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 대법제자
【정견망】
이 교류 원고를 쓰기 위해 도중에 몇 번이나 물러서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부면(負面)적인 사상을 배제하고 진아(眞我)를 지키며 정념(正念)을 굳건히 한끝에 한 달 만에 드디어 다 썼다. 이 과정은 나의 게으른 마음과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닦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타자가 느리고 원고를 쓰는 것이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했으며, 글 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여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진아가 강할 때 나는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사부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새해 인사이자 교류를 쓰는 것은 또한 내 수련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동수도 나를 격려하며 어떻게 써야 할지 일깨워 주었다.
결국 나는 교란을 배제하고 가아(假我)를 이겨내어, 지난 한 해 동안의 수련 단편들을 기록해 여러분과 함께 신성한 법회를 원용(圓容)하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 교류하며 차이를 찾아내고 정념을 굳건히 하여 함께 제고하고자 한다.
1. 홍법(洪法) 중에서 사람을 구하고 자신을 구하다
전에 우리는 양로원에 가서 여러 가지 공연을 하곤 했다. 처음과 두 번째 갔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그곳에 사람을 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앙가무(秧歌舞) 하나만 공연하곤 했다. 첫 번째 공연을 마친 후에는 소파에 앉아 노인들과 함께 동수들의 공연을 구경했다. 두 번째로 간 양로원은 매우 고급스러웠고 규정도 아주 엄격했다. 밖에서 공연을 구경하지 못하게 했고, 공연하지 않는 사람은 방 안에서 대기하며 나오지 못하게 했다. 나 혼자 남았을 때 공연하는 동수들의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는 일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어 매우 민망함을 느꼈다.
이때 나는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70~80세인 동수도 여러 개의 춤을 추었고, 나보다 열 살 혹은 스무 살 많은 동수들도 올라가 공연하며 모두 그렇게 잘해냈다. 나와 그들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자신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보였고 겁이 났다. 내가 사부님과 어떤 서약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두려워졌고, 그때부터 나는 반드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어떤 공연이든 무조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세 번의 퍼레이드 홍법에 참여했으며, 배경 음악이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퍼레이드 공연을 원만히 마쳤다.
새해 전후로 우리 신세기 필름 지원부서 아주머니들로 구성된 앙가무팀은 세 차례의 지역사회 및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에 초청받았다. 참여하는 과정에서 나도 관념을 돌파했다. 처음에는 앙가무가 홍법에 쓰일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첫 참여부터 관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대열 맨 앞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중영문(中英文) 현수막은 대열 속에서 매우 눈에 띄었고, 우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촬영하고 박수를 보냈으며, 나와 아주머니 동수들은 큰 고무를 받아 더욱 마음을 다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그 후부터 나는 내가 사부님과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면 마땅히 협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는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 앙가무팀에서 연세가 가장 많으신 아주머니는 거의 80세였다. 이 동수가 우리와 함께 춤추며 미소 띤 얼굴로 한 시간 넘게 걷는 것을 보았다. 행사가 끝난 후 모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정신이 충만했으며 미소가 가득해 실제 나이보다 열 살 이상 젊어 보였고 다들 아이처럼 흥분해 있었다. 나는 정말 감동했다. 무엇이 신적(神跡)인가, 이것이 바로 신적이 아닌가? 서양인 관객들은 우리를 쫓아와 이것이 어떤 문화인지, 어쩌면 이렇게 보기 좋으냐고 물었다. 어떤 이는 일부러 대열 앞으로 달려가 우리의 현수막을 찍기도 했다. 중생이 구도받기만을 마음 써온 우리에게 이는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 세 번의 퍼레이드 홍법 활동에 참여한 후 나는 내 몸이 점점 가뿐해지고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며 몇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았다. 신기한 일도 있었다. 이 세 번의 퍼레이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준비한 앙가무 곡을 틀어주지 않았다. 첫 번째 퍼레이드 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구하며 음악이 없어도 잘 해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앞서가는 요고대(腰鼓隊)의 북소리에 맞춰 앙가무를 추었다. 모두의 마음이 가지런하고 정념이 바르니 공연이 매우 정돈되어 보였고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 퍼레이드에 참여했을 때는 우리 뒤 대열에서 확성기로 서양 음악을 크게 틀었지만,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서양의 ‘징글벨’ 음악에 맞춰 앙가무를 추었다. 이것은 대법이 우리에게 준 지혜였다. 우리는 이 지역 중생들이 진상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온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더 많아져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여동생 동수에 대한 정(情)을 내려놓다
