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신의 안배를 벗어나면 바로 위험한 것으로, 욕망은 끝이 없는 동굴과 같다! 오히려 사람을 사람이 아닌 상태로 끌어간다.” (《각지 설법 14》〈2016년 뉴욕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바로는 욕망이야말로 수련생이 정진(精進)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다. “욕망이 없어야 강해질 수 있다(無欲則剛)”라는 말이 있듯이, 집착하는 욕망이 있을 때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만족시키려 하고, 갖고자 하며, 점유하려 한다. 이것을 이른바 동력으로 삼다 보니 끊임없이 욕망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신우주는 위타(爲他)하고 구우주는 위사(爲私)한데, 욕망 역시 변이된 물질이며 사(私)를 기초로 하여 생긴다. 대법제자가 대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순정(純淨)하게 하려면 끊임없이 사(私)를 제거해야 한다. 수련은 안으로 찾는 것이며, 부족함과 누락된 점을 법에 대조하여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모두 원용(圓容)하고 보충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사(私)를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법 속에서 씻겨져 갈수록 순정해질 것이며, 사(私)의 요소는 점점 줄어들고 욕망과 집착도 점점 옅어질 것이다.
수련한 지 30여 년이 되었지만 늘 제고가 매우 느리다고 느꼈으며, 마치 어떤 무형의 물질에 끌려다니는 듯하여 몸과 마음을 내 뜻대로 하기 어려웠다. 수련 상태 또한 불안정하여 마음은 자주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피로를 느끼고 정서가 소극적이었고 삶에 희망이 없이 침체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모순이 격화되곤 했고 집안 분위기도 매우 압박감이 느껴졌다. 대개 이럴 때면 사부님의 법이 나를 일깨워 주시어 뇌리에 사부님과 법을 생각나게 하셨고, 사부님의 가지(加持) 하에 자신의 심득교류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법리(法理)가 끊임없이 나타났고 내면의 집착은 법에 의해 하나하나 깨졌으며, 대법의 보살핌 속에서 제고되어 올라오니 모순의 가상(假相)도 따라서 사라졌다. 그러나 새로운 욕망과 집착이 다시 분출될 때는 이전의 상태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층차를 지나면서 온몸이 다시 바닥으로 끌려 들어갔던 것 같다. 이처럼 비슷한 판본의 줄거리를 되풀이하다 보니 마음의 용량은 한계에 다다랐고, 감당 능력도 붕괴 직전의 경지에 이르러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 과정을 지나올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만 남은 듯하여 곧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다시 한번 나의 본성(本性)의 일면을 깨워 주셨다. 결정적인 순간에 천국 세계 중생들의 간절한 눈빛이 뇌리에 떠올랐고, 본성의 일면이 회복되면서 정념(正念)이 생겨 어떻게 법에 대조하여 자신을 바로잡아야 할지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좋지 않은 물질을 많이 청리해 주셨고 우리의 신체는 정화되었다. 신기한 것은 딸의 입맛도 변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담백한 음식을 지금은 특히 좋아하며, 고기를 좋아하지 않게 되어 냄새만 맡아도 메스꺼워한다. 학습 효율도 높아졌고 머리도 매우 맑아졌으며 기억력도 강해졌다. 나의 상태도 많이 변하여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이 줄어들었다. 전에는 입이 쉬지 않았고 머릿속으로 늘 이것저것 살 궁리만 했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앞에 놓여 있어도 예전처럼 끝도 없이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먹어도 충분하다. 매일 먹는 음식 양은 매우 적지만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며 정신도 매우 좋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하시어 제자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더러움을 제거하며 자신 속의 변이되고 바르지 못한 물질을 바로잡아 주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해주신 것이니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을지 모른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바로 제자 곁에 계시며 모든 것은 제자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욕망이 옅어지니 정(情)도 옅어졌고 훨씬 이성적으로 변했다. 정을 제거하니 자비심이 생겨났고 마음이 초조하지 않으며 일을 당해도 평온해졌다. 인간세상의 일을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보게 되었는데,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소품과 같고 대법제자는 단지 인류라는 이 환경을 빌려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돕고 위덕(威德)을 성취하는 것 같았다. 법은 마음속의 주선(主線)이며 다른 모든 것은 이 주선을 중심으로 존재하며 대법제자의 제고를 위해 존재한다. 욕망이 없는 달콤함을 맛보니 몸은 가뿐하고 사상은 매우 깨끗하고 단순해져서, 정말로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정진요지 2》〈심자명〉)라는 상태를 체험했다.
이전에 욕망에 이끌렸던 모습을 돌아보면 마치 하나의 ‘노예’와 같았다. 어떤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에 적합한 ‘노예’가 생겨났다. 강력한 욕망의 억제 하에 진아(眞我)가 주재하지 못했고, ‘욕망’은 마치 ‘노예’의 주인과 같아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욕망’을 ‘노예’는 계속해서 만족시켜야만 했다. 탐욕스러워 끝이 없으니 욕망은 결코 만족할 때가 없다. 욕망 자체가 사(私)를 기초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私)는 구우주의 특성을 대표하며 구우주의 결말은 마지막에 소각되는 것이다. 욕망이 기왕 사(私)에 부합한다면 그럼 구우주의 규율에 부합하는 것이니, 곧 욕망은 사람을 훼멸의 경지로 인도한다.
욕망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청정무위(淸淨無爲)에 도달할 수 있고, 욕망이 없어야 강해질 수 있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