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정아는 혜혜가 두 손으로 위장을 움켜쥐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
“아가씨, 혹시 지병이 도지신 것입니까? 제가 가서 따뜻한 탕을 좀 끓여오겠습니다.”
양혜혜는 일곱 살 때 큰 병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깨어난 뒤로 위통이 생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여러 의원에게 보여도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혜혜가 천천히 눈을 뜨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 반 그릇에 하룻밤 생사를 건 싸움을 바꾸다니, 장우인, 계산 참 잘하는구려.”
말을 마친 혜혜는 굶주림에 출혈, 거기다 화가 나서 지병까지 도지는 바람에 다시 혼수 상태에 빠졌다.
한편 장우인은 이리저리 뒤지며 ‘선물’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장우인은 궤짝 아래에서 옷 한 벌을 찾아냈다. 이 옷은 장우인 어머니의 것으로, 그가 처음 장가만(張家灣)에 올 때 어머니가 아들이 자신을 그리워할까 봐 평소 입던 옷을 한 벌 챙겨주며 이렇게 말했었다.
“옷을 보는 것이 어미를 보는 것이라 여겨라.”
장우인은 이 옷이 어쩌면 그녀에게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선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옷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혜혜가 다시 잠든 것을 보고는 몰래 그녀의 베개 옆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양혜혜로 말할 것 같으면 ‘태생부터 부유한’ 바탕을 지닌 사람이었다. 즉 전생부터 부귀했고 금생 역시 어릴 때부터 극도로 부유하게 자랐다. 그래서 그녀는 깨어났을 때 베개 옆에 낡은 옷 한 벌이 있고, 게다가 모양새가 딱 나이 든 부인이 입는 것임을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똑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 성싶으냐? 야채 죽 반 그릇에 이미 당했는데, 또 이런 누더기 같은 옷을 가져다 무엇 하란 말이냐?’
그녀는 곧바로 그 옷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몸을 돌려 다시 잠을 청했다.
장우인은 비록 세상 인정에는 어두웠으나, 사부님으로부터 잘못을 알면 고쳐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장우인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혜혜가 깨어났는지, 이 선물을 받아들이고 화를 풀었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아래층에 내려온 장우인은 옷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생각했다.
‘자다가 몸을 뒤척일 때 실수로 떨어뜨린 모양이구나, 내가 다시 주워 놓아야겠다.’
장우인은 다시 그 옷을 주워 반듯하게 접어 혜혜의 베개 옆에 놓아두었다.
혜혜는 잠에서 깨어 이 옷이 다시 자기 베개 옆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또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장우인이 다시 내려와 옷이 바닥에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분명 아도와 아묵이 덜렁대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리라.’
그리하여 다시 주워서는 정성껏 접어 혜혜의 베개 옆에 놓았다.
“아가씨, 따뜻한 탕 좀 드셔요!”
혜혜는 일어나 따뜻한 탕을 조금 마시고 다시 누우려다가, 이 낡은 옷이 또 베개 옆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떨어질까 봐 걱정됐는지 그녀의 베개로 한쪽 끝을 눌러놓기까지 했다.
이에 혜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옷을 멀리 던져버리고는 다시 누워 자는 척했다.
조금 뒤 장우인이 다시 내려와 옷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방금 정아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틀림없이 정아가 또 떨어뜨린 것이로구나. 괜찮다, 내가 다시 줍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는 다시 옷을 주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천천히 접기 시작했다.
혜혜는 일어나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어이가 없어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장우인은 고개를 들어 혜혜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려 그녀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혜혜가 장우인의 치아를 드러낸 웃음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미소는 어찌 저리도 깨끗할까? 마치 어린아이처럼 깨끗하구나.’
그녀는 손을 뻗어 그 낡은 옷을 받아 베개 옆에 두었다.
장우인은 생각했다.
‘그녀의 노여움이 가셨으니 내가 맞게 행동한 모양이다. 다음번에도 이런 처세의 예절을 꼭 기억해야겠다. 이제 올라가도 되겠지.’
그리하여 장우인은 위층으로 올라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정아는 설거지를 하고 돌아와 아가씨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가씨, 이제 화가 풀리셨습니까?”
혜혜가 말했다.
“설마 저 ‘바보’와 기싸움을 하겠느냐? 장우인 저 자는 심지(心智)가 온전치 못하니 일반인처럼 대해서는 안 되겠다.”
혜혜는 붉은 치마가 단벌이었는데 그날 밤 난자당해 헤어졌고, 새로 살 돈도 없었기에 우선 장우인이 준 낡은 옷을 입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삼계(三界) 위에서 한 신명(神明)이 지혜로 굽어보며 이렇게 말했다.
새색시가 시어머니의 헌 옷을 입으니,
아내의 도리에 현묘한 이치가 있구나.
정(情) 속에서 어찌 정 밖의 이치를 깨달으리오,
고난 뒤에 고난이 발걸음마다 옥죄어 오누나,
新娘穿上舊娘衣
爲妻之道有玄機
情中怎參情外理
難後有難步步逼
다른 신명이 이 말을 듣고 역시 하계(下界)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음(陰)이 양(陽)보다 늦어 십 년을 닦아야겠구려.”