여동생 동수도 나와 함께 홍법 활동에 참여했다. 나는 늘 그녀를 데리고 홍법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러고 싶어 할수록 그녀는 더 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 해서 갈 수 없다는 등 불평 섞인 말을 했다. 나는 늘 그녀가 뒤처질까 봐 두려웠는데, 내가 두려워할수록 그녀는 내 앞에서 정진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법공부를 할 때 졸리면 한숨 자고 나서 공부하겠다고 하거나, 일이 많아 바쁘면 하루쯤 연공을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를 보면 너무나 조급해졌고, 조급한 마음에 꾸짖는 말투로 말하면 그녀는 듣기 싫어하며 나와 싸웠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 둘이 늘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나는 자신을 찾았다. 여동생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또 말씀하셨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
사부님의 법은 나를 단번에 깨닫게 했다. 상대방을 돕고 싶다면 내가 먼저 정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녀를 간섭하고 나무라며 조급해하는 것은 모두 그녀에 대한 정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 정을 내려놓으려면 우선 내 관념을 바꾸어 그녀를 내 여동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간섭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우선 참으며 더는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녀에게 한마디 하고 싶을 때마다 꾹 참고 말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렸다. 내가 자신을 바꾸기 시작하고 여동생에 대한 정을 내려놓자 그녀도 변했다.
그날 나는 그녀가 무용 연습을 지도하는 동수에게 티베트 춤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용을 가르치던 동수도 매우 기뻐했고 나 역시 정말 즐거웠다. 내가 정을 내려놓으니 여동생도 더 잘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해내는 것이 수련”임을 체득했다. 상대방을 거울로 삼아 반대로 나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지 비추어 보고, 찾아내면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내 몸을 묶어 천국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밧줄을 하나 푸는 것과 같다. 나는 사부님께서 주시는 매번의 시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잘 닦을 기회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서로 구도하려면 사부님 말씀대로 선의(善意)의 말투로 말해야 상대방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진정한 상호 구도와 전체적인 제고 및 승화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다.
3. 병업(病業) 가상에 대한 인식
내가 아는 두 명의 노수련생은 정념이 매우 강하고 사부님 말씀을 아주 잘 듣는다. 매일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자신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한 동수는 심성 면에서 매우 잘 지키고 있는데, 그녀는 사부님께서 두 번째 생명을 주셨으니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 말씀을 들어 자신을 잘 닦아 사람을 많이 구하겠다고 말한다. 또 다른 80대 아주머니 동수는 몸이 불편할 때마다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긴다. 그녀는 내가 또 공(功)이 자라려 한다며 사부님께서 나에게 무게를 더해주셨다고 말한다. 이 두 노수련생의 말과 행보는 내가 사부님과 법에 대해 더욱 확고한 정념을 갖게 해주었다.
나는 두 번 정도 심장이 불편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심장에 무언가 찔린 듯이 몹시 아팠고, 다른 한 번은 가슴에 기가 막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번 모두 밤에 자다가 통증 때문에 깼다. 나는 즉시 <논어(論語)>를 외웠는데 윗구절을 외우면 아랫구절이 생각나지 않아 바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다. 한참을 염해도 여전히 안 되었고 무엇을 외워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야 사부님의 법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각지 설법 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가 생각났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았다. 두 번 모두 남편에 대해 원한심을 품었던 것을 찾아냈다. 나는 이 마음을 원치 않으며 남편과의 인연을 선해(善解)하고 그를 포용하고 이해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관을 넘길 수 있었다. 이 두 번의 경험은 원한심을 절대로,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체득하게 해주었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자신을 잘 닦아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5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