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志眞)
【정견망】
나는 남편과 결혼한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 스스로 반성해 보니 장기간 갈등을 회피하려는 심태가 있었다. 예를 들어 시댁에 머물 때 시아버님, 시어머님 혹은 친척들의 말투나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친정으로 가버렸고, 친정에서 이틀 정도 지내다 아버지가 나에게 좋지 않게 대하면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속으로는 늘 안일함을 추구하고 편한 것만 찾으려 했다. 아니면 출근하는 날만 기다리는 등 요컨대 가족 간의 갈등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 내 동료 관계도 매우 복잡하여 때때로 각종 갈등과 얽힘이 나타나 마음을 지치게 하고 자주 번뇌하게 했으며, 신체에도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느껴지는 등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났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왜 이런 사람이 자기 집에서 안심하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라. 환경이 좋지 못하므로 더욱 수련할 수 있다.” (《정진요지》 〈맹격일장〉)이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사부님께서 바로 나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동안 갈등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회피해 왔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환경이 좋지 못하므로 더욱 수련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나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 마음을 정해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시댁에 가는 마음이 가벼워지다
예전에는 시댁에 갈 때 가는 길의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지 몰라 마음이 긴장되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부님 설법을 통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부님의 친척이며 모두 대법을 얻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필자는 생각했다. 나도 시댁 식구들과 분명 천신만고를 겪으며 오늘의 성스러운 인연을 맺었을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고 밝아졌다.
시아버님이 “모택동 초상은 필요 없다!”고 해
평소 나는 시아버님과 대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말씀에 투쟁심이 섞여 있고 남과 따지기를 좋아하셔서 많은 경우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기분 좋지 않게 헤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 설에 시아버님 혼자 만두소를 준비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만두 빚는 것을 도와드렸다. 시아버님은 내가 힘들까 봐 쉬라고 하셨다.
나는 “힘들지 않아요. 아버님 혼자 온 가족 식사를 준비하시는 게 더 힘드시죠”라고 말씀드렸다. 만두를 빚다가 주방 타일의 유색 무늬에 ‘모택동’의 초상이 인쇄된 것을 보았다. 필자는 먼저 시아버님께 “모택동은 이미 죽었고 생전에 신을 믿지 않고 무신론을 선전했는데, 그의 초상을 붙여두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붙이지 않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씀드렸다.
평소 같으면 아버님이 반박하셨겠지만 이번에 아버님은 시원스럽게 말씀하셨다.
“맞다! 모택동 초상은 필요 없다!” 모택동 상이 타일에 인쇄되어 있었기에 필자는 색연필로 그 초상을 지워버리고 타일 위에 ‘멸(滅)’ 자를 하나 썼다.
대보름 전에는 원소(元宵 새알)를 만드는 가게에 가서 판매원에게 어떤 맛의 원소가 어르신들께 인기 있는지 물어본 뒤, 다양한 맛의 원소를 골라 시댁에 가져가려 준비했다. 어머니 동수도 시부모님께 효도하라며 원소를 넉넉히 챙겨주며 지지해 주셨다.
나는 1980년대생이다. 수련 전에는 당문화(黨文化)가 심하고 매우 이기적이라 갈등이 생기면 다투거나 회피하곤 했다. 그래서 마음 터놓을 친구가 많지 않았고 직장에서도 대인관계 처리에 미숙해 마음이 매우 괴롭고 힘들었다.
사람에게 왜 고통과 난관, 다툼이 있는지 알려준 것은 대법이었고,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임을 알려준 것도 대법이었다. 또한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이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이다.”(《정진요지》 〈대법 산동 보도소에〉)라고 알려준 것도 대법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정법 수련 시간 동안 사부님 말씀에 따라 마음을 다해 법공부를 하며,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개인 수련 층차의 한계로 법에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4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