그 신명이 웃으며 답했다.
“딱 좋소.”
…………
혜혜는 상처가 깊어 보름 넘게 누워 지낸 끝에 드디어 아물었다.
혜혜가 마당 밖으로 거닐다 보니 날씨가 무척 더웠다. 이미 한여름이었다. 그녀는 정아와 아도, 아묵에게 제안했다.
“한여름이라 무덥고 들과일도 익었으니, 나와 함께 교외 시냇가로 가서 물고기도 잡고 말도 타지 않겠느냐?”
아도와 아묵은 아주 기쁘게 찬성했고, 정아도 즐거워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짐을 챙기고 이불도 가져가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교외에서 별을 보지요.”
혜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며 그녀는 생각했다.
‘천 개의 강물은 휘저을지언정 도 닦는 사람의 마음은 어지럽히지 말라는 말이 있지. 만약 그가 가부좌 중이라면 방해하지 않고, 앉아 있지 않다면 우리와 함께 가자고 해야겠다.’
그녀가 위층에 올라가 보니, 병풍 뒤의 장우인은 앉아 있기는커녕 오히려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이에 혜혜가 병풍 앞에서 외쳤다.
“장 공자! 장 공자!”
장우인이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자 다시 외쳤다.
“장 대바보!”
장우인은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대답했다.
“어?”
이 광경에 혜혜는 다시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장 공자, 이제 한여름이라 우리가 교외로 놀러 가려 하는데 같이 가요!”
장우인은 천천히 병풍 뒤에서 걸어 나오며 미소 짓고 말했다.
“그러지요.”
그리하여 다섯 사람은 말을 끌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교외로 향했다.
혜혜가 장우인에게 물었다.
“당신 내가 입은 이 옷이 낯익지 않나요?”
장우인이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문득 자신이 준 옷임이 생각나서 말했다.
“오……”
혜혜는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 낡은 옷은 어디서 주운 거죠?”
장우인이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건 어머님 것이오.”
혜혜는 순간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 옷을 바닥에 세 번이나 던졌을 때 장우인이 묵묵히 몸을 굽혀 세 번이나 주웠으면서도 조금도 화내지 않았던 일을 떠올리며 그의 도량에 감탄했다. 이어 실언한 것이 미안해져 말했다.
“아, 전 누구 옷인지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장우인이 대답했다.
“상관없소.”
혜혜가 다시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지금 보기에 내가 당신 어머님과 얼마나 닮았나요?”
장우인은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생기셨는지 벌써 잊어버렸소.”
그 말에 모두가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혜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아름다우실 뿐만 아니라 기개도 당당하셨어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조상님께서 곤륜산의 어느 여전신(女戰神)을 따라 전쟁터를 누비셨다고 하더군요!”
정아가 덧붙였다.
“저희 양부(楊府) 어르신 역시 신무(神武)하시고 영준하셨습니다. 아가씨는 저희 양부의 유일한 금지옥엽이시라, 다 누리지 못할 비단옷과 다 걸지 못할 패물은 물론이고, 식사 때는 시녀 열 명이 곁에서 수시하고 주무실 때는 수십 명의 하인이 침소 밖을 지켰답니다. 교외 나들이 같은 일에도 정예 병사들이 따랐지요!”
아도와 아묵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막 감탄하려던 찰나, 평소 말이 적던 장우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작디작은 양부 하나가 이토록 사치가 끝이 없다니.”
혜혜는 이미 장우인이 곱지 않게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말했다.
“사치라고요? 그래도 왕궁에 비할 수는 없어요.”
장우인이 다시 말했다.
양후(楊侯)를 들으니
제왕을 알겠구나.
나라가 망할 상이
여실히 드러나는구나.
聽起楊侯
便知帝王
亡國之相
顯露無遺
혜혜는 생각했다.
‘이 대바보가 또 바보처럼 보이지 않네.’
이에 말했다.
“신제(辛帝 상조의 마지막 임금 주왕)를 말하자면, 젊었을 때는 나름 용맹하여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아홉 마리 소와 힘을 겨루었으며 대들보를 들어 기둥을 갈아 끼울 정도였다고 하오.”
장우인이 다시 말했다.
“용맹하기만 하고 어질지 못한 자는 왕이 될 수 없고, 전투는 잘하나 도량이 좁은 자는 군주가 될 수 없으며, 욕심은 크나 절도가 없는 자는 제(帝)가 될 수 없는 법이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면 폭군임이 틀림없소. 저쪽 세상의 제신(帝辛)은 어떠하오?”
불과 몇 마디 말에 혜혜는 깜짝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단순히 바보가 아닐 뿐만 아니라 매우 총명하고 고심(高深)하구나. 단지 미세한 것을 보고 전체를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불과 몇 마디로 제신(帝辛)의 밑천까지 다 드러내다니.’
이에 혜혜는 경탄하며 감탄했다.
“정묘(精妙)하네요! 참으로 정묘해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511
