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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연심 (39): 천상의 하루는 하계의 1년

요연(了緣)

【정견망】

잠시 후 구름을 내려 화과산(花果山)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손 어르신이 돌아왔다!” 하고 한마디 외쳤다.

그러자 네 명의 건장한 장수와 각 동굴의 요왕(妖王)들이 훈련을 멈추고 모두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영접했다. 기쁜 마음으로 동천(洞天) 깊은 곳의 높은 보좌로 모셨고, 여러 원숭이가 분주하게 술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며 오공은 그제야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줄 왕의 기분을 조금 되찾았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대왕께서 상계(上界)에 가신 지 십여 년 만에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영광스럽게 돌아오셨다며 축하하는 것이 아닌가.

오공이 듣기에 이상했다. 떠난 지 보름 남짓밖에 안 되었는데 어찌 십여 년이 지났단 말인가? 물어보고서야 하늘의 하루가 지상의 일 년임을 알게 되었다. 즉 인간 세상의 십여 년 수명이 하늘에서는 고작 열흘 남짓 지난 셈이다.

세상 사람들이 왜 신선이 되려 하는지 알만하다. 계산을 한번 해보자. 인간 세상 십 년, 즉 3,650일의 세월이 흘러야 하늘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열흘 남짓과 맞먹는다. 범인(凡人)이 신선이 되면 생명이 연장되는 배수가 365배인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는 단순히 생명이 연장되는 배수일 뿐만 아니라, 수련이 어려워지는 배수이기도 하다! 수련의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생생세세(生生世世)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겪고도 명사(名師)의 점화와 고층차의 법(法)을 전수받지 못해 대도(大道)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가? 신선이 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오공이 하늘과 땅의 기운을 타고나 시작점부터 높았고, 좋은 사부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며, 배후에 숨은 대능력자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어찌 20년 만에 법을 찾아 도를 얻고 상선(上仙)이 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출발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다른 이들이 윤회의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대도의 문턱조차 만져보지 못할 때, 오공은 태어날 때부터 대도의 문턱에 누워 있었으며 조금만 노력해도 높은 배분의 신선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비교해보면 확실히 우위에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니 오공도 사부님의 은혜가 산처럼 무겁다는 것을 가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사명(使命) 때문임을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좋은 일이 모두 그에게만 생겼겠는가. 하늘의 선물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다. 능력이 클수록 책임도 크다는 이치를 몰랐기에, 하늘이 내려준 독보적인 우월감은 오히려 사람마음(人心)의 집착을 팽창시켰다. 하늘이 부여한 능력은 승부를 겨루고 강탈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사명을 이행하기 위한 자본이다. 인간 세상에서 내막도 모른 채 자본을 함부로 낭비하고 사욕을 채우는 데 잘못 쓰면 천벌을 받는다.

오공은 싸움에 져서 여래불조에 의해 오지산(五指山) 아래 500년 동안 갇혀 있다가, 관음보살의 점화를 받고서야 본성을 되찾고 정도(正道)로 돌아왔다. 마성(魔性)을 제거하는 데 500년이라는 세월을 소모한 것이다! 이 우회하는 시간의 폭이 너무 커서 일반인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접고 수련의 엄숙함을 알아야 하며,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안분지족하며 착실히 수련하며 정진해야 한다.

수련인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수련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쉽다. 연공(煉功)해서 입정(入定)하면 세포의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육신도 점차 고에너지 물질로 변화한다. 연마해낸 공(功), 즉 에너지가 세포 대사의 일부를 점차 대체하여 육신에 에너지가 충만하고 정기신(精氣神)이 가득하게 된다. 정기신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세상 물질의 소모가 점점 줄어들고, 신체가 요구하는 것이 적어지니 세포 대사가 그만큼 빈번하게 육신을 공양할 필요가 없어진다. 만약 하루에 한 번 대사해야 했던 세포 공양이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혹은 그 이상으로 연장될 수 있다. 신체가 장기간 공(功)의 상태에 머물며 우주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얻어 육신 세포의 신진대사를 대체한다면, 이는 곧 생명의 소모를 줄이는 것과 같다. 마침내 세포가 대사할 필요 없이 완전히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되어 우주 법칙에 동화되고 법칙의 일부가 되면, 우주 에너지와 직접 순환하며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에너지체가 된다. 육신이 신의 몸(神體)으로 닦여야 비로소 하늘과 수명을 나란히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삼계(三界)를 벗어나 오행(五行) 중에 있지 않다는 것은 육신 세포가 에너지체로 전환되어 점차 삼계를 탈피하는 과정이다. 또한 저층 법칙의 차원에서 고층 법칙의 차원으로 동화되고 융합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경지까지 동화되느냐는 심성(心性)에 의해 결정된다. 심성이 어느 층의 법(法)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신체(身體)도 그 층의 에너지와 연결된다. 나는 고차원과 연결되는 통로는 사상(思想)에 의해 이루어짐을 깨달았다. 심신(心神)이 연결하는 주파수와 가까워질수록, 사상이 우주 특성 진선인과의 융합도가 더 높아지며 지혜가 따라오고 오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正) 부(負)의 에너지는 모두 사상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잡념(雜念)이 생길 때 주의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부(正負) 에너지가 교전하는 것이며 승패는 심성에 의해 결정된다. 언행일치와 표리가 일치하는 것은 심성을 지키는 관건이다. 선(善)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부면적인 사유가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명백히 아는 것이다. 번잡한 사유와 생각 속에서 정념(正念)을 견지하는 것이 바로 진아(眞我)를 단련해내는 과정이다. 언제든 법에 부합하는 생각은 진아(真我)이며, 부합하지 않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법이 명확히 밝혀졌으니 실천 속에서 깨닫고 행하는 것이 동시에 표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 적합도의 비약이다. 환경은 사유의 거울인 경우가 많기에 ‘가짜를 빌려 진짜를 닦는다(借假修眞)’는 말이 있다. 때로 현실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으나 사유의 전환과 승화로 인해 문제가 술술 풀리는 신적(神跡)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정진 중에 있는 진수(真修)제자들이 많이 체득하는 바이며, 그 속의 현묘함은 마음으로 알 뿐 말로 다 전하기 어렵다.

