위의 기다림과 관청에서의 대기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게 ‘사(寺)’ 자의 보편적인 해석은 바로 사찰이며 불법(佛法) 수행의 성지다. 말세에 이르러 이는 근본이 비범한 모든 생명에게 경각심을 주는 점화다. 즉, 이 지구에 온 모든 생명은 파룬따파와 성스러운 인연을 맺고, 성스러운 말씀을 들으며, 진상을 알고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파룬따파 사부님께서는 저작 《정진요지 3》 〈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를〉에서 말씀하셨다.
“중생들이여! 당신들이 수천 년 이래 희망한 것, 기다린 것과 당신들이 걱정한 것이 모두 왔고 아울러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람마다 모두 알게 모르게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있다.”
부디 모든 생명이 자신의 억만년 기다림을 저버리지 않고, 창세주의 자비로운 부름을 저버리지 않으며, 사당(邪黨) 조직에서 탈퇴하고 대법을 인정하여 구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