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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표면이라는 이 층 껍질을 벗어버림에 대해

보춘(報春)

【정견망】

《경고하는 말》이란 경문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외웠지만, 수련의 시기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법에 대한 이해 정도도 달랐다.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에 대해 현재 나의 이해는 이러하다. 사람의 인식, 사람의 관념, 혹은 수천 년 동안 뼛속까지 형성된 사람의 이치라는 것이다. 아래에 내가 병업(病業)이나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 사이의 각종 경험 속에서 어떻게 사람의 관념을 바꾸었는지 그 과정을 써서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1. 병업에 대한 관념을 전변

1996년, 나는 막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어느 날 머리를 감다가 샴푸가 눈에 들어가 따가움을 느꼈다. 당시 나는 눈이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사람의 관념이 나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눈이 붉어졌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붉을 뿐만 아니라 몹시 괴로웠다. 결국 두려운 마음이 생겨 매일 거울을 보며 눈이 좀 나아졌는지 확인했다. 보면 볼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20여 일이 지났을 때는 각막에 줄기 같은 것이 생겼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이것이 자신의 집착심, 즉 두려운 마음이 너무 무거워 구해서 온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이에 두려움을 내려놓고 눈 상태를 보지도 생각지도 않았더니, 일주일 후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대법 수련은 초상(超常)적인 것이므로 수련 중에 나타나는 일을 대할 때는 초상적인 이치로 대해야지 사람의 관념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 후의 수련 중에서 나타난 모든 소업(消業) 과정이 아무리 괴로워도 나는 정념으로 대했다. 즉 그것을 속인의 병으로 대하지 않았기에 매번 시간이 단축되며 순조롭게 지나갔다. 수련 중에 나타나는 병업 상태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수련자의 일념(一念)이 사람 생각(人念)인가 신의 생각(神念)인가에 달려 있다.

대법을 통해 우리는 수련인에게는 병이 없으며, 몸이 괴로운 것은 소업 중임을 알고 있다. 견뎌내기만 하면 업이 소멸되고 심성도 제고된다. 공도 자라나니 이는 커다란 좋은 일이다. 심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며,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信師信法)에 에누리가 생긴 것이다.

2. 사람 사이의 모순을 대하는 관념을 전변

속인은 모순이 생기면 네가 틀리고 내가 맞다며 얼굴을 붉히며 다투지만, 수련인은 개인의 명리나 득실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 번은 큰 여동생과 작은 여동생이 우리 집에 잠시 머물 때였다. 두 사람이 쇼핑을 하고 돌아왔는데, 작은 여동생이 고추 몇 개를 들고 와서는 고추를 사지 못해 어느 건물 앞 화단에 심어진 것을 따왔다고 했다.

큰 여동생이 주인이 따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그러자 작은 여동생은 큰 여동생에게 “참견하지 마!”라며 대들었다.

내가 중재하며 “건물 앞에 자라는 것은 주인이 심은 것이니 함부로 따면 안 된다”라고 말하자, 작은 여동생은 큰 여동생이 고자질했다며 계속 몰아붙였다. 내가 공정하게 둘째 말이 맞다고 하자, 작은 여동생은 화가 폭발했는지 내 신발 한 짝을 들고 바닥을 세게 내리치며 “어디 말해봐! 말해보라고!” 하며 악을 썼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빨래판을 내리쳐 두 동강을 내버렸다.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했으나 나에게 직접 따지기는 어려우니 물건에 화풀이를 한 것이다. 나는 더는 다투지 않았다. 그녀는 화가 풀리자 가방을 챙겨 문을 쾅 닫고 집으로 가버렸다.

이 일은 속인이라면 체면 때문에 싸웠겠지만, 대법 수련자는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 그날 밤 가부좌를 하는데 갑자기 둔부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잠시 후 찬 기운이 발바닥으로 쉭 하고 빠져나갔다. 나는 작은 여동생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의 업을 대신 소멸해준 것임을 알았다. 진심으로 여동생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업력이 누구에게로 떨어지면 바로 누가 괴롭기”(《전법륜》) 때문이다. 사실 수련 중에 만나는 친척, 친구, 이웃, 동료, 행인 등 모든 사람은 모순이 생길 때마다 우리의 수련 제고를 위해 길을 닦아주는 인연 있는 사람(有緣人)이며, 소중히 여기고 구도해야 할 대상이다.

3. 돌발적인 사건에 대한 관념을 전변

정법 수련 시기에 대법제자는 예상치 못한 돌발 사건을 겪을 수 있다.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이 구세력에게 덜미를 잡혀 속인의 형식으로 고발당하고, 공검법사(公檢法司, 공안·검찰·법원·사법국) 인원들의 불법적인 절차에 직면하기도 한다. 물론 헌법 제36조에 따라 시민은 종교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국가가 발표한 사교(邪敎) 명단에도 파룬궁은 없다. 또한 출판 금지령도 폐지되었기에 파룬따파 수련은 중국 내에서 합법적이다.

하지만 99년 7.20부터 지금까지 사당의 박해는 멈춘 적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에게는 적이 없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한때 사부님의 친척이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박해받는 중에 대법제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이들은 공안 계통 사람들이다. 사람의 관념으로는 그들을 적대시하고 원망할 수 있겠지만, 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생명들이야말로 진정한 피해자이며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다. “대법(大法)에 대해 악행을 저지른 자는 무생지문(無生之門)에 떨어지고”(《정진요지 2》 〈법정인간 예언〉)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도 원래는 자신의 천국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커다란 용기를 내어 이 미혹의 세계에 왔다. 단지 중공의 거짓말에 독해되고 이익에 눈이 멀어 파룬궁 진상을 모를 뿐이다. 만약 우리가 박해를 덜 받으려고 이 불쌍한 생명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도될 기회를 잃고 그들 세계의 무량한 중생도 도태될 것이다. 이는 사부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대법제자의 진정한 사명은 자신을 잘 닦는 것뿐만 아니라, 미혹 속의 세인을 구도하는 것이다. 이는 대궁(大穹) 천체의 무량한 중생의 미래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공검법 사법 인원을 볼 때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는 대선(大善)의 마음을 가져야지, ‘저 사람이 나를 미행하나? 감시하나?’ 하는 사람의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대신 ‘진상을 들으러 왔구나, 구도받으러 왔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친구와 일상 대화를 나누듯 정성을 다할 때 그들도 진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처음 불법 노동교양을 받을 때, 역사적으로 나와 인연이 있었던 젊은 여경을 만났다. 그녀는 거짓말에 속아 수련생들에게 엄격했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사부님께서 역사적으로 그녀와 내가 한 가족이었음을 점화해 주셨다. 나는 편지를 써서 내가 수련을 통해 어떻게 건강을 되찾았는지, 명리를 가볍게 여기고 주변을 선하게 대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많은 대법제자와 경찰이 역사적으로 친척이었음을 말해주고, 수련생을 선하게 대해야 미래가 좋다고 권했다. 편지를 본 후 그녀의 태도는 정말 바뀌었고 말투도 험악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그녀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수련 중에는 늘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때 자신의 첫 일념(一念)이 어떤 관점에 서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람의 관념을 쓰느냐 신의 일념(一念)을 쓰느냐는 사람의 껍질을 벗느냐 못 벗느냐의 관건적인 선택이다.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이치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신으로 성취되고자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신념(神念)으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진정으로 신의 경지로 매진할 수 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