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하(桂霞)
【정견망 2026년 3월 15일】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외국에서는 어린이가 학교에서 백 점을 맞으면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달음박질하면서 외친다. “나는 오늘 백 점 맞았어요, 나는 백 점 맞았어요!” 줄곧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뛰어간다. 이웃들은 문을 열고 외칠 것이다. “야, 톰, 장하구나, 이 녀석.” 저기서는 창문을 열고 말한다. “야, 잭, 잘했구나.” 이 일이 만약 중국에서 일어났다면, 잘못된다. “나는 백 점 맞았어요, 나는 백 점 맞았어요!” 이 어린이가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가는데, 그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집 안에서는 벌써 욕부터 나온다. “뭐 대단할 게 있느냐. 그저 백 점 맞은 거 아니냐? 뭐 호들갑 떨 게 있느냐! 누구는 백 점을 못 맞아본 것처럼!” 이 두 가지 부동(不同)한 관념은 부동한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질투심을 생기게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만약 잘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이 단락의 법에 대해 깊은 체득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관념은 서로 다른 물질을 생성한다. 첫 번째는 질투심이 없는 효과의 표현이니 바로 정념(正念)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해 평온하고 우호적이며, 우수한 사람이나 사물을 보았을 때 진심으로 인정하고 찬미하며 어떠한 좋지 않은 생각도 품지 않는다. 마음이 넓고 밝으며 정말로 기쁘다. 이 기쁨은 사람 중의 정(情)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남을 위해 기뻐해 주는 것이며 자비의 표현이자 법의 나타남이다. 이는 일종의 물질, 즉 백색 물질을 생성한다.
사부님께서는 “왜냐하면 백색물질은 직접 우주의 真(쩐)ㆍ善(싼)ㆍ忍(런) 특성에 동화하기 때문에 그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고 모순 중에서 자신을 제고할 수 있기만 하면 곧 그의 공이 자라는데, 바로 이렇게 통쾌하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남을 위해 기뻐함”을 실천해 질투심을 철저히 해체하고 자비심을 닦아내야 함을 깨달았다. 법의 장엄하고 아름다움이 대법제자의 몸을 통해 나타나게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질투심의 표현이다. 100점을 맞은 아이는 좋은 성적을 얻어 매우 기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집까지 달려갔다.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지만, 이웃이 방 안에서 욕을 하게 만들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만약 잘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로 남이 잘되지 않았을 때 자신이 기뻐한다면 이 질투심은 바로 악(惡)이다. 원래 질투심의 특징은 마음의 평형을 잃는 것이며, 마음의 평형이 깨졌다면 그것은 바로 질투심이 작용하는 것이다. 질투심은 일종의 흑색 물질이다.
사부님께서는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얕보고 남이 자기를 능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며, 남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평형을 잃고 견디지 못하며 불복한다.”(《파룬궁》)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수련 과정 중의 많은 집착심이 질투심으로부터 야기되거나 파생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확고한 일념을 발했다. ‘나는 연공인이며, 불평등한 마음과 질투심은 내가 아니니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두 가지 관념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수련인은 어떤 일을 겪든 수련인의 표준으로 보아야 하며, 관념을 바꾸면 모든 일이 다 좋은 일이 된다. 사상이 단순하고 순수해져서 누구를 보든 좋게 보인다면,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지(加持)해 주실 것이다. 그러면 끝없는 법리가 끊임없이 드러날 것이다.
나는 옷을 수선하고 가공하는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옷 수선을 맡기는 손님들 중에는 종종 자기가 맡긴 일이 간단하고 하기 쉬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여 때로는 농담조로 “이 일이 쉬운지 아닌지는 손님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직접 이 일을 하는 제가 결정합니다”라고 대꾸하곤 했다. 속으로는 ‘그렇게 하기 쉬우면 왜 직접 안 하고 나를 찾아왔는가?’라고 생각했다. 즉,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심리적 평형이 깨졌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했고 질투심과 연관 짓지도 못했다.
이제야 질투심이 오래도록 제거되지 않았던 원인을 알게 되었다. 평소 누군가 일을 함에 있어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겨 마음의 평형을 잃었던 것이 바로 질투심을 강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러한 불평형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때로는 쟁투심 속에 섞여 있고, 때로는 원망하는 마음속에 혼재되어 있으며, 때로는 과시심 뒤에 숨어 있거나 이익심 뒤에 숨어 있기도 하여 우리가 쉽게 간과하기 쉽다. 그것은 막후에서 수련인을 조종하여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내게 한다. 특히 이러한 불평형은 내가 진정한 수련인의 선(善)과 자비로 주변 사람과 사물을 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많은 손님이 내가 총명해서 어떤 일이든 잘 해내며, 심지어 다른 재단사가 하다 포기한 일도 내가 다 고쳐놓는다고 칭찬하곤 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이며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지 속인 중에서 명예를 다투거나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
“두 가지 부동한 관념은 부동한 효과를 낳는다”는 법리를 명확히 알게 된 어느 날, 점포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지 길이가 길어 밑단을 줄여야 했는데 그는 바지를 입고 온 상태였다. 수선을 마친 후 손님이 바지를 입고 그냥 나가려 하기에 나는 무심결에 아직 돈을 안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냈다며 휴대폰을 꺼내 어제 송금했다고 보여주었는데, 휴대폰에는 전날 나에게 이체된 내역이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주 평온하게 그를 보내주었다. 우리 업종 특성상 오늘 바지를 줄이는데 어제 미리 비용을 지불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문제가 생기고 모순이 찾아온 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시험 문제를 내신 것임을 깨달았고, 합격점을 낼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나는 자비의 힘을 점점 더 체득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관념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물질을 생성한다. 그러므로 연공인은 반드시 정념으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대법은 초상(超常)적인 것이므로 반드시 초상적인 이치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사람의 이치로 옳고 그름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