이때 신체의 표면은 가장 거친 분자 세포로 구성된 육체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밖으로 더 높은 차원의 원자 세포가 대체한 신체(神體)가 된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욕망이 주도하는 물질세계다. 분자보다 한 층 높은 곳은 모두 에너지로 구성된 세계이며,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원자 층의 세계다. 수련을 통해 신체의 각 세포를 에너지 알갱이로 구성된 원자 이상의 더 세밀하고 고능(高能)한 우주 법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실 우주 법칙은 고급 생명의 에너지이자 진선인 우주 특성에서 발생하는 순수한 에너지 파동이다. 이것이 수련인이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돌아가고자 하는 가장 진실한 경지다. 생명의 가장 본원적인 에너지는 자비(慈悲)이며, 자비가 만물을 창조하고 경지를 열며 중생을 구제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명의 본원이 변이되어 떨어졌으나, 끊임없이 연마해 낸 자비를 통해 다시 닦아 올라간다. 수련을 통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시작점이 곧 종착점이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사실 慈悲(츠뻬이)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각지 설법 9》〈2009년 워싱턴 DC 국제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생명의 본원은 바로 자비이며, 서로 다른 경지의 자비에 도달하는 것은 곧 서로 다른 경지의 법칙을 장악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정념으로 우주 에너지를 움직여 정법(正法)할 수 있다. 모든 사악한 요소는 우리가 돌아가는 길의 디딤돌이 되며, 자비롭고 위엄 있는 일면을 단련하여 장차 우주 중생을 더 잘 수호하기 위함이다. 자비와 위엄이 공존하는 것은 미래 신(神)의 기본 소양이다.

당승의 선(善)이 지나치게 부드러웠기에 오공의 화안금정(火眼金精)이 배합되어 모든 가짜 형상을 꿰뚫어 보게 한 것이다. 가짜와 진짜 형상 앞에서 식별하는 이지를 내느냐 아니면 판단의 실수를 저질러 온갖 사람마음의 집착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81난의 절묘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련 중의 처참한 교훈을 즐거움 속에서 반추하게 하니, 저자 또한 몇 생애 동안 연마한 재능을 쏟아부어 이 같은 가작을 남겼다. 수련이라는 두 글자를 생동감 있고 치밀하게 묘사하여 인심을 직격하고, 후세 사람들이 웃음 속에서 서로 다른 생명 경지의 묘미를 이해하게 했다. 이토록 흥미로운 영혼은 수천 년 동안 몇 나오지 않았다.

서유기를 소중히 여기며 읽어보자! 담소를 나누는 중에 생명의 경지가 높아지고, 구차한 세속의 일들 속에서 마음을 닦아 큰 지혜를 짜내는 이가 진정한 인생의 승자다.

또한 하늘의 하루가 지상의 천 년이라는 설도 있는데, 이 비율의 폭은 아무리 커도 지나치지 않다. 도달한 경지의 에너지가 높을수록 시간 비율의 격차도 커진다. 우리가 육신을 신체(神體)로 닦아 원만할 때 가지고 지구를 떠나 삼계를 벗어난 후 신우주에 완전히 융합되면 시간 비율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그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었고 하등 물질세계의 구우주에 있지 않으며,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결함이 모두 바로잡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원히 불파불멸(不破不滅)하는 생명 상태일 것이며, 그래서 공성원만(功成圓滿)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 이치를 깨달아야만 불은호탕(佛恩浩蕩)의 깊은 뜻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은 우주 대법이며, 주신 것은 전 우주의 에너지 기제와 끝없는 지혜, 끝없는 수련의 길이다. 이로부터 수련인의 큰 금기사항이 바로 자만(自滿)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자신에 대해 만족하면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다. 정진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현상이 바로 마변(魔變)이며, 안으로 찾음은 모든 마변을 피하게 해준다. 이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를 능숙하게 다룬다면 당신은 수련의 승자가 될 것이다.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잘 파악한다면 상생상극의 이치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대법은 무소불능(無所不能)하다. 불패(不敗)의 자리에 서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진하며 실수하고 시시각각 안으로 찾아야 한다. 보증하고 매 걸음마다 법리에 발을 디디고 모든 험난과 마난(魔難)을 청운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삼을 수 있는데, 이때라야 비로소 진정으로 수련이라는 두 글자를 이해한 것이다.

보라, 수련이 얼마나 간단한가.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배치해 두셨고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셨으니, 해내지 못한다면 자신 말고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