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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수련 중에서 부동한 층차의 표준을 알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학생은 학년마다 서로 다른 교과서가 있고, 배우는 지식이 다르며, 그에 따른 표준도 다른데 이는 매우 명확하다.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표준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개괄적으로 말씀해 주셨을 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엇인가? 각 층차마다 서로 다른 표준이 있으며, 이는 우리 스스로 착실한 수련(實修)을 거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心性(씬씽)은 수련하는 것으로서 무슨 표준이라는 것이 없이,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깨우치기에 달렸다. 생각해 보라. 굳이 표준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당신이 어떤 일에 봉착했을 때 만약 각자(覺者)라면 그는 어떻게 하겠는가?”(《파룬궁》)

내가 이해하기로, 각자(覺者)가 어떻게 할지는 평범한 속인으로서는 수련하지 않는 한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성 표준은 스스로 닦고 스스로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표준은 표면적으로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착실한 수련 중에서 체득하고 증오(證悟)해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두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알고 있지만, 파룬따파가 구체적으로 어디가 좋은지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법을 얻은 초기 신체의 변화, 즉 대법을 감성적으로 인식하는 정도만 말할 뿐, 진정으로 대법이 어떻게 좋은지는 알지 못한다.

나 자신의 법공부 상태 변화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초기 법공부 때 나는 법리에 대한 인식이 매우 얕았고, 그저 대량으로 법을 읽는 데 머물러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착실하게 수련하는 자는 구하고자 집착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을 것이며, 일체 공(功), 일체 법은 모두 책 속에 있는 것이라, 대법(大法)을 통독(通讀)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 배우는 자는 스스로 변하니 반복적으로 통독함이 이미 도(道) 중에 있는 것이다. 사부는 법신(法身)이 있어 조용히 보호해 주니, 꾸준히 견지하면 훗날 반드시 정과(正果)를 이룰 것이다.”(《정진요지》 〈사부를 모시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반복적으로 통독”하라는 요구에 따라 한동안 공부한 후, 한 강을 읽어도 법리를 보는 일이 드물거나 때로는 아무런 법리도 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마치 표면의 글자만 읽는 것 같았고, 표면에서만 거듭 통독할 뿐 법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여기에 있다. 당신이 표면의 글자를 찾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뒤집어 넘겨도 찾아내지 못한다.”(《각지 설법 3》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 표면의 글자 속에 더 깊은 법의 내함(內涵)이 없다면, 나는 단지 표면적으로만 반복적으로 통독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법공부를 해야 법을 얻을 수 있을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처음 들으면 허황한 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기공수련에 뜻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로지 세심하게 체험하고 깨닫는다면, 오묘함이 모두 그 안에 있다.”(《파룬궁》)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대법을 세심하게 체득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니 나는 단지 표면적으로 반복해서 통독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법을 읽는 수량 즉 ‘하루에 몇 강을 읽어야 법공부라 할 수 있는가’라는 표준에만 공력을 들여서는 안 된다. 법공부 과정에서 나는 세심하게 체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전법륜》)라는 구절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책임’을 세심하게 체득해 보았다. ‘나는 책임을 졌는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것인가? 나는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런 다음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이 책임감 있게 잘하도록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책임지는 정(正)의 에너지를 느꼈고, 자신이 책임지는 가운데 제고됨을 느꼈다. 또 예를 들어 “사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면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에 그치지 않으며”(《전법륜》)라는 구절에서, 내가 어떻게 사상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을지 세심하게 체득해 보았다. 나는 공책에 가족을 대할 때, 동수를 대할 때, 일할 때 등등 이전에 가졌던 사람의 좋지 않은 관념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하나하나 세세히 적었다. 이렇게 조금씩 적어 내려가고 조금씩 실천에 옮기면서, 사상을 바꾸는 일의 중요성과 변화된 후 주변 환경의 변화를 다시금 체득했다. 대법을 세심하게 체득하는 가운데 착실히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가운데 법의 내함을 체득한 것이다.

끊임없이 법을 세심하게 체득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서로 다른 법리를 보게 되었고, 사부님께서는 다시 나를 일깨워 주셨다. “더욱 미묘한 것은 당신이 수련하여 올라가고 끊임없이 깊이 배우고 깊이 수련하며 깊이 봐야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고, 비로소 보아 낼 수 있으며, 비로소 알 수 있다.”(《시드니 법회 설법》) 나는 내가 더욱 깊이 있게 배우고, 깊이 있게 수련하며, 깊이 있게 보아야만 더 깊고 높은 법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이해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법리를 보았는지는 지면 관계상 상세히 적을 수 없으며 단지 개괄적으로만 적는다.

최근 사부님께서는 다시 나를 일깨워 주셨다. “오로지 당신들이 대법을 깊이 알고, 정성 들여 체득하고 깨달으며, 언제나 心性(씬씽)을 지키면서 근면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하고, 고생 속의 고생을 겪을 수 있고 참기 어려운 일도 참을 수 있다면, 당신이 꼭 수련에 성공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파룬궁》) 나는 법공부 중에 더욱 정성 들여 대법을 체득하고 대법을 깊이 연구해야 하며, 착실한 수련 중에서 더욱 잘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내게 제출하신 더 높은 요구이다.

사부님께서는 “부동(不同)한 층차에 부동한 법이 있다.”(《전법륜》)고 말씀하시며 선종(禪宗)에 대해 언급하셨다. “선종은 줄곧 이런 일종의 편견과 극단적으로 그릇된 인식을 유지해 왔다. 당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연마(煉)를 지도하고, 어떻게 연마하며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전법륜》) 내가 이해하기로 선종의 극단적인 잘못은 주로 석가모니가 말한 ‘법무정법(法無定法)’이라는 한마디만 붙들고 깨달으려 한 데 있다. 법은 서로 다른 층차에서 서로 다른 표현이 있는데, 어찌 단 하나의 이치로 모든 층차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선종의 잘못을 말씀하신 것은 그 오류가 수련계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는 반드시 그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주 대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지만, 구체적인 매 한 층차의 법리가 무엇인지는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우리는 대법에서 착실히 수련하는 중에서만 서로 다른 층차의 법리를 볼 수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심성 표준을 높이고 끊임없이 더 높은 층차로 돌파해 서로 다른 층차의 대법 내함을 실증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부님을 더 잘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이상은 착실한 수련 중의 체득을 